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백기 든 공정위…‘총수 일가 고발’ 지침 백지화
정부 ‘친기업’ 기조 속 대기업 자산 기준 상향 등 규제 완화 ‘착착’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익편취 행위에 관여한 총수 일가를 고발하도록 하는 고발지침 개정을 전면 백지화했다.
재계가 총수 고발이 남발될 우려가 있다며 반발하자, 두 달여 만에 개정을 포기한 것이다. 재계 입김에 밀려 공정위가 사실상 백기를 든 셈인데,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친기업 정서를 고려해 볼 때 예상됐던 결과라는 평가도 나온다.
공정위의 신뢰를 훼손한 ‘나쁜 선례’로 남게 됐다.
28일 공정위가 낸 공정거래법 고발지침 개정안에는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행위로 해당 기업(법인)을 고발할 때 총수 일가(특수관계인)도 원칙적으로 검찰에 고발한다는 기존 개정안에 담긴 규정이 삭제됐다.
사익편취란 대기업이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총수 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뜻한다.
지난 10월19일 공정위는 고발지침 개정안을 행정예고하면서 사익편취 행위에 관여한 총수 일가에 대한 원칙 고발을 강조했다. 당시 공정위는 “그동안에는 중대한 사익편취 행위를 한 사업자를 고발하더라도 공정위 조사만으로는 총수 일가의 관여 정도를 명백히 입증하기 곤란해 총수 일가를 고발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었다”며 총수 일가에 대한 고발의 한계를 인정했다.
이 같은 문제를 바로잡겠다며 공정위가 ‘총수 일가 원칙 고발’을 골자로 한 고발지침 개정안을 내놓자 재계는 즉각 반발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등 6개 경제단체는 “고발지침의 고발 사유와 기준이 모호하고 상위법과도 충돌한다”며 전면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고, 공정위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고발지침 개정은 두 달여 만에 무산됐다.
반면 대기업 기준 완화 등 규제 완화는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개정안에는 고발 여부 결정과 관련한 고려 사항에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와 ‘중소기업 또는 소비자 등에 미친 피해 정도’가 추가됐다. 원안의 고려사항 중 ‘생명·건강 등 안전에의 영향과 무관한지 여부’와 ‘조사 협조 여부’는 각각 ‘생명·건강 등 안전에의 영향’, ‘조사·심의 협조 여부’로 수정됐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이번 고발지침 개정 불발은 공정위가 재계 압력에 불복한 것”이라며 “향후 사익편취 사건에 있어서 정당한 법집행을 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공정위는 대기업 관련 규제 완화에 적극 앞장서고 있다. 올해 초부터 추진해 온 공시대상기업집단 기준 완화 작업은 관련 연구 용역을 마치고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현재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기준은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이다. 공정위는 공시기업집단 기준을 국내총생산(GDP)과 연동하거나 기준금액을 상향한다는 방침이다. 기준 완화를 통해 공시대상기업집단에서 제외되면 계열사 간 주식 소유 현황과 특수관계인과의 거래 현황 등 각종 공시 의무에서 벗어나게 된다.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규제도 적용받지 않는다.
공정위가 지난 27일 입법예고한 동일인 판단 기준에 관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도 규제 완화에 속한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외국인 총수’인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은 동일인 지정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국내 대기업집단 역시 개정된 기준을 악용해 사익편취 규제를 회피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프고 계속 커지는 켈로이드 흉터··· 구멍내고 얼리면 더 빨리 치료된다
- “남잔데 숙대 지원했다”···교수님이 재워주는 ‘숙면여대’ 대박 비결은
- [스경X이슈] 반성문 소용無, ‘3아웃’ 박상민도 집유인데 김호중은 실형··· ‘괘씸죄’ 통했다
- ‘해를 품은 달’ 배우 송재림 숨진 채 발견
- 윤 대통령 골프 라운딩 논란…“트럼프 외교 준비” 대 “그 시간에 공부를”
- ‘검찰개혁 선봉’ 박은정, 혁신당 탄핵추진위 사임···왜?
- 한동훈 대표와 가족 명의로 수백건…윤 대통령 부부 비판 글의 정체는?
- “그는 사실상 대통령이 아니다” 1인 시국선언한 장학사…교육청은 “법률 위반 검토”
- 3200억대 가상자산 투자리딩 사기조직 체포… 역대 최대 규모
- 머스크가 이끌 ‘정부효율부’는 무엇…정부 부처 아닌 자문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