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가습기 참사 기획 2편] 청소년 피해자 1천 명 넘는데…학교 지원은 '57명'

진태희 기자 2023. 12. 2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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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뉴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더 가혹했던 가습기 살균제 참사, 오늘도 저희가 취재한 단독보도로 뉴스 시작하겠습니다. 


생존 피해자 10명 가운데 3명은 10대 이하 연령대에 집중됐고, 그 숫자도 1천 명이 넘는 상황인데요.


한창 공부와 치료를 병행해야 할 이 아이들에 대해 정부가 교육지원 대책을 마련했지만, 실제 제도의 혜택을 본 사례는 5% 정도에 그쳐서, 생색내기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진태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저는 그냥 여중생입니다. 항상 생각하지만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학교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뛰어다녔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 손목에는 아직도 링거 바늘이 들어갔다 나온 자국들이 너무나도 많고 힘든 시기를 겪어왔습니다." 


"애초에 (살균제를) 사질 않았더라면 제 인생은 더 행복했을까요? 아니 덜 아팠을까요?"


폐렴에 천식, 중이염과 무월경 그리고 우울증까지.


갓난아기 때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이은 씨(가명)가, 불과 19살 나이에 안고 살아가는 병들입니다. 


인터뷰: 박교진 / 가습기 살균제 피해 청소년 아버지

"아기 이제 태어났으니까 좋다고 샀지. 어느 날 갑자기 네가 막 계속 열이 나고 그러니까 애가 몸이 약하게 태어났나 보다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중학교 과정은 대안학교에서 겨우 마쳤지만, 고등학교는 두 달을 못 버티고 그만뒀습니다. 


인터뷰: 이은 (가명) 19세

"고등학교 1학년 수업 내용도 거의 몰랐고 5월에 자퇴를 했으니까 곧 있으면 중간이고, 기말도 있는데 (공부가) 안 될 것 같아서 매주 거의 병원을 가다 보니까 그냥 자퇴를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국내 연구진의 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 아동·청소년의 학업 성취도는 또래보다 유의미하게 낮았습니다.


특히, 언어와 수리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는데, 연구진은 동물실험을 토대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뇌 기능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체계적인 치료와 함께 교육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 


교육부도 환경부와 함께 4~5년 전부터, 가습기 살균제 피해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치료 때문에 학교를 결석하면 '질병 결석'으로 인정해 주고, 피해 증명서를 내면 추가로 진단서를 낼 필요가 없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얼마나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


EBS 취재진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 학생들의 학사 지원 현황을 언론사 최초로 입수했습니다.


올해 1학기 기준, 가습기 살균제 피해 학생 중 학사 지원을 받은 건 57명뿐이었습니다.


1천 명이 넘는 학령기 생존 피해자 중 단 5%에 불과한 겁니다.


실제 지원을 받은 중학생은 생존 피해자 중 4.9%, 고등학생은 5.6%에 그쳤고, 초등학생 연령대의 생존 피해자 가운데선 학사 지원을 받은 사례가 아예 없었습니다. 


천 명이 넘는 피해자 중에 질병 결석을 한 번이라도 인정받은 학생은 55명, 조퇴나 지각을 인정받은 학생은 7명에 그쳤습니다. 


치료와 공부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한, 최소한의 행정 지원마저 유명무실한 겁니다. 


교육 공백으로 생기는 학습 결손 문제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인터뷰: 강득구 의원 / 더불어민주당

"호흡기 곤란으로 인해서 체육 활동하기도 힘들고 정서적으로도 여러 가지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맞춤형 지원 이런 부분이 거의 없다. 중장기적으로 추적 조사를 해서 아이들이 이걸로 인해서 어떻게 삶의 질이 바뀌게 됐는지 (살펴봐야 한다)."


한국 역학회의 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 노출로 후유증을 입은 청소년들이 따돌림이나 차별을 겪은 경우는 15%, 학교를 제대로 못 다니거나 중단했다는 사례도 7.7%나 됐습니다.


하지만 범정부 차원의 대응 속에서도 교육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학생의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안타까운 건, 지금의 현실을 개선할 대책 마련도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인터뷰: 교육부 관계자 

"학교 내에 보건실 이용 등 건강관리 지원이나 다른 학생들로 인한 불필요한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해달라는 형태의 당부 내용을 담아서 (공문으로) 안내가 되어 있는 거죠. 제도적인 측면은 추가적인 (지원) 사항은 저희가 검토한 바는 없습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아이들.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를 극복하고 미래로 가기 위해 최소한의 교육권이 절실하지만,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습니다.


EBS뉴스 진태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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