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이재명 만나 “현애살수”···사실상 대표 사퇴 요구

박순봉 기자 2023. 12. 2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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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떠러지서 잡던 손 놓듯 ‘특단 대책’ 촉구
과감한 혁신·2선 후퇴 비대위 등 해석 분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2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오찬 회동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2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기”라며 사자성어 ‘현애살수’를 인용했다. 현애살수는 낭떠러지에서 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는 뜻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집착을 버리고 비장한 결단을 하라는 취지다. 이 대표의 대표직 사퇴를 요구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 대표는 혁신과 통합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이 대표와 정 전 총리는 이날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만나 약 2시간 동안 점심 식사를 함께했다. 대체로 정 전 총리가 조언을 하고 이 대표가 듣는 자리였다.

정 전 총리는 이날 총선 승리를 위해 통합과 혁신, 이 대표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정 전 총리가 총선 승리의 필요 조건으로 단합을 언급한 뒤 “구심력보단 원심력이 커지는 모양새가 있어서 걱정스럽다. 당의 분열을 막고 수습할 책임, 수습할 권한 모두 당대표에게 있기 때문에 당대표가 책임감을 가지고 최근의 상황들을 수습해 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낙연 전 대표의 탈당 및 신당 창당 움직임을 이 대표가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다.

권 수석대변인은 “통합은 최선이고 연대는 차선이고 분열은 최악이라고 했던 (정 전 총리) 본인의 경험을 말씀하셨다”며 “중도층을 견인할 전략을 잘 짜야한다. 지역적으론 수도권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정 전 총리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선민후사’하겠다고 말한 걸 언급하며 이 대표에게 ‘선민후민’의 정신으로 정치를 해달라고도 당부했다.

정 전 총리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기다. 이런 대책도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에 깊이 숙고해서 해야 한다”며 현애살수를 언급했다고 한다. 권 수석대변인은 “필요할 때 결단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말씀하셨고, 그렇게 하면 당도 나라에도 (이) 대표에게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밝혔다.

정 전 총리는 선거구제를 두고는 “신속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여야 간에 빨리 결단을 내리라”는 취지로 이 대표에게 말했다. 정 전 총리는 “이미 (내년 총선) 예비 후보를 등록하는 선거 시기가 됐는데 선거제도조차 확정 못 했단 건 여야가 모두 국민들께 면목이 없는 행위”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전 총리는 약속한 현행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해야 하고, 지도부가 병립형 회귀를 결정했다면 사과를 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는 입장인 걸로 전해졌다.

권 수석대변인은 “이 대표께서 다 경청하셨고 비상한 시기라는 것에 공감을 표했다. 총선이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린 선거란 점도 공감했다”며 “국민 눈높이에 맞는 혁신, 그리고 당내 통합 두 가지를 조화롭게 하는 게 어려운 문제지만 당대표로서 최선을 다해서 조화롭게 이뤄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 전 총리가 말한 특단의 대책과 결단을 두고는 해석이 엇갈린다. 권 수석대변인은 “정 전 총리가 비대위나 2선 후퇴와 같은 것에 대해 콕 집어서 말씀하시지는 않았으며 특단의 대책, 과감한 혁신을 말했기 때문에 2선 후퇴나 비대위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반면 정 전 총리 측 관계자들은 이 대표의 대표직 사퇴를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한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결단은 대표직 사퇴를 의미하는 걸로 보인다. 하지만 이 대표가 사퇴를 하라고 해도 나갈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정 전 총리가) 에둘러 표현했을 것”이라며 “현애살수를 말씀하신 것도 이 대표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특별한 대책이라는 게 뭐가 있겠느냐. 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당연히 쓰기 싫어하는 표현”이라며 “(이 대표가) 당 분열에 명분을 주지 않아야 한다. 그때를 놓치지 마라, 이런 얘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총리와 김부겸 전 총리가 움직이면서 이 전 대표와 이 대표 모두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김 전 총리가 이 대표에게 이 전 대표를 만나라고 요구한 데 비해, 정 전 총리는 결단을 언급하며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동시에 두 전직 총리는 이 전 대표의 탈당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도 내놨다. 이 전 대표는 탈당 결심의 부담이 더 커졌고, 이 대표는 점점 더 노골적인 권한 내려놓기 압박을 받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이낙연 신당’에 합류하겠다고 밝힌 최성 전 고양시장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 이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정 (전) 총리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정 전 총리와 이 대표) 대화 내용을 간략히 들었다”며 “정 총리로서는 하실 말씀 거의 다 한 걸로 보이고, 이 대표의 대답은 없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대표와 연락을 주고 받는 상황에 대해서는 “문자로 측근을 통해서 답을 드리겠노라고 답을 드렸다”며 “그런데 측근을 통한 협의에 의견 접근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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