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규의 외교만사 外交萬思] 슈퍼 선거의 해에 불안한 한국호

기자 2023. 12. 28.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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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은 전 세계적으로 76개국에서 선거가 예정되어 있는 슈퍼 선거의 해이다. 한반도 주변 러시아, 일본, 미국에서 차례로 선거가 있고, 한국에서도 총선을 치른다. 국제정치의 최대 변수이자 최대 관심사는 전현직 간의 대결이 예상되는 미국 대통령 선거(11월)이다. 그리고 미·중관계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대만 총통 선거(1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대선(3월), 인도와 영국의 총선(4월), 유럽연합의 의회 선거(6월),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9월) 등도 주요 관심사이다. 이 선거 결과는 한국의 외교·안보·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2024년은 대체로 암울하고 걱정과 근심이 크게 늘어나는 한 해가 될 듯하다.

2023년 한국 외교는 대담한 시도 뒤에 크게 좌절했다. 4월부터 윤석열 정부는 공식·비공식적으로 일련의 과감한 대중국 발언들을 정제하지 못하고 쏟아내면서 각을 세웠다. 미국 국빈방문과 ‘워싱턴 선언’, 한·일관계 개선, 한·미·일 3자 정상회의 및 ‘캠프 데이비드 선언’으로 이어지는 초유의 3자 안보협력 강화 조치를 이뤄냈다. 전임 문재인 정부를 통북(通北), 종중(從中), 탈미(脫美), 반일(反日) 외교·안보 노선으로 규정했던 시각에서는 염원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지난 7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윤석열 대통령이 전격 방문해 전 세계적으로 미국과 민주주의 세계에 대한 윤 정부의 강한 유대감도 마음껏 과시했다.

2023년 하반기로 오면서 윤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들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윤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역대 미국 중심의 세계관을 가장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핵심적 비전으로 제시한 ‘글로벌 중추국가 구상’은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에 기반해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국가로 거듭난다는 내용이다. 미국과 서방이 시대정신의 구현자이며, 이들이 승리할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낙관론에 근거하고 있다. 논리적으론 이원론적인 선과 악의 가치 중심의 외교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정책 결정에 ‘토’를 달 수 없는 동굴(제한된 집단사고)의 과정도 강화되었다. 현실은 이러한 전제가 부합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으로 변화하고 있다. 미·중 간의 전략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비용도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윤 정부 외교 정책에 내재된 문제점들은 세계 잼버리 파행에 따른 국제적 망신과 더불어 한·중 정상회담에 대한 오판과 APEC에서 회담 불발,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경쟁에서의 참패로 극명히 드러났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해외순방을 자주 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수천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쏟아부어 획득한 29표의 지지는 예상할 수 있는 최저 득표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선 사우디의 오일머니 때문이라고 변명하지만, 이미 우리 외교·안보 정책의 프레임 짜기, 비전 제시, 소통과 책임감, 정세 판단 역량 등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내년에 더 큰 도전들이 다가오고 있다. 첫 번째 도전은 다극화되고 있는 세계이다. 너무 안이하게 양극화된 세계로 해석하고 경직되게 대응한다면 비용은 급격히 커질 것이다. 세계 정치는 보수화되고 있다. 자국 중심성이 강화된다는 의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하나의 시각으로 보기엔 각자의 비전과 전략으로 움직이는 다른 실체이다. 서유럽 강대국들, 인도, 사우디, 브라질, 터키 등은 이미 자신들만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도 실제로는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통상국가로서 대한민국의 위기이다. 우리의 정의관이나 염원과는 다르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미국과 서방은 패배 직전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중동에서 미국의 공백을 말해준다. 이처럼 대담한 하마스의 공격은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반군들은 우리 무역의 목줄과 같은 홍해의 자유 통항마저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이 전쟁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과 서방의 재정난, 국내정치적 반발, 경제적 어려움으로 추가적인 지원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민주국가로서 자부심이 강한 윤 정부는 러·중과 대립을 불사하고 있디. 에너지와 주요 자원의 공급원이자 시장인 중·러와 동시에 비우호적 관계로 전환하는 것은 한국 경제에 엄청난 압박이 될 것이다. 2024년 시장은 줄고, 미·중·러발 한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은 심화될 것이다.

다음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세계적인 영향력 확대는 괄목할 만하다. 일대일로 축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속도를 내고 있다. 중앙아시아, 남미는 물론 중동 지역까지 이제는 미국이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세력이 되었다. 러시아 역시 아프리카 절반 이상 국가와 안보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아프리카 중부에서 잇따라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기존의 서구 프랑스 세력을 몰아내고 러시아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지역이 대부분 권위주의 국가이지만, 통상국가인 우리로선 무시할 수 없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개발도상국과 신흥국)란 점이다.

네 번째 중국과의 관계이다. 중국의 인사 변동에서 국수주의적 강경파들이 득세할 것이다. 중국은 미국에 편승해 중국과 각을 세운 윤 정부에 대한 압박 정책을 미·중 화해모드 시기를 활용해 강화하고 있다. 중국발 공급망 리스크는 커질 것이다. 정치적 해법도 난망하다. 현재로선 중국과의 관계를 풀어낼 묘안이 안 보인다.

마지막으로, 윤 정부가 공들인 미국과 일본에서의 선거 결과 역시 현재로선 암울하다. 외교를 중시하고, 윤 정부와 합을 맞춘 기시다 정부는 부패 스캔들과 함께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동맹을 중시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 역시 재선 전망이 어둡다. 윤 정부가 공들인 한·미 핵협의그룹이나 핵확장 억제 공약도 공약(空約)이 될 개연성이 크다. 북한을 최대한 압박하는 극북(克北) 전략도 트럼프의 변술 앞에 무너질 공산이 크다. 미국 중심의 대중 억제 경제협력체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나, 대중 안보체제로 불리는 오커스(AUKUS)도 유야무야될 개연성이 높다. 대신 미국 우선을 외치는 트럼프발 엄청난 예산 압박과 기업들에 대한 기술과 시설의 미국 이전 요구에 시달릴 것이다.

이러한 도전들을 극복할 묘안이 없을까를 고민해야 할 2024년이다. 윤 정부 2기 외교·안보 라인에서 기존 사고와 정책 결정의 틀을 깨고, 국민과 더불어, 국민의 공감대에 기초한 새로운 외교·안보·경제 비전과 전략을 모색할 것을 기대한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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