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터카 배터리 완전 방전 사건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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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결혼기념일이 들어 있는 5월이면 제주나 가까운 해외로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코로나19 시국 이후에는 한 번도 그러질 못했다.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처럼 크리스마스가 들어 있는 주에 스케줄을 조정한 뒤 제주에 사는 지인 커플과 5일만 집을 바꿔 생활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한 시간 만에 도착한 렌터카 회사 직원은 내가 실내등이나 후미등 같은 걸 밤새 켜놓고 자서 방전된 것 같다고 진단하고는 배터리를 충전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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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결혼기념일이 들어 있는 5월이면 제주나 가까운 해외로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코로나19 시국 이후에는 한 번도 그러질 못했다. 책 쓰기 워크숍이나 강연 등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었던 점도 있었지만 사실은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내가 연말에 기특한 아이디어를 냈다.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처럼 크리스마스가 들어 있는 주에 스케줄을 조정한 뒤 제주에 사는 지인 커플과 5일만 집을 바꿔 생활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아내가 묻자 제주에 사는 그분들도 좋아라 화답을 해서 당장 '하우스 스와핑'이 이루어졌다. 그들도 우리처럼 두 명만 사는 단출한 가족이었고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나는 떠나기 전날 우리가 자주 다니는 동네 카페와 밥집, 술집, 빵집들의 정보를 빼곡하게 적고 간단한 약도까지 그려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몇 해 동안 살인적으로 오른 제주도의 숙박비를 해결하게 된 걸 생각하면 그 정도 서비스는 일도 아니었다.
어떤 여행지에서든 항상 걸어 다니기만 하던 우리 커플이 이번엔 렌터카도 빌렸다. 제주에 있는 서점과 미술관 등을 돌아다니려면 아무래도 차가 있어야겠다는 아내의 판단 덕분이었다. 하지만 첫날 우리가 간 곳은 미술관이 아니라 삼치회로 이름 높은 식당이었다. 거기서 삼치회에 한라산 소주를 호쾌하게 마시는 아내를 바라보며 나는 물로 건배를 했다. 제주 여행 첫날부터 대리운전을 부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숙소로 들어오자마자 공항에서 산 싸구려 국산 위스키를 마시며 "여행이란 이런 맛에 하는 것!"이라 외쳤다. 문제는 그다음 날 아침이었다. 아침을 먹으러 나가려고 차문을 열었더니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내가 옆에서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하얗게 질렸다. 방전이었다.
렌터카 회사에 전화를 해서 서비스 기사를 호출했다. 한 시간 만에 도착한 렌터카 회사 직원은 내가 실내등이나 후미등 같은 걸 밤새 켜놓고 자서 방전된 것 같다고 진단하고는 배터리를 충전시켜 주었다. 차가 다시 움직여서 우리는 아침을 먹고 몇 년 만에 다시 가보는 책방 소리소문에도 갔다. 이 책방은 얼마 전 벨기에의 한 출판사가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세계의 서점 150'에 선정된 곳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서점 대표님과 인사를 나누고 서점에 있는 내 책에 사인도 했다. '서점에 가면 반드시 책을 사자' 주의인 우리는 새 책을 네 권이나 사서 주차장으로 갔다. 또 차가 안 움직였다. 기가 막혔다. 또 서비스 기사를 불렀고 결과적으로 차는 세 번이나 방전되어 결국 렌터카 회사에서 배터리를 교체해 주기에 이르렀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움직이는 자동차를 운전하며 생각했다. 너무 일에만 몰두해 번아웃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 흔히 방전이라는 단어를 쓴다. 렌터카는 방전되면 서비스 기사를 부르면 된다. 물론 약간의 당황과 짜증을 동반하지만 큰일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이 방전된 것 자체를 모를 때가 많다. 그리고 고갈된 에너지를 다시 채우기도 힘들다. 연말이다. 일 년간 어떻게 살았는지 천천히 헤아려 보고 완전 방전되기 전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충전을 꼭 하자. 여행이 아니더라도 좋다. 사람은 좋은 영화나 연극 한 편, 오랜 친구와의 저녁식사만으로도 기운을 얻는다. 제발 일만 하며 살진 말자. 우리는 이미 너무 열심히 살고 있다.
편성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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