[최시한의말글못자리] ‘느낌’이라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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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라는 땅이 있다고 하자.
생각 쪽이 번성하는 데 비해 느낌 쪽은 황폐하다.
생각이 이성과 밀접하다면 느낌은 감성과 밀접하다.
사실 이들은 함께 협동하여 일하지만, 대부분 느낌은 제쳐놓고 생각만 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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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이성과 밀접하다면 느낌은 감성과 밀접하다. 사실 이들은 함께 협동하여 일하지만, 대부분 느낌은 제쳐놓고 생각만 중시한다. 사고력, 판단력 같은 내적 능력(힘)이 생각 땅에서만 사는 양 여기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느낌하고 관계가 깊은 ‘감수성’, ‘정서’, ‘마음’ 따위는 능력과 상관없다고 간주하여 ‘~력’이 붙은 단어조차 없다. 이렇다 보니 느낌 곧 감성 역시 기르지 않으면 사람이 목석(木石) 같아진다는 인식이 부족하여, 그 교육에도 등한하다.
이는 한국만의 실정이 아니었던 성싶다. 미국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이 ‘감성지능’을 저술하여 지능지수(IQ)와 구별되는 감성지수(EQ)를 대중화시킨 게 1995년이다. 오랜 동안 사람들은 생각은 차고 느낌은 뜨거우므로 생각으로 느낌을 식혀야 한다고 보았다. 생각은 변하지 않으나 느낌은 변덕스러워 생각이 더 가치 있다고 믿기도 했다.
감성지능 개념은 한국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현실의 변화는 요원하다. 한국인의 내면에서 느낌은 여전히 ‘지능’ 대접을 받지 못한 채 날로 메말라가고 있다. 가령 대가 없는 교제는 낭비이며, 내 기분을 ‘어지럽히는’ 타인은 지옥이다. 의대가 최고라는 ‘생각’만을 고집하며 대입 당사자의 ‘의사 직업이 싫은 마음’은 철없는 감정으로 매도한다. 이러다가 사람보다 생각을 잘하리라는 인공지능에 뒤떨어질지 모른다. 그것이 제 나름의 느낌을 경험하기는 곤란하기에, 경쟁에서 이기려면 느낌의 땅을 개발해야 할 텐데 말이다.
느껴야 생각하고 생각하지 못하면 깊이 느끼지 못한다. 또 타인에 공감할 줄 모르면 학력이 좋아도 원만한 인성을 지니기 어렵다. 느낌과 생각은 종속이 아니라 동반 관계인데, 평등에 둔감한 인습이 심성의 나라까지 지배하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
최시한 작가·숙명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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