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면 상승하는 투발루가 ‘전국민 이주’ 보장한 호주와의 조약에 와글와글한 까닭
9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진 태평양의 투발루는 총면적이 26㎢로, 서울 종로구보다 약간 크다. 인구도 1만1200명 정도밖에 안 된다. 면적은 세계에서 네번째로 작고, 인구는 세번째로 적다. 그러나 2000년에 189번째로 유엔에 가입한 독립국이다.
섬 대부분이 코코야자로 덮인 이 나라의 최대 고민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계속 상승해 수십 년 뒤에는 국가가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투발루에서 가장 높은 곳도 해발 4.5m에 불과한데, 이미 30년 전에 비해 해수면은 15㎝ 높아졌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현재 매년 5㎜씩 오르는 투발루의 해수면 상승 속도는 2100년까지 배(倍)가 된다.
호주와 하와이 중간에 위치한 투발루의 전 국토가 언제쯤 완전히 바다에 잠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40년 뒤에는 바닷물이 토양에 침투하면서 식수가 사라지고 농작물도 자랄 수 없어 인간이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투발루를 비롯한 태평양의 섬나라들은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이산화탄소ㆍ메탄과 같은 온실가스 배출량도 미미하다. 14개 섬나라 다 합쳐서 전세계 배출량의 0.03%도 안 되는데, 지구온난화의 직격탄을 가장 먼저 맞는 상황이다.
그래서 지난달 10일 호주와 투발루 정부가 매년 280명씩 투발루 국민에게 호주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살 수 있도록 호주가 영주권을 제공하는 조약을 체결했다는 뉴스는, 처음 투발루 국민에겐 가까운 이웃의 선린(善隣) 정책으로 여겨졌다. 40년 뒤면 투발루의 모든 국민이 호주로 ‘기후 이주’할 수 있게 된다. 두 나라는 무더기로 투발루 국민이 호주로 빠져나가 투발루가 텅 비지 않게 연간 이주 숫자에 제한을 뒀다.
조약에 따르면, 또 호주는 자연재해ㆍ전염병 확산ㆍ외국 공격과 같은 비상사태 시 투발루를 돕고, 1100만 달러를 투입해 투발루의 해안선 복원에 나선다. 호주가 투발루의 제1 안보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조약엔 한 개의 ‘단서’가 붙는다. 투발루가 타국과 안보ㆍ방위 조약을 체결하기 전에, “호주의 효과적인 안보 보장 작전을 위해서” 반드시 호주 정부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호주가 태평양에서 해군력을 확장하는 중국을 막기 위한 조항이다. 중국은 이미 2019년에 태평양 섬나라들 중에서 두 번째로 큰 솔로몬 제도와 외교 관계를 수립했고, 작년 4월에는 질서 유지 명목으로 중국 군함이 장기 주둔할 수 있다는 내용의 안보 협정을 맺었다. 그리고 올해 7월 중국과 솔로몬 제도는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도 수립했다.
중국은 투발루에도 온갖 공을 들이지만, 카우세아 나타노 투발루 총리는 중국의 구애(求愛)를 거부하고 있다. 투발루는 14개 태평양 도서국 중에서 타이완과의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4개국 중 하나다.
그러나 이 단서 조항을 놓고, 투발루 국민의 의견은 갈린다고 최근 르몽드와 워싱턴포스트는 보도했다. 호주로 이주할 수 있는 기회는 반기지만, 이 조약이 체결된다고 조국 투발루에 닥친 위기의 근본 원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호주는 오늘날 투발루 같은 나라가 존폐 위기에 몰리게 된 석탄과 같은 화석 연료의 세계 최대 수출국이다.
비판자들은 그런데도 이 화석연료 생산ㆍ수출 감축 노력은 없이, 호주가 투발루에 ‘피난처’를 제공하면서 투발루의 주권 양도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최근까지 투발루 정부에서 외교ㆍ법무 장관을 했던 사이먼 코페는 워싱턴 포스트에 “투발루와 호주는 많은 가치를 공유하지만, 투발루 같은 소국이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다툼에 끌려 들어가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2차 대전 때 미군 비행장들이 위치한 탓에 (일본군의) 공습을 받았다”고 말했다.
코페는 투발루의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 호주 국적을 포기하고, 2년 전에는 외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투발루의 기후 재앙 위기를 전세계에 알렸던 인물이다.
내년 1월26일에 있을 이 총선을 앞두고, 호주와의 이 조약 체결은 그래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야당 측은 총선에서 이기면, ‘호주의 사전 동의’와 같은 일부 단서 조항은 수정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국의 ‘앞마당’ 같은 남태평양에 중국군이 계속 진출ㆍ확대하는 것을 막는 게 최대 관심인 호주가 이런 ‘사전 동의’ 조항을 빼고도, 투발루 전국민에 영주권을 제공하는 조약 내용을 유지할지는 불분명하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홍명보호, 요르단·이라크 무승부로 승점 5 앞서며 독주 체제
- 한국, 1년 만 美 ‘환율 관찰 대상국’ 복귀...수출 늘어나며 흑자 커진 영향
- “김정은도 그를 못 이겨”... 이 응원가 주인공 황인범, 4연승 주역으로
- 트럼프, 월가 저승사자에 ‘親 가상화폐’ 제이 클레이튼 지명
- 앙투아네트 단두대 보낸 다이아 목걸이…67억에 팔렸다
- 트럼프 최측근 머스크, 주초 주유엔 이란 대사 만나
- [Minute to Read] S. Korean markets slide deeper as ‘Trump panic’ grows
- [더 한장] 새총 쏘고 중성화 수술까지...원숭이와 전쟁의 승자는?
- 먹다 남은 과자봉지, 플라스틱 물병 한가득…쓰레기장 된 한라산 정상
- 트럼프, 보건복지부 장관에 ‘백신 음모론자’ 케네디 주니어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