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한 간부는 연예인 마약 수사가 무리하게 진행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반박하며 이렇게 말했다. 결국 수사는 밥도 죽도 아닌 떡이 되고 말았다.
요란했던 연예인 마약 수사가 비극으로 종결되며 경찰 책임론이 불거졌다. 배우 이선균이 27일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망해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종결됐을 뿐 아니라 지드래곤(권지용)은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됐기 때문이다.
특히 이선균과 지드래곤은 처음부터 혐의를 부인한데다 두 사람 모두 간이 시약 검사(소변)에 이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 감정(모발·겨드랑이털)에서도 음성 판정을 받았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경찰이 이례적으로 내사 사실을 공개했다는 점이다. 경찰은 지난 10월 19일 “영화배우인 40대 남성 L씨 등 8명에 대해 마약류관리법상 대마·향정 혐의로 입건 전 조사(내사) 중”이라고 밝혔다.
내사는 말 그대로 의혹이 불거진 정도로 수사 여부가 결정 되지 않은 상태다. 경찰 안밖에서는 뚜렷한 물증 없이 유흥업계 종사자의 진술에만 의존한 무리한 수사였다는 비판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수사에서 이례적인 부분이 또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선균이 음성 판정을 받았음에도 3차례나 공개 소환했다는 점이다. 이씨 변호인은 3차 소환일 전날인 지난 22일 경찰에 비공개 소환을 요청했으나 경찰은 일부 방송기자를 핑계로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선균은 이 때문에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세 차례나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이는 사건 관계인을 미리 약속된 시간에 포토라인에 세우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한 경찰 수사공보 규칙에 어긋난 행위다.
이선균은 숨지기 하루 전까지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지난달 4일 2차 소환 조사에서는 “수면제인 줄 알고 투약했다. 유흥업소 실장이 나를 속이고 약을 줬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 소환 조사를 마치고 이틀 만인 사망 전날 오후에는 변호인을 통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의뢰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경찰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씨가 사망하자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은밀한 사생활 유출과 계속되는 공개 소환 등이 고인을 궁지로 몰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마지막 수사에서 이선균이 19시간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강압수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논란이 지속되자 윤희근 경찰청장은 28일 “경찰 수사 잘못이라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선균을 수사한 인천경찰청장도 이날 공식 브리핑을 열고 “유족께 위로를 드린다”면서도 “수사사항 유출은 없었다. 충분히 진술을 듣고자 장시간 조사를 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선균은 27일 오전 10시 30분쯤 서울 종로구 와룡공원 인근에 주차된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이며 발인은 29일이다. 장지는 수원 연화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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