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역전’이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언급된 까닭은
월스트리트발(發)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초토화시킨 뒤 미국에서 금융 규제를 전면 개혁하는 입법이 추진됐습니다. 그런데 2010년 당시 게리 겐슬러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은 하원 청문회에서 존 랜디스 감독의 1983년 작 ‘대역전(Trading Places)’을 언급하며 ‘에디 머피 룰’을 도입하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 직전부터 새해 초까지의 상품거래소를 무대로 합니다. 증권 중개 회사를 운영하는 ‘큰손’ 듀크 형제는 탐욕스럽고 거만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들은 인간을 결정하는 것이 ‘유전’인가 ‘환경’인가를 두고 내기를 벌입니다. 듀크 회사의 핵심 인재 루이스 윈도프(배우 댄 애크로이드)를 마약 거래상으로 몰아 시련을 주고, 거지인 빌리 발렌타인(에디 머피)에겐 파격적인 기회를 주는 실험으로 승부를 가릴 생각입니다.
뒤바뀐 환경에서 빌리는 빠르게 적응하고 루이스는 거리의 부랑자로 전락합니다. 환경이 유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결론으로 내기를 마감하려는데, 빌리가 이 얘기를 엿듣습니다. 충격받은 빌리는 루이스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고 복수에 나섭니다.
듀크 형제는 정부의 오렌지 작황 예측 보고서가 공식 발표되기 전 빼돌려서 오렌지 선물 거래에 활용할 계획이었습니다. 이를 간파한 루이스와 빌리는 오렌지가 풍년일 것이라는 보고서를 가로채 흉년이 들 것이라고 전달합니다. 듀크는 오렌지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고 선물을 대규모 매입합니다. 경쟁사들도 듀크를 따르며 선물 가격은 폭등하고, 빌리와 루이스는 높은 가격에 오렌지 선물을 대규모로 공매도합니다.
그런데 결정적 순간에 농업부 장관이 오렌지 작황이 좋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공식 발표합니다. 분위기는 급반전하고 오렌지 선물 투매가 벌어져 가격은 폭락합니다. 빌리와 루이스는 낮은 가격에 선물을 매수해 짧은 시간에 큰돈을 벌고 듀크 형제는 막대한 손실을 입습니다. 거래소는 듀크에게 증거금 추가 납부(마진 콜)를 요구하지만 이들은 현금 여력이 없어 파산합니다.
증권 거래였다면 듀크 형제와 빌리, 루이스의 행위는 모두 처벌 대상입니다. 상장 회사 임직원이 회사 내 중요 미공개 정보를 증권 거래에 이용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돼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만들어진 시점은 물론 겐슬러 위원장이 청문회에 출석한 시점에도 정부 생성 정보는 내부 정보에 포함되지 않았고, 상품 거래는 내부자 거래 규제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겐슬러 위원장은 이 영화를 인용하며 이런 행위를 엄벌하자고 했고, ‘도드-프랭크 월스트리트 개혁법’에 에디 머피 룰이 포함된 것입니다.
한국에선 여전히 듀크 형제의 행위가 내부자 거래 규제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정부 정보는 시장에 미치는 충격파가 클 수 있습니다. 미공개 정부 정보를 빼돌려 거래에 이용하는 것을 막는 규제에 대해 논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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