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디즈니···구원투수 되기엔 아쉬운 100주년 기념작 ‘위시’
소원 빼앗는 왕과 맞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에는 언제나 소원을 비는 장면이 등장한다. <미녀와 야수>의 벨, <모아나>의 모아나는 갑갑한 고향을 떠나 더 큰 세상으로 나가기를 소원한다. <라푼젤>의 라푼젤은 탑 밖으로의 탈출을 기도하고, <주토피아> 속 주디의 마음은 ‘모든 걸 해보고 싶다’는 가사의 음악으로 대변된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이 소망들은 디즈니가 세상에 전하는 희망이자 각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디즈니의 창사 100주년 기념작이 <위시>(Wish·소원)인 것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소원을 이뤄주는 왕이 다스리는 마법 왕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소망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의 고군분투를 전면에 내세운다. <위시>가 내년 1월3일 개봉에 앞서 언론시사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주인공은 마법의 왕국 로사스에 사는 소녀 ‘아샤’(아리아나 더보즈)다. 로사스는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슬픔이 없는 나라다. 모두 왕 ‘매그니피코’(크리스 파인) 덕분이다. 로사스의 주민들은 18세가 되면 왕 앞에서 간절한 소원 하나를 빈다. 왕은 이 소원들을 보관해두었다가 ‘소원 성취식’을 열어 이 중 극히 일부만을 이뤄준다. 중요한 것은 매그니피코에게 소원을 비는 순간 자신의 소원을 까맣게 잊게 된다는 점이다. 스스로 무엇을 바라는지 모르니 노력할 필요도, 이루지 못했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다.
18세 생일을 앞둔 아샤는 우연히 매그니피코의 비밀을 알아차린다. 매그니피코는 ‘가수 되기’ ‘비행기 발명’ 같은 소박한 소원들을 자신의 왕권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방치하고 있었다. 분노한 아샤는 왕국 사람들에게 소원을 돌려주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아샤가 특별한 능력을 지닌 ‘별’을 비롯해 여러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매그니피코에게 맞서는 과정을 그린다. 수채화처럼 고전적 색채가 덧입혀진 로사스의 풍경은 아름답고, 아샤를 돕는 염소 친구 ‘발렌티노’와 ‘별’은 사랑스럽다. 디즈니의 장기는 러닝타임 내내 이어지는 음악에서도 발휘된다. 아샤가 간절한 소망을 담아 부르는 메인 테마곡 ‘디스 위시’는 영화가 끝나고도 귓가에 맴돈다. 주인공 아샤를 비롯한 주요 캐릭터 중 상당수가 유색인종인 점도 눈길을 끈다.
아샤의 모험을 좇다보면 내가 소망하는 것이 곧 ‘나’라는, 이를 위해 노력하면 진정한 내가 될 수 있다는 디즈니의 메시지와 만나게 된다.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등장하는 디즈니 대표 캐릭터들의 모습은 관객이 디즈니와 함께했을 지난 세월을 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위시>가 디즈니의 창사 100주년을 기념하기엔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소원을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는 어색한 설정을 뼈대로 하는 이야기는 관객의 몰입보다 빠르게 전개된다. 관객은 ‘디즈니의 마법’에 걸리지 못한 채 아샤의 모험을 팔짱 끼고 보게 된다. 별, 발렌티노 같은 감초 캐릭터의 사랑스러움도 <겨울왕국> ‘올라프’의 극강 매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위시>의 만듦새가 유독 아쉬운 것은 녹록지 않은 디즈니의 상황 때문이다. 디즈니와 산하 스튜디오들은 올 한 해 내놓는 작품마다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며 쓴맛을 봤다. 마블의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더 마블스>는 히어로물에 대한 피로감 속에 관객의 외면을 받았고, 픽사의 <엘리멘탈>과 디즈니 실사 영화 <인어공주>도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았다. 2023년 마지막 작품 <위시>마저 지난달 미국 현지 개봉 이후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2019년 출시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도 목표 구독자 수를 달성하지 못한 채 4억달러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 중이다.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2021년 3월 197달러였던 디즈니 주가는 90달러(28일 기준)에 머물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최대주주 중 하나인 행동주의펀드 트라이언 파트너스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이사 자리를 요구하며 경영권 싸움도 시작됐다. 트라이언 파트너스는 지난 1월에도 같은 요구를 했으나 디즈니가 구조조정안을 수용하며 사태는 일단락됐다. 디즈니는 올해 직원 8000명을 해고하는 등 수익성 개선에 나섰지만 주가가 회복되지 않자 분쟁이 재점화됐다. 트라이언 파트너스는 디즈니 이사회 2석 확보를 목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즈니는 깊은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외신들은 팬데믹 기간 변한 관객의 체질을 인정하면서도 결국 콘텐츠의 질 향상에 탈출구가 있다고 봤다. BBC는 “올해 디즈니 영화들은 그저 충분히 좋지 않았다”며 약한 콘셉트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플롯, 인기 프랜차이즈에 대한 과도한 의존 등을 비판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강혜경 “명태균, 허경영 지지율 올려 이재명 공격 계획”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수능문제 속 링크 들어가니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메시지가?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 죽고 싶을 만큼 미안하고 사랑한다”
- ‘거제 교제폭력 사망’ 가해자 징역 12년…유족 “감옥 갔다 와도 30대, 우리 딸은 세상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