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맞은 공지영이 돌아본 삶과 영성…신작 에세이 출간

김용래 2023. 12. 2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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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공지영은 지난 몇 년간 작가로서 번아웃에 시달렸다.

작가로 살기 시작한 이래 평생 처음으로 글을 쓰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생각, 글을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환갑 무렵에 뒤늦게 하게 됐는데, 어느 날 그의 거처인 경남 하동 평사리를 찾아온 후배가 보낸 문자메시지에 마음이 흔들리고 만다.

지리산 평사리에서 예루살렘, 그리고 다시 평사리로 돌아오는 여정에 작가가 직접 찍은 수십 장의 사진도 곁들여져 그와 함께 중동과 지리산 구석을 여행하는 기분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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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지리산 정착 후 훌쩍 떠난 중동 순례기
공지영 작가(2019년)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소설가 공지영은 지난 몇 년간 작가로서 번아웃에 시달렸다.

작가로 살기 시작한 이래 평생 처음으로 글을 쓰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생각, 글을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환갑 무렵에 뒤늦게 하게 됐는데, 어느 날 그의 거처인 경남 하동 평사리를 찾아온 후배가 보낸 문자메시지에 마음이 흔들리고 만다.

'맨날 흔들리고 치이는 저 같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을 해주세요. 삶이 너무나 공허하고 버거워요.'

이후 가깝게 지내던 한 후배의 갑작스러운 젊은 죽음을 접하고 망연자실한 그는 뜬금없이 예루살렘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지금까지 많은 곳을 여행하며 순례기를 썼지만, 예루살렘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그였다.

공지영의 신작 에세이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해냄)는 작가가 이렇게 글쓰기의 위기를 맞은 시점에 훌쩍 떠나 중동 순례를 마치고 돌아와 선보인 책이다

그의 대표 에세이라 할 수 있는 '수도원 기행' 1·2의 계보를 잇는 이 책은 작가의 지나온 삶에 대한 반성 어린 통찰과 영적인 삶에 대한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이 담겼다.

거주지인 경남 하동 평사리를 출발한 작가는 요르단 암만을 시작으로 갈릴래아 호수, 요르단강, 쿰란, 나사렛, 베들레헴, 예루살렘 등 예수의 흔적을 따라 순례에 나선다. 요르단과 이스라엘 국경을 비롯해 곳곳에 세워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장벽과 철조망, 실탄이 장전된 총을 든 군인들의 적의에 가득한 눈빛과 고압적인 태도에 직면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가 중동 순례를 마친 1년 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전쟁에 돌입하고 만다.

지리산 평사리에서 예루살렘, 그리고 다시 평사리로 돌아오는 여정에 작가가 직접 찍은 수십 장의 사진도 곁들여져 그와 함께 중동과 지리산 구석을 여행하는 기분도 든다.

소위 '86세대'라는 자기 세대를 반성하며 돌아보는 대목도 눈여겨볼 만하다.

"우리 세대는 너무나 많은 그리고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시든 꽃을 잘라버리는 대신 그걸 가리키는 손목을 잘라버리고 있다. 이처럼 큰 비극은 없을 테지만 우리 동기들은 농담으로도 자신들이 증오하던 그 권력을 닮다 못해 뺨치며 능가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74쪽)

[해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중동 순례를 마친 작가는 3년 전 정착한 경남 하동의 평사리로 되돌아온다.

평사리는 박경리의 기념비적인 대하소설 '토지'의 주요 배경인 마을로, 공 작가가 소녀 시절부터 문학의 성지처럼 여기던 곳이었다.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던 대작가가 필생의 역작을 길어 올린 무대였던 바로 그 지리산 자락에서 후배 작가 공지영은 치열했던 젊음을 뒤로하고 어느덧 맞게 된 노년을 조용히 묵상하며 보내는 중이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활발히 사회적 발언을 하던 것도 접은 지 오래다.

그래도 학대당하던 개 동백이를 우여곡절 끝에 품 안에 들인 뒤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쾌차시킨 사연에선 여전히 '화이팅' 넘치는 면모가 느껴지기도 한다.

책의 제목에서 읽히듯이, 그가 소란스러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리산 자락의 마을을 거처로 정한 것은 자발적 고립을 위해서다. 외로움은 유폐나 단절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에 다다르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작가는 강조한다. 예수의 고난을 따라나선 중동 순례도 그 과정의 하나다.

적막에 둘러싸인 평사리의 자연은 작가의 자유를 향한 여정의 동반자 같다.

"시골에 살다 보니 자연의 빛이 내게 흘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연의 빛 속으로 들어간다. 이 자연은 가만히 놓아두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하나가 된다. 아무리 큰 통나무라 해도 생명이 다한 후에 그것들은 아스라이 흙 속으로 스며들어 하나가 된다. 어쩌면 죽는다는 것은 소멸이 아니라 하나 됨이다."(작가의 말에서)

해냄. 340쪽.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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