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선균, 상대를 빛나게 해준 명배우를 추모하며[MD칼럼]
[곽명동의 씨네톡]
이선균의 연기는 상대를 빛나게 해준다. 드라마 ‘하얀거탑’에서 이선균(최도영 역)은 자상하고, 친절하고, 사려 깊었다. 직관적인 성격의 김명민(장준혁 역)이 돋보였던 이유다. 영화 ‘화차’에서 김민희(차경선 역)의 서글픈 인생사는 이선균(장문호 역)의 애타는 사랑이 있었기에 더욱 슬프게 다가왔다. 홍상수 감독의 ‘첩첩산중’, ‘옥희의 영화’, ‘우리 선희’에 이어 최근작 유재선 감독의 ‘잠’에서 정유미의 연기 역시 악기 베이스처럼 영화를 받쳐주는 이선균의 연기로 인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끌벅적한 멀티 장르 무비 ‘킬링 로맨스’에서 “잇츠굿”을 외치며 다소 과장된 연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하늬와 공명의 연기는 또렷하게 숨을 쉬었다.
변성현 감독의 ‘킹메이커’에서도 그는 상대배우 설경구의 존재감을 도드라지게 했다. 이 영화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정치인 김운범(설경구)과 존재도 이름도 숨겨진 선거 전략가 서창대(이선균)가 치열한 선거판에 뛰어들며 시작되는 드라마를 그린 작품이다. ‘킹메이커’의 뜨겁고 아련한 브로맨스는 이선균의 연기로 더 뭉클했다. 운범을 향한 창대의 감정이 결국 ‘킹메이커’의 핵심이다. 창대는 그림자의 세계에 살며 빛의 세계에 사는 운범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감독의 말처럼, 그림자는 빛을 사랑하지만 빛이 강할수록 더 까맣게 되는 역설을 지녔다. 이선균이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빼어난 연기를 하겠는가.
아이유는 2018년 방송된 드라마 ‘나의 아저씨’로 연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전까지 밝은 역할을 주로 해오던 그는 이 드라마 이후로 어두운 캐릭터도 잘 소화하는 배우가 됐다. 아이유의 연기는 넉넉하게 품어주는 이선균의 리액션과 만나 실감을 더했다. 이선균이 27일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자 많은 사람들이 ‘나의 아저씨’의 명대사를 찾았다. 이 드라마에서 이선균(박동훈 역)은 아이유(이지안 역)에게 “항상 니가 먼저야. 옛날 일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조언했다. 대중은 이선균이 자기 대사처럼 살기를 바랐다.
이선균을 잃은 슬픔 속에 그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알려졌다. 뉴스매거진 시카고는 27일 유튜브 채널에 ‘나의 일기는... 故 이선균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라는 제목으로 지난 10월 7일 미국에서 진행한 해당 매체와 고인의 대담 영상의 일부를 공개했다. 앞으로 어떤 연기를 펼치고 싶느냐"는 질문을 받은 이선균은 "앞으로도 또 다른 일기를 써나가겠다"며 "어떤 거를 굳이 하고 싶다고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니고 한 작품, 한 작품, 캐릭터 하나가 또 하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니까 헛되이 하지 않고 감사히 여기면서 만들어가고 싶다"고 답했다.
그의 일기는 2023년 12월 27일 멈췄다. 그가 생전에 써 내려간 일기는 대중의 기억 속에 영원히 재생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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