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건물 3층 헬카페 들어서자…천국의 화음이 울려퍼졌다
냉면집 우래옥 이웃사촌, 헬카페
몸집만큼 큰 스피커에서 나오는
웅장한 LP 음악에 젖어들 때면
짙은 커피향이 코끝을 유혹하고 …
사람들은 한 시절을 풍미했던 것을 쉽게 잊어버린다. 그것들이 시대를 풍미하기 위해 쌓아왔던 노력은 때때로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진다. 뉴트로라는 이름을 달고 등장해 또다시 한 시절의 유행으로 무너진 장소와 상품들은 그 어려움을 대변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모래성을 쌓는 일에 심혈을 기울인다. 음악과 커피에 대한 사랑으로, 시절을 풍미했던 것에 대한 깊은 동경으로, 자영업의 지옥과도 같은 서울 한복판 용산 일대에서 10년째 두 개의 매장을 운영해온 ‘헬카페’도 그렇다. ‘헬카페-스피리터스’ ‘헬카페-보테카’라는 이름의 두 곳엔 깊어지는 커피의 맛과 어울리는 위스키와 칵테일이, 그만한 음료를 즐기기에 마땅한 고매한 취향의 음반으로 가득했다.
지난달 헬카페의 두 주인장이 서울을 대표하는 노포 우래옥을 이웃 삼아 문을 연 ‘헬카페 뮤직’은 이제 파도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하고 단단한 모래성이나 다름없다. 우래옥을 마주 본 오래된 3층 상가에서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 ‘헬카페 뮤직’과 음악 주점 ‘마이크로 바이닐 펍’, 레코드 가게인 ‘레코드 스톡’은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무르익은 취향을 가진 이들이 연대해 서울의 가장 오래된 유행의 중심을 파고들었다는 의미도 있다.
우래옥이 있는 을지로 4가는 전차의 종착역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유원지인 창경원에서 하루를 보낸 사람들은 가족과 우래옥을 찾아 불고기를 굽고 냉면을 후루룩 들이켰다.
날이 좋은 봄철에는 창경원의 식물원과 동물원을 구경한 이들이 우래옥을 찾아 하루에만 냉면 2000여 그릇을 비웠다.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던 우래옥 옆에는 우리나라 아파트의 효시라 불리는 중앙아파트도 들어섰다. 뜰이 없는 집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했던 시절, 수세식 화장실과 입식 부엌을 갖춘 을지로의 새 아파트는 새 시대를 맞이하는 새로운 바람이었다.
하지만 도처에 유행이 흐르는 거대한 도시 서울은 빠르게 이곳을 잊어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우래옥에는 냉면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북적이지만, 도시에 새로운 삶의 양식을 제안했던 근사한 주거 공간은 재개발을 앞두고 있거나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늙어가고 있었다.
새로운 헬카페 매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 사람의 몸집만큼 거대한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로열’ 스피커 한 쌍이 웅장한 소리를 내뿜는다. 그 소리는 벽과 바닥에 울려 퍼지지만, 천장에 잘 붙여놓은 흡음재와 목재 바닥이 과도한 울림을 막아준다. 웅장하지만 섬세한 울림에 젖어들 때면 기름이 배어 나올 정도로 강하게 볶은 원두로 만든 드립 커피가 빈티지 잔에 담겨 나온다. 스피커를 향해 나란히 배치된 의자에는 쉴 새 없이 사람들이 드나들며 공간의 울림을 맞이한다. 깊은 취향의 음악과 커피가 울려 퍼지는 공간은 오래전 주교동 일대의 영광을 재현하듯 문전성시를 이룬다.
부모님으로부터 요섭과 성은이라는 이름을 받은, ‘취향의 지옥’을 설계한 이들은 누가 봐도 안 될 것 같은 일에 여전히 몰두한다. 그 무겁고 큰 스피커를 LP 수납장 위에 올리고, 무거운 주전자에서 방울방울 물을 흘려 천천히 커피 한 잔을 만든다.
공간을 찾은 이들에게 더 좋은 영감을 주고자 권요섭 바리스타는 디제잉을 연습해 레코드가 바뀔 때도 그 어떤 위화감 없이 음악에 젖어들 수 있도록 한다. 한쪽 구석에서 임성은 바리스타는 꽃을 다듬고 팝콘도 튀기고 샴페인을 따른다. 다 지어진 것 같은 공고한 취향의 공간에 또 무언가를 깁고 더한다. 어떤 날에는 소리를 더 좋게 만들어줄 오디오 케이블이, 어떤 날에는 깊어진 취향에 무게를 더해줄 음반과 술이 늘어난다. 또 어떤 날에는 새벽녘 꽃 시장에서 가져온 꽃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그리고 그것들은 새바람이 불어 시대를 풍미하기를 기다린다. 아주 오래된 서울의 역사 속에서.
조원진 커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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