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해보라더니 돈 들고 증발한 그녀… 인신매매 ‘감금 노예’였다
“언젠가 만난 적 있다며 아는 척을 하더라고요. 기억나진 않았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점점 친해졌어요.”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남성 A(54)씨는 2021년 10월 한 중국계 여성으로부터 온라인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이름은 ‘제시카’라고 했고 A씨를 만난 적 있다며 친한 척을 해왔다. A씨는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점차 친근감을 느꼈다고 한다.
제시카는 뉴욕에서 호화 생활을 누리는 듯했다. 명품 옷을 입고 비싼 음식점을 다니는 사진을 자주 공유했기에 알 수 있었다. A씨는 그런 그녀에게 “아버지 병간호를 하고 있는데 매우 힘들다”며 자신의 사정을 털어놨다. 그리고 얼마 후 제시카는 “병간호 비용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A씨에게 암호화폐 투자를 권유했다.
처음에는 제시카에게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초기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A씨는 성공적인 암호화폐 투자로 자신이 수십만 달러의 돈을 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 A씨의 암호화폐 계정이 돌연 잠겼고 백만 달러 이상이 감쪽같이 증발했다.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A씨는 중국 범죄 조직이 인신매매를 동원해 벌인 금융사기에 걸려든 것이었고, 그에게 접근했던 제시카는 인신매매로 감금된 채 사기 행각을 강요당한 ‘현대판 노예’였다.
◇ “일자리 주겠다”고 꼬드겨 감금, 조직원 늘렸다
미국 CNN 방송은 27일(현지시각) A씨가 당한 중국 범죄 조직의 악랄한 사기 수법을 조명해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이들 조직은 미얀마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현대판 노예제를 운영하며 미국 등 전 세계 사람들의 돈을 가로채고 있다. FBI는 2020년 9억700만 달러(약 1조1677억원)였던 이 범죄의 사기 규모가 올해 11월 기준 29억 달러(약 3조7337억원)로 3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조직원들은 젊은 여성을 가장해 피해자에게 접근하고, 몇 주간 친해진 다음 가짜 암호화폐 플랫폼에 투자하도록 꼬드긴다. 이후 A씨에게 그랬던 것처럼 높은 초반 수익률을 보여주며 안심시킨다. 그렇게 계속 돈을 투자하도록 만든 뒤, 결국에는 투자금을 모두 들고 잠적해 버린다.
미모의 젊은 여성이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일부 조직원들 역시 사실은 인신매매 당해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다. 조직 수뇌부들은 미얀마 동부 등지에 건물을 마련한 뒤 ‘일자리를 주겠다’는 말로 수천 명을 꼬드겨 가둔다. 유엔은 미얀마 전역에서 12만명, 캄보디아 등 다른 지역에서 10만명이 감금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도 출신 라케시(가명·33)도 그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화학 엔지니어였던 그는 IT 기업에서 사무직 일자리를 준다는 말에 지난해 12월 태국 방콕으로 향했다. 그러나 공항에서 그를 맞이한 운전기사는 사무실 대신 태국과 미얀마 국경인 매솟시로 차를 몰았다.
라케시는 “3m 담장과 감시탑이 있는 건물로 끌려가 여권을 압수당하고 전문 사기꾼이 되겠다는 내용의 계약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받았다”며 “서명을 거부하자 감옥 같은 곳에 던져져 물조차 제공받지 못했다. 그곳에서 사흘을 굶주린 후 살아남기 위해 서명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 중국 남성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을 죽일 것’이라는 협박을 했다. 나는 미국인, 영국인, 브라질인, 멕시코인들에게 연락하는 임무를 맡아 하루 16시간씩 잠재적 피해자들과 대화해야 했다”며 “해당 건물에는 식당, 매점, 어린이집 등이 있었고 성매매와 마약 투약도 이뤄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39
🌎국제퀴즈 풀고 선물도 받으세요! ☞ https://www.chosun.com/members-event/?mec=n_quiz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