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보다 잘 팔린다”…서점가 베스트셀러 점령한 구간 도서들
유튜버 추천에 10년 전 출간된 <원씽> 베스트셀러 2위 올라
독서 인구 감소, 책값 인상, 읽을만한 신간 부재 등도 영향
“신간 점점 더 팔기 어려워졌다는 신호” 우려의 시선도 원씽>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일에 매진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자기계발서 <원씽>은 10년 전인 2013년 국내 출간됐다. 그 책이 올해 여러 신간을 제치고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다. 교보문고 오프라인과 온라인 매장에서 팔린 책 중 판매량이 두 번째로 많았다는 뜻이다.
‘묵은 책’의 두각은 <원씽>에 그치지 않는다. 종합 베스트셀러 5위를 차지한 <불편한 편의점>, 9위 <구의 증명>, 13위 <돈의 속성>, 23위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24위 <모순>, 25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등도 출간이 2년 넘은 구간이다.
스테디셀러는 항상 있었다. 하지만 올해처럼 구간이 서점가 베스트셀러를 대거 차지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읽을 만한 신간의 부재, 책값 인상, 불경기, 독서 인구 감소, 그리고 인플루언서의 영향력 확대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교보문고 올해 베스트셀러 100위 중 33권이 ‘구간’
27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종합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 든 구간은 33권에 달했다. 지난해 25권을 훌쩍 뛰어넘었다. 2016년까지 돌아봐도 종합 베스트셀러 100위에 든 구간은 매년 20권대 중반에 불과했다. 진영균 교보문고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과장은 “불경기 영향으로 소비가 줄어들면서 가격이 저렴하고 작품성은 보장된 스테디셀러로 수요가 몰린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특히 유튜버와 같은 인플루언서들의 추천이 큰 영향을 발휘한 해였다. 출판사 비즈니스북스가 그 수혜를 입은 대표적인 사례다. 올해 18종의 신간을 냈지만 종합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은 <원씽>(2위), <그릿>(61위), <아주 작은 습관의 힘>(102위) 등 모두 구간이었다. 김미란 비즈니스북스 편집인은 “작년 말부터 신사임당, 자청, 켈리 최 같은 자기계발 분야 유튜버들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꼽으면서 판매가 확 늘었다”며 “원씽은 올해만 20만부 넘게 출고됐다”고 말했다.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세이노의 가르침>도 올해 3월 출간됐지만 실상은 구간에 가깝다. 이미 20여 년 전부터 사람들이 PDF로 돌려보던 자기계발서를 출판사 데이원이 익명의 저자 ‘세이노’와 계약을 맺고 종이책으로 낸 형태이기 때문이다. 책값도 마진을 거의 남기지 않는 수준인 7200원으로 정했다. 1만7000원을 훌쩍 넘는 요즘 신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다.
<원씽>도 10년 전 가격인 1만4000원을 유지하고 있다. 양귀자 장편소설 <모순>은 2013년 개정판 가격인 1만3000원을 그대로 받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신간의 평균 정가는 1만7869원으로 2012년(1만3885)보다 약 4000원(28.7%) 올랐다. 만화책을 제외한 신간 평균 정가는 1만9109원에 이른다. 구간이라고 다 저렴한 것은 아니다. 정가 변경을 통해 가격을 올린 책도 적지 않다. 원재료값이 올라 옛날 가격만 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읽을만한 신간이 없다는 진단도 나온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책 읽는 사람이 줄면서 출판사들이 팔릴만한 책만 내놓은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비슷비슷한 책이 쏟아지면서 해당 분야를 선점한 몇몇 책을 빼고는 신간이 외면받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출판사 관계자는 “코로나19로 해외에서도 원고들이 밀리며 좋은 신간이 줄었다”며 “그래서 읽을만한 신간이 없다고 느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간 덕에 불경기 이겨내지만...
구간이 나쁜 건 아니다. 안정적인 매출을 일으켜 출판사들에 버팀목이 된다. 새롭고 다양한 책을 내게 하는 힘이 된다. 민음사의 경우 고전 문학을 소개하는 ‘세계문학전집’이 그런 역할을 한다. 올해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00위에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42위)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45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83위) 등 세 권을 올렸다. 이시윤 민음사 홍보팀 차장은 “세계문학전집의 매출 비중이 꽤 큰 편”이라며 “해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매년 35%가량 된다”고 말했다.
김영사도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71위),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82위)가 각각 국내 출간된 지 8년과 1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어떤 신간보다 매출 기여도가 크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최근 발표한 ‘2023 출판산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기준 7000여 출판사의 구간 매출 비중은 59.7%로 신간(40.3%)보다 높았다. 올해는 구간 매출 비중이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구간의 베스트셀러 점령은 신간을 팔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출판계가 우려의 눈으로 이를 지켜보는 이유다. 한 출판사 편집장은 “구간 덕분에 작년과 올해 잘 버텼다”면서도 “많은 신간을 냈는데도 몇 년 전 낸 구간보다 관심을 못 받는 것을 보면 힘이 빠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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