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윤 대통령님, 아직도 RE100을 모르시나요?”

한대광 기자 2023. 12. 28.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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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31일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했다. 국정의 운영 방향과 우선순위가 담긴 정부 예산안을 대통령이 직접 설명하는 자리였으나 ‘기후’ ‘탄소중립’이란 용어는 한마디도 없었다.

윤석열 정부의 ‘환경 무시 정책’은 곧바로 체감할 수 있었다. 불과 일주일 후인 11월7일, 환경부는 플라스틱 빨대 금지 정책을 180도 바꿨다. 같은 달 24일부터 플라스틱 빨대를 쓰면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릴 예정이었다. 이미 4년 전부터 예고한 정책이었고 지난해부터 시행하려던 단속을 1년 미룬 터였다. 환경부는 그러나 시행을 2주 앞두고 “단속을 또 미루겠다”고 말을 바꿨다. 더불어 비닐봉지 사용에 따른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기로 하고 종이컵은 규제품목에서 아예 제외시켰다. 환경단체는 물론 업체들이 크게 반발했지만 정부 어느 부처의 책임자도 올해가 며칠 남지 않은 지금까지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시민들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자발적으로 플라스틱 빨대를 쓰지 않겠다는 시민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환경회의는 기자회견문에서 “우리나라에서 1년간 사용되는 종이컵은 248억개, 비닐봉지는 255억개, 플라스틱 빨대는 106억개다. 겨우 몇초, 길어야 몇시간 쓰이고 버려진다. 엄청난 양의 일회용품을 위해 자원이 낭비되고 폐기물 처리에 많은 에너지와 비용이 투입되고, 제대로 수거되지 못한 일회용품은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생태계를 훼손해 인간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국제사회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협약을 논의하고 있고, 해외 각국은 일회용품 퇴출에 힘쓰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일회용품 관리 방안은 얼마나 형편없고 후퇴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환경부는 카페나 식당에서 종이컵 사용을 금지하는 건 전 세계에서 한국뿐이라며 ‘한국의 규제가 과하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와 독일은 올해 1월부터 식당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을 금지했다. 독일은 배달음식도 다회용기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일회용품 사용 억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경제의 흐름에 발맞추는 국가 경쟁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중국 쓰촨성 고지대에 설치된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광·수력 발전소는 원전 155기에 맞먹는 155기가와트의 청정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미국도 캘리포니아 14만가구에 전력을 공급하는 태양광 단지를 건설 중이다. 산유국들조차 재생에너지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세계적인 기업들도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만 100% 쓰자는 RE100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애플이 2018년부터 모든 사무실, 데이터센터 등에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례일 뿐이다. 애플을 비롯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BMW 등 400개가 넘는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납품업체에도 100% 재생에너지를 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중요한 축인 금융권도 이미 ESG 투자, 녹색채권, 기후금융 등 ‘녹색금융’으로 불리는 투자에 뛰어든 지 오래다. 화석연료에 기반한 경제시스템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재원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은 어떤가. ‘재생에너지 정책 후퇴’ ‘국제 자본시장 흐름에 역행’이라는 진단 말고는 달리 평가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같은 퇴행의 원인은 무엇일까. 한참을 궁리해보다 한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지난해 2월3일 열린 20대 대통령 후보들의 첫 TV토론이다.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RE100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상대 후보의 질문에 “그게 뭐죠?”라며 되물었다. 후보 시절이나 대통령 재임 중이나 ‘기후위기’ ‘환경’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리게 되는 장면이다.

한겨울이 시작된 지난 6일 밤 부산 일부 지역에 직경 5㎝ 크기의 우박이 쏟아졌다. 강원 삼척시 원덕면에는 지난 10일부터 이틀 동안 234㎜의 폭우가 쏟아졌다. 한겨울에 장마철 수준의 비가 내린 것이다.

기상청은 지난 11·12일 강원도 일대에 호우주의보와 대설주의보를 동시에 냈다. 25년 전인 1999년 이후 처음 있는 기상이변이다. 겨울철 반팔 패션이 등장하고 바다에선 이상고온으로 오징어가 사라지고, 농촌에선 해충이 창궐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젠 RE100을 아시나요?”

한대광 사회에디터

한대광 사회에디터 chooh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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