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발견되길 기다리고 있어
12 _전환문화 가족
우리는 문화 국경을 하루에도 여러번 건너는 월경인들이다. 벨은 에바를 백인 미국 가정의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키워야 한다고. 그의 가정 역시 한국계 미국인 가정이 되었다. 두 세상이 충돌해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소중하기에 선택한 소수자 정체성.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것이 결국 우리를 설명한다.
“어피 안아”
교실을 나온 6살 에바가 엄마를 발견하고 뛰어가 속삭이듯 한 말이다. 꿀 떨어지는 눈으로 딸의 입 모양을 읽은 벨은 잘록한 허리를 숙여 에바를 안아 올렸다. ‘어피 안아’, 에바가 만든 위(up 업)로 안아주라는 말, 아니 엄마 아빠의 영어 세계로 온 에바가 3살에 익힌 영어다. 콩글리쉬.
내가 벨과 에바를 처음 만난 건 2022년 봄이었다. 한국학교에서 소풍을 갔는데 부채를 색칠하는 부스에서 색동저고리처럼 색을 골라 가장자리를 벗어나지 않게 칠하는 어린아이가 인상적이었다. 피츠버그에서 캘리포니아로 온 지 얼마 안됐다고 했다. 딸을 위해 대륙을 가로질러 아시아인이 많은 곳으로 이사했고 곧바로 한국학교를 찾아 왔다고.
미술교사였던 벨은 아이를 갖고자 2년여 노력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불임의 시간은 그의 자존감마저 추락시켰다. 그러다 동료교사의 아이 중 한명이 입양아인 걸 알게 되었다. 동료는 자신이 낳은 아이와 조금도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을 오래 보아 온 벨도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벨 부부는 홀트인터내셔널을 찾았다. 미국 내 입양은 2년 안에 친척이 이의를 제기하면 무산될 수 있기에 국제입양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시아 입양이 빠르다는 안내에 대기자 명부를 보다 에바와 맞닥뜨렸다. 빛이 났다고 했다. 눈앞에 무지개가 진짜로 떠올랐다고. 말하는 벨의 눈동자에서 파란 별이 반짝였다. 그 사진은 지금 식탁 옆 콘솔에 놓여 있다. 눈썹 위로 반듯이 자른 앞머리 밑으로 지민의 미소가 화알짝 피어난다. 지민은 에바의 한국이름이다. 지금도 에바와 함께 불린다.
홀트인터내셔널에서는 지민이 한국 프로그램에 있다고 했고 옮기는 절차는 수월했다. 하지만 그때 알지 못한 것이 있었다. 한국 아이를 입양하기까지 시간이 세배 더 걸리는 현실 말이다. 생후 18개월이던 지민은 35개월이 돼서야 벨과 집에 올 수 있었다. 1년 반 동안 지민은 위탁 엄마 손에 씻겨지고 그 엄마가 해준 밥을 먹으며 자라났다. 벨은 점점 더 두터워질 그 애착관계가 두려웠다. 지민이 맞아야 하는 이별의 고통이 무서웠다. 입양기관에서는 위탁모와의 접촉을 막았다. 지민이 매달 병원 갈 때 기록과 몇달에 한번 사진을 보내올 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법원 재판부가 바뀌면서 3개월 더 연장됐다. 아이의 정서와 사회성, 언어능력이 개발될 때인데 곧 엄마 아빠로 불릴 양육자의 사랑이 차단된 채였다. 그렁해진 눈시울로 회상하는 벨을 보며 나는 입양은 한 가족의 탄생인데 ‘고아 수출’로 물들인 과거의 지독한 잘못에 내가 더 사로잡혀 있는 걸 보게 되었다. 내 안에 있는 국가주의적 사고 또한 확인했다. 우리 아이들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시각 말이다. 나는 품지 않으면서…. 빠르고 정확한 심사란 불가능할까?
지민을 만나는 날이었다. 서울 홍대앞 호텔에서 벨과 남편 샘은 눈 뜬 뒤 나갈 채비를 마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아주 무겁고 무거운 무언가 둘의 어깨를 감싸고 누르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명치께에서는 나비가 팔랑이듯 간질거렸다. 엄숙한 설렘이라고 할까. 호텔을 나와 둘은 걸었다. 홀트재단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지민은 3층에 있을 것이다. 둘은 지구를 끌어 올리듯 그 층에 도달했다. 저만치 지민이 보였다. 위탁모가 먼저 둘을 발견했다. 그리고 마치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 선언했다.
“지민아, 마미랑 대디 왔다!”
샘은 돌아가고 벨은 한국에 남았다. 입양이 마무리될 2달 뒤까지 에바를 볼 수 있어서다. 두번째 만남, 에바가 ‘마미’라 불렀고, 벨은 딸에게 ‘수박’이라며 건넸다. 에바가 좋아하는 과일이다. 이제 벨의 언어에서 워터멜론은 수박이 됐다. 딸의 한국에 벨도 빠져들었다.
한국 홀트에서 벨과 샘은 힘든 수업을 받아야 했다. 다른 문화권에 입양되어 성인이 된 이들의 수기를 성서 읽듯 읽었고, 입양되어 서구에서 자란 한국계 활동가들이 하는 12시간 교육에 참여했다. 삶에서 나온 그들의 당부는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입양과 친부모에 관해 자연스레 거론해서 아이가 생부모를 찾고 싶을 때 부모를 배신하는 것 같은 죄의식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활 반경 안에 ‘생물학적 거울’을 꼭 갖도록 조성하자는 것이었다. 아이와 생김이 비슷한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이다. 꼭 부모이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에 벨과 샘은 용기를 얻었다.
벨은 나와 처음 대화할 때도 ‘생물학적 거울’을 사명처럼 강조했다. ‘내 아이도 미국에서 한국계로 살아야 하기에 한국학교에 온다’고 말하자, 같은 속사정을 느끼고 편안해 했다. 어찌 됐든 우리는 문화 국경을 하루에도 여러번 건너는 월경인들이다. 벨은 에바를 백인 미국 가정의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키워야 한다고. 그의 가정 역시 한국계 미국인 가정이 되었다. 두 세상이 충돌해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소중하기에 선택한 소수자 정체성.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것이 결국 우리를 설명한다.
벨은 ‘전환문화 가정’(Transcultural Family)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국제입양 가족을 지칭하는 말이다. 우리 말로 풀면 둘 이상의 문화를 넘나드는 혹은 범문화적 가족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다문화 가족(multi-cultural family)보다 사고방식 취향 등 흐름이 진행형으로 묘사된 명명 같다.
문득, 시집와 처음 시어머니와 배추김치를 담그던 날이 생각났다. 나는 배추 밑동에 칼집을 내고 양손으로 배추를 벌렸는데, 시어머님은 ‘그럼 배춧잎이 너줄거린다’며 끝까지 칼로 토막 내셨다. 오래된 두 습관이 맞붙는 순간이었다. 그러니 어쩌면 모든 인간의 만남이 전환문화적 접촉 아닐까?
에바가 집에 온 날부터 6개월 동안 벨과 샘은 번갈아 에바를 가슴에 품었다. 그 누구도 에바를 만지지 못했다. 벨은 교직을 떠나 에바만을 돌봤다. 그 사이 에바는 한살이 되었다가 백일 아기가 되었다가 신생아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3년 동안 생후 6년의 나이를 다시 먹었다. 벨과 샘은 홀트 수업에서 ‘퇴행’이란 단어를 들었다. 입양 뒤 아이가 반드시 마주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나는 내 경험에서 그 의미를 짐작해 보았다. 큰애 두살 때 동생이 태어나며 엄마 품을 양보했는데, 그 아이가 네살 때 한국 외갓집에서 여름을 보내며 외할머니의 무한한 지지를 받았다. 마음껏 어리광을 부렸다. 미국으로 돌아온 첫날에도 문간에 앉아 응석을 부렸는데 내 한마디에 뚝 그쳤다. ‘우리 지금 미국 집에 왔어.’ 아이는 곧바로 오빠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사랑이 충만한 곳에서 마음에 묶인 감정 매듭을 많이 푼 것 같아 감사했다. 에바도 지금 가장 안전한 곳에서 스스로 온갖 매듭을 푸는 것이 아닐까? 여느 아이가 겪는 성장통과 어쩔 수 없이 묶인 여러 고비, 사회가 묶은 불편한 시선의 자취들까지…. 나는 벨이 35개월 된 에바를 낳았다고 믿는다.
벨에게 에바와 함께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아 달라고 했다. 대답하지 못했다. 그럼 10개 꼽아 달라 하니, 한참 궁리하다가 배시시 웃었다. 온종일 스무번 넘게 ‘마미, 아이 러브 유’를 외치는 사랑스러운 에바도 행복이고, 자기 품에서 마음이 힘들다고 소리치는 에바도 행복이라며 볼이 발그레해졌다. 순간, 나도 행복감에 밀려 해사해졌다.
행복은 알아차림이다. 그 속에서 모든 초라함은 힘을 잃는다.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2002년 미국으로 이주,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인류 생존을 위한 10년 전략을 제시하는 대담집 ‘내일의 세계’, 세계 지성들과 코로나19의 원인과 미래를 탐색하는 ‘오늘부터의 세계’, 리베카 솔닛 등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대담 ‘어크로스 페미니즘’, 문명의 현재와 이를 만들어온 개인의 마음 운용 실체까지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세계 지성 29인과의 대담 3부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문명, 그 길을 묻다’, ‘사피엔스의 마음’, 현대미술 작가들과의 대담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이해인의 말’, ‘최재천의 공부’, 에세이 ‘나의 질문’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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