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씨 ‘심리적 임계점’ 몰아가…내사부터 정보 새나가

한겨레21 2023. 12. 28.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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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 단계부터 정보 새나가… 세 차례 공개 소환, 비공개 조사 요청도 거부하며 몰아세워
2023년 12월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에 배우 이선균씨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배우 이선균씨의 죽음은 충격적이지만 수사 과정을 보면 예견할 수도 있었다. 사람에게 고통은 숙명이지만 누구나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의 크기는 정해져 있다. 모두에게 마약 관련 수사 자체가 힘든 일이지만 유명 배우로서 포토라인에 수차례 설 수밖에 없던 상황은 이선균씨를 ‘심리적 임계점’까지 내몰았을 수 있다.

첫 보도는 “유명 영화배우 ‘마약 혐의’로 내사”였다. 한 통신사 인천 주재 기자가 2023년 10월19일 보도했다. “국내 정상급 영화배우가 마약을 한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수사 중인 사항이라 구체적으로 밝히 수 없다”며 한 발 뺐지만, 경찰에서 흘려보냈을 가능성이 큰 기사였다. 일부에선 대통령 부인과의 친분으로 대통령실 의전비서관 자리까지 오른 김승희씨 자녀의 학교폭력 문제를 덮으려는 농간이라는 의심도 제기했지만, 설마 그럴까 싶다.

강남이 범행 의심 장소인데도 인천경찰청서?

인천경찰청은 첫 보도 직후 유명 배우가 ‘엘(L)씨’라는 등 누군지 알 만한 단서를 흘렸다. 결국 이선균씨도 자신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후 70일 동안 수사가 진행됐다.

먼저 짚을 것은 정식 수사 절차도 시작하지 않은 ‘입건 전 조사’(내사) 단계에서 이씨가 수사선상에 올랐음이 어떻게 언론에 알려졌는지다. 경찰이 흘렸다고 의심하는 게 합리적이다. 모든 수사가 그렇지만, 특히 마약 수사는 보안이 중요하다. 수사 사실이 알려지면 피의자가 증거를 없애거나 도망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선균씨 사건에서 경찰은 딴판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수사기관의 검거 실적은 지지부진했다. 배우 유아인씨를 상대로 두 번이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돼 체면을 구긴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배우 이선균씨가 마약을 했다’는 첩보는 그냥 넘길 수 없는 기막힌 유혹이었을 게다. 이씨의 주소지나 범행 의심 장소의 관할이 아닌 인천경찰청이 사건을 맡은 대목에서도 엿볼 수 있다. 서울 강남 일대가 의심 장소여서, 제보를 받았더라도 강남경찰서나 서울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로 넘기는 게 통상의 수순이었다.

인천경찰청은 이씨를 10월28일과 11월4일, 12월23일 세 차례에 걸쳐 공개 소환했다. 출석 시각을 미리 기자들에게 알려줘 수백 대의 카메라가 사전에 배치될 수 있도록 했다. 이씨가 유명 배우지만, 유명인이 곧 공인은 아니다. 공적 책임을 진 대통령이나 그의 부인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수사 상황을 알리는 등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하지만, 단지 유명인이라고 폴리스라인 앞에 세울 수는 없다. 출석 시각을 비공개하거나 지하주차장으로 조사실에 오게 할 수도 있었지만, 경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마약과의 전쟁’ 승리 ‘선전전’

특히 숨지기 나흘 전 마지막 조사를 앞두고 이씨 변호인은 비공개 조사를 요청했으나 경찰이 수사공보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훈령 ‘경찰 수사 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제16조)을 보면, 경찰관서장은 출석이나 조사 등 수사 과정을 언론이 촬영·녹화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불가피하게 촬영이나 녹화될 경우에는 사건 관계인이 노출되지 않도록 대비하고 안전 조처를 하도록 한다.

수사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국가작용이다. 죄를 밝히는 것만큼 혐의를 벗겨주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일도 경찰의 책무다. 이씨가 마약을 했다는 객관적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소변과 모발 등 반복된 검사에도 투약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다. 적어도 최근 1년 안에 마약을 투약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더욱이 제보자는 이씨에게 금품을 갈취한 공갈범일 가능성이 컸다. 이 때문에 경찰은 이씨를 피의자만이 아니라 피해자로서도 대우했어야 했다. 경찰은 국가기관으로서 최소한의 주의를 기울이기는커녕 그를 폴리스라인에 세웠다. ‘마약과의 전쟁’에 뛰어든 군인으로 승리를 거두기에 앞서 ‘선전전’에 나선 꼴이었다. 

그사이 이씨는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인권을 보장받지 못했다. 대신 경찰과 싸구려 언론이나 유튜버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한 유튜브 채널은 ‘충격영상’이라는 제목으로 이씨가 유흥업소 실장과 나눴다는 대화를 올리는 등 미확인 정보가 일부 언론과 유튜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넘쳐났다.

가수, 배우 등 유명인은 수사기관이 마약 수사를 벌일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먹잇감이었다. 소문만으로도 수사기관은 빠르게 움직였고, 폭력적인 인권침해를 서슴지 않았다. 가수 구준엽씨가 대표적이다. 억울하게 당했다고 말조차 못하는 사람은 훨씬 더 많다. 유명인이란 이유만으로 2002년과 2008년, 2009년 세 차례나 수사 대상이 됐던 구준엽씨는 참다못해 2009년 9월 기자회견까지 열어 수사 과정의 인권침해를 고발했다. <한겨레21>과 대담도 했다(제762호 “마약 음성판정 나왔다는데 통보도 안 해줘” 참조). 구씨는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면 또 조사를 나올 거고 그렇게 살면 내 가족까지 너무 힘들지 않겠냐”며 기자회견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유명인 마약 수사

세월이 한참 지났지만,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의 행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경찰은 어느 틈엔가 검찰을 따라 배웠는지 검찰의 전유물이던 함정수사, 별건 수사, 언론을 활용한 수사 등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씨가 숨진 뒤 경찰은 “규정과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수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씨의 수사 정보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았고,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자 수차례 공개 소환을 하는 등 가장 큰 책임은 경찰에 있다. 이게 마지막이어야 한다. 더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심리적 임계점’으로 내몰면 안 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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