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103) 한국의집
서울 중구 필동의 대한극장 뒤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고즈넉한 기와집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의집’이란 간판이 걸린 이곳은 고급 한정식 식당이자 전통혼례와 전통문화체험, 전통예술공연이 이뤄지는 곳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유명하다.
이곳의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이 터는 원래 ‘사육신’ 박팽년의 사저가 있던 곳으로 예로부터 남산의 4대 명당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조선시대 ‘남촌’이라 불린 인근 동네는 가난한 선비나 중인들이 주로 살던 곳이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촌으로 변모했고, 이곳은 조선총독부 2인자인 정무총감의 관저로 사용됐다.
1945년 일본의 패전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엔도 류사쿠 정무총감이 여운형 선생을 불러 협상을 진행한 역사적 현장도 이곳이다. 해방 후 이곳은 미군정청 관리로 들어가면서 미군의 숙소이자 위락시설로 활용되었고, 이 무렵부터 ‘Korea House’로 불리게 되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4년밖에 안 된 1957년, 대통령 직속 공보실에서 직접 관할하여 대대적인 개보수를 진행했다. 폐허와 빈곤에서 겨우 일어서기 시작했던 대한민국에서 이 호화로운 리모델링이 이루어진 이유는 역시 외국 손님, 특히 미군 장교들에 대한 향응이었다. 그 당시 이 일은 매우 중요했기에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이곳을 시찰했고, 1966년엔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의 부인 버드 여사가 방문하기도 했다.
1978~1980년 한국의집은 전통양식으로 전면 개축이 이루어졌다. 1981년 재개관하면서 문화재보호협회(현 한국문화재재단)가 수탁 운영하게 되었다. 2023년 7월 한국문화재재단은 <기억과 기록으로 다시 짓는 한국의집>이란 책을 출간했다. 책을 내면서 한국의집 내부 건물인 ‘문향루’(聞香樓)의 이름이 일제강점기 때의 ‘문향각’에서 유래한 것이며, 문향각은 이완용이 정무총감 미즈노 렌타로를 찬미하기 위해 그의 호 향당(香堂)을 본떠 명명한 것임을 알아냈다.
그래서 문향루는 ‘우금헌’(友琴軒)으로 바뀌었고 현판도 교체됐다. 원래 집터의 주인이자 지조와 절개를 지켜낸 박팽년의 뜻을 기리기 위해, 박팽년의 호인 ‘취금헌’에서 거문고 금(琴)을 따 ‘거문고를 벗하는 집’으로 명명한 것이다. 2023년 방문한 한국의집 앞에 서 있는 푸른 소나무는 마치 박팽년의 기개를 보여주는 듯하다.
김찬휘 녹색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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