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톡톡] 오늘도 막은 오른다…부산 연극 지킴이 ‘소극장’
[KBS 부산] 한 해가 저무는 12월의 마지막 주.
어스름 저녁이 시작되는 시간, 지하 소극장에선 어김없이 막이 오릅니다.
한겨울에도 습기 가득 쿰쿰한 냄새를 풍기는, 그래서 더 소극장다운 곳.
["비상 상황시 안내 요원의 안내에 따라 신속히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하로 향하는 그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공연은 시작됩니다.
사뮈엘 베케트의 작품을 재구성한 종말 체험 환경 연극, '엔드 게임'.
이곳은 방사능에 오염되고,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지구입니다.
["이 A지구의 인구 중에 90%가 사라져 버린 곳입니다."]
내년 창단 40주년을 맞는 부두연극단 이성규 대표가 무대에 올리는 올해 세 번째 작품입니다.
가진 재산을 털어 지난 40년을 버텨왔지만, 해가 갈수록 좋은 작품을 소극장 무대에 올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이성규/액터스소극장 대표 : "관객들이 옛날에는 꽉꽉 찼는데 지금은 한 30명 정도 오거든요. 지금은 또 배우 할인이라 해서 푯값 만 원밖에 안 내요. 그러니까 최상의 연극이 안 나오거든요. 연극계가 지금 도약을 좀 해야 하는데 올해도 역시 좀 힘들게 이걸 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들고요."]
["지긋지긋하다. 끝낼 시간이다. 그런데도 난 망설이고 있다."]
눈이 멀고, 걸을 수 없는 불구자 '엔드 게임'의 주인공, 햄 역의 박성규.
배우이면서 28년 역사의 극연구집단 시나위 대표이기도 합니다.
최근 안톤 체홉의 유작 '벚꽃 동산'을 무대에 올리며 소극장 정신을 살린 실험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박성규/'시나위' 대표 : "열심히 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는데 그렇게 많지는 않고, 지금 어떻게 보면 주축이 부산에는 한 40대 정도가 거의 주축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1989년 개관한 뒤 지금껏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열린아트홀을 포함해 부산에 남은 연극 전문 소극장은 이제 9곳.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소극장 2곳이 문을 닫았을 땐 소극장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컸습니다.
하지만 실험이자 도전의 공간이 소극장을 포기할 순 없순 없습니다.
[최성우/부산소극장협회 회장 : "이 작은 공간에서 작품을 한다고 하면 정말 창의성이 없으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없는, 도전 의식의 장소라고 할까요. 그래서 (소극장은) 힘들면서도 매력이 넘치는 그런 공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젠 원로가 돼 후배를 키워야 하지만, '해줄 게 없어, 놔줄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성규 대표에게 남은 바람은 부산 연극인들이 함께 마음껏 뛰놀 연극 전용 극장을 마련하는 겁니다.
[이성규/액터스소극장 대표 : "부산 사람들이 다들 인재들은 많은데 이게 협력이 잘 안 되는 상태입니다. 워낙 개인화돼서 극단도 지금 한 40개~50개 정도 되거든요. 잠시 극단 만들었다가 없어지고 만들어졌다가 없어지고 하고, 저처럼 극단 이름으로 계속 가는 극단은 몇 극단이 안 됩니다마는 이렇게 응집력이 지금 없어졌어요."]
다양한 문화 상품에 관객을 뺏기고, 임대료 인상에 코로나19 대유행까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한해였지만, 또 한 번의 긴 터널을 지나 오늘도 소극장은 다시 막을 올립니다.
문화톡톡 최지영입니다.
촬영기자:윤동욱
최지영 기자 (lifeis7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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