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희 칼럼] 한동훈을 제대로 쓰려면

이준희 2023. 12. 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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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진보진영 원로와의 자리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화제에 올랐다.

안된 얘기지만 김 여사 문제는 이제 전혀 출구 없는 사안이 됐다.

특검을 받으면 총선 전까지 이재명 리스크를 상쇄시키는 악재가 될 것이고,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하면 불공정과 비상식의 징표로 내내 여론을 잠식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동훈의 자율성은 99.9%"라는 전언도 있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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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리스크를 대신 떠안은 한동훈
특검 수용으로 대통령이 짐 내려줘야
그게 총선과 차기까지 도모하는 방책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수락의 변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진보진영 원로와의 자리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화제에 올랐다. 뜻밖에 “간단치 않은 인물”이라는 고평가가 나왔다. 그는 한 위원장의 ‘절제’에 방점을 찍었다. 맞다. 재능과 성장환경에서 최상위 조건을 다 갖춘 엘리트로서 별 흠결 없이 성장해온 건 놀라운 자기절제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처럼 태도가 단순하거나 격하지 않고, 이재명 대표처럼 온갖 추문을 달고 있지도 않다. 야당의원들의 공격을 얄밉도록 맞받아 도리어 조롱거리로 만드는 모습은 평생 절제로 쌓은 자신감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의 정치출사표라고 할 만한 비대위원장 수락연설문에는 여야 불문한 여의도식 정치에 대한 지독한 혐오가 담겼다. 운동권세력을 유독 지목한 것은 그들이 오랜 세월 권력을 향유해오면서 정치를 그들끼리의 생계형 게임판으로 왜곡시켰다는 인식의 표출이다. 기존 정치문법과 확실히 다르고, 그래서 젊은 층의 전면적 정치쇄신 욕구와 맞닿는 그의 미래 확장성은 범야권이 바짝 긴장해야 할 대목이다.

하지만 그의 잠재성을 발현하기 위해선 당장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한동훈 당 체제가 출범하자마자 김건희 특검법안을 들이밀었다. 그야말로 그의 정체성을 시험하는 리트머스용지다. 지난 얘기지만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는 홍준표 시장 말대로 정권 출범 전에 정리했어야 했고, 후에도 최우선적으로 결론지어야 했다. 그동안 이 문제가 대통령의 성과까지 희석시킬 악성이라는 점을 누누이 지적했다. 그런데도 마냥 외면해온 게 오늘의 결과다. 측근 누구도 건의하기 힘들었다고 보면 결국 윤 대통령 책임이다.

안된 얘기지만 김 여사 문제는 이제 전혀 출구 없는 사안이 됐다. 특검을 받으면 총선 전까지 이재명 리스크를 상쇄시키는 악재가 될 것이고,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하면 불공정과 비상식의 징표로 내내 여론을 잠식할 것이다. 그래서 선택은 자명하다. 우회로가 없다면 그냥 대로로 가는 것이다. 특검을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이 계산에서 빼지 말아야 할 요소는 한동훈이다. 특검 거부로 그의 혁신이미지를 제거하고 야당 표현대로 김 여사의 호위무사 정도로 격하시키고 나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을 올릴 방도도, 대통령 중간평가인 총선 성격상 이길 방법도 없다. 이후 정권의 운명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뿐 아니다. 국민의힘의 가장 중요한 미래자산인 한동훈을 지킬 수도 없는 김 여사 보호를 위해 묻어버림으로써 다음 정권도 도모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더 따질 것도 없이 도식은 간단하다. 김건희 특검의 수용여부는 현 윤 정권의 한계를 극복하고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느냐를 가름하는 지표가 될 것이다.

특검을 받아들이고도 특검대상으로서의 부적절성과 얄팍한 정략적 의도를 줄곧 설파하면서 정치적으로 방어할 여지는 남는다. 그러나 거부권을 행사하고 나면 이조차 원천적으로 설득력을 잃는다. “검사를 그렇게 싫어하면서 왜 검사 사칭한 분을 절대존엄으로 모시는지" 식의 말투도 더는 재기(才氣) 아닌 상투적 본질 피해가기로 곧 식상해질 것이다. 뛰어난 개인기도 몸이 가볍고 주변이 받쳐줘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법이다.

결국 또 윤 대통령에게 달렸다. 한 위원장을 김건희 리스크의 족쇄에서 풀어줘야 한다는 말이다. 그게 총선의 가장 유효한 방책이고, 정권의 미래도 담보하는 길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동훈의 자율성은 99.9%"라는 전언도 있지 않았나. 가장 어려운 책무를 맡겨놓고 무거운 등짐까지 지우는 건 그를 아껴온 윤 대통령으로서도 차마 할 일이 아니다.

이준희 고문 jun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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