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오! 거룩한 포퓰리즘

2023. 12. 2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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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닥쳐온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홍콩 정부는 모든 가구에 전기요금을 월 300달러 범위에서 지원해주기로 했다.

홍콩 정부가 쌓아둔 정부 저축을 활용하지 않고 전기회사에 압력을 넣어 전기요금을 낮추도록 했다면 경제를 어렵게 만든 나쁜 포퓰리즘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탈원전을 이유로 가격 통제로 일관한 지난 정부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전기요금을 옥죄어 한국전력을 부실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나쁜 포퓰리즘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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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때 홍콩 전기료 지원
가격 인하 대신 정부 곳간 사용
포퓰리즘에도 시장 교란 없어
韓 정부는 '툭' 하면 한전 압박
공매도 금지 등 시장개입 많아

2008년 닥쳐온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홍콩 정부는 모든 가구에 전기요금을 월 300달러 범위에서 지원해주기로 했다. 210만가구를 돕기 위해 동원된 예산은 47억홍콩달러였다. 그해 홍콩 예산의 1.6%에 해당하는 규모였기 때문에 이 정책이 발표되었을 때 홍콩 언론이 붙인 타이틀이 바로 오 홀리 포퓰리즘(거룩한 포퓰리즘)이었다. 언론의 비판적인 의도와 달리 이 정책은 환영과 지지를 받았고 그 후에도 두세 차례 시행되었다. 제목 그대로 성공한 포퓰리즘이 된 것이다.

포퓰리즘을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선심성 정책이라고 정의한다면 민주주의는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유권자에게 선택을 받아야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보면 포퓰리즘 경쟁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성공하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간 차이는 포퓰리즘 유무보다 포퓰리즘적 정책이 시장경제의 원활한 운영을 저해하는지에 달려 있었다.

홍콩 정부가 쌓아둔 정부 저축을 활용하지 않고 전기회사에 압력을 넣어 전기요금을 낮추도록 했다면 경제를 어렵게 만든 나쁜 포퓰리즘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전기회사는 생산비에도 못 미치게 전기를 팔아야 하고 회사가 부실해져 전력 과소비 등 경제 전체의 비효율로 이어졌을 것이다. 가격 통제가 결과적으로 경제 전체에 타격을 초래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정부는 이를 선호한다. 실행하기 쉽고 유권자의 즉각적인 지지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서민과 중소상공인 보호를 이유로 홍콩과 같은 재정 지원이 아니라 전기요금 억누르기를 하고 있다. 탈원전을 이유로 가격 통제로 일관한 지난 정부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전기요금을 옥죄어 한국전력을 부실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나쁜 포퓰리즘에 해당한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공매도를 금지한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공매도는 주식시장에 거품이 끼는 것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이고 가장 흔한 나쁜 포퓰리즘은 과도한 재정 지원이다. 정부가 돈을 쓰는 것은 본질적인 부분이므로 이를 공약한다고 해서 포퓰리즘이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다. 문제는 재정 지원이 정부의 부담 능력을 벗어나면 경제 전체를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중앙은행 차입을 통해, 즉 돈을 찍어가면서까지 무분별하게 재정 지원을 남발해서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를 경험한 사례는 중남미 국가에서 이미 수차례 목격했다. 중남미의 도널드 트럼프로 불리는 하비에르 밀레이를 선택한 아르헨티나가 바로 그런 나라였다. 중앙은행을 없애고 미국 달러를 쓰겠다는 것은 극도의 긴축 메시지였지만 그가 승리한 것은 아르헨티나 국민이 재정 포퓰리즘의 폐해에 신물이 난 결과라고 하겠다.

우리나라가 한국은행에서 차입을 통해서까지 재정을 지원하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나랏빚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므로 경계심이 필요하다. 일본의 예에서 보듯이 국가 채무는 한 번 늘어나면 건전한 상태로 되돌리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 간에 포퓰리즘 경쟁이 이미 시작되었다.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포퓰리즘 경쟁이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힘이 내세운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이나 공매도 금지 등은 서막에 불과하다. 주식투자자를 의식해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대폭 완화한 데 이어 영세 서민과 중소상공인의 부채를 탕감하려는 시도도 나타날 수 있다. 포퓰리즘의 홍수에서 내년 선거를 밝은 미래로 가는 과정으로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유권자 몫이다.

[최광해 칼럼니스트·전 국제통화기금 대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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