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野에 떠밀린 '예산 타협'…새만금·지역상품권 6000억 결국 증액
'이재명표 예산' 다수 반영
정부 건전재정 기조는 유지
새만금 공항 예산 50% 복원
원전 예산 1814억원 되살려
내년도 예산안이 여야 간 야합으로 ‘이재명표 예산’이 새로 편성되거나 증액된 채 국회를 통과하게 됐다. 정부안에서 전액 삭감된 지역화폐 발행 예산이 3000억원 증액됐고, 새만금 예산도 비슷한 규모로 늘어났다. 반면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등 정부의 주요 추진 사업은 줄줄이 삭감됐다. 정부가 올해 16.6% 삭감해 편성한 연구개발(R&D) 예산은 여야 합의로 6000억원 증액돼 R&D 예산 효율화 취지도 퇴색하게 됐다.
◆이재명표 예산 편성
20일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여야 합의문에 따르면 2024년 R&D 예산은 정부안(25조9000억원)보다 6000억원 늘어난 26조5000억원으로 편성됐다. 올해 예산(31조1000억원) 대비 14.8% 감소한 규모다. 현장 연구자의 고용 불안을 해소하고 차세대 원천기술 연구 보강, 최신·고성능 연구장비 지원을 위한 조치라는 게 여야의 설명이다.
야당의 ‘이재명표 예산’이 증액되거나 새로 편성된 것도 특징이다. 당초 정부안에서 빠졌다가 부활한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이 대표적이다. 여야는 예산 3000억원을 편성해 지방자치단체의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지원하기로 했다. 여야가 이견을 보이며 충돌했던 새만금 관련 예산도 3000억원 증액했다. 최대 관심사인 새만금국제공항 예산은 최대 50%까지 복원될 것으로 알려졌다. 새만금공항의 부처 요구액은 580억원이지만, 정부 예산안은 11%인 66억원에 그쳤다.
정부와 야당 모두 역점 사업으로 추진 중인 ‘간병비 급여화’ 시범사업 예산도 되살아난 것으로 알려졌다. 간병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개인의 부담을 줄여주는 급여화는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당초 보건복지부가 내년도 시범사업 예산으로 16억원을 편성했지만 재정 긴축 기조 속에 최종 정부 예산안에선 빠졌다.
여야는 원자력 예산 1814억원은 기존 정부안대로 전액 복원하기로 했다. 지난달 2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삭감한 예산이다. 민주당은 원자력 업체를 위한 금융지원 예산(1000억원)을 비롯해 내년 본격적인 착수를 앞둔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R&D 사업비 332억8000만원을 전액 감액했다. i-SMR은 일반 원자력발전에 비해 안전성과 경제성이 높아 에너지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꼽힌다.
민주당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전액 삭감했던 청년 취업진로 및 일경험지원 사업 예산(2382억원)도 모두 복구됐다. 청년들이 인턴, 기업탐방 등 다양한 일경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지원하는 것으로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인 청년 일자리 사업으로 꼽힌다.
이 밖에 청년과 소상공인, 재생에너지 지원, 공공병원 지원 예산 등이 증액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소상공인의 경우 이자 및 전기요금 지원액이 늘었다”며 “이 밖에 민생 사업 예산이 조금씩 증액됐다”고 설명했다. 당초 정부는 고효율 냉난방설비 보급 확대(1100억원), 대환대출 등 금융비용 지원(8000억원) 등 9200억원을 편성해 소상공인 12만4000명을 지원한다는 방침이었다.
◆ODA 사업 예산 삭감
이날 여야는 국회 예산 심의로 정부안 대비 4조2000억원을 감액하면서 국가채무와 국채 발행 규모는 정부안보다 늘리지 않기로 했다. 앞서 정부는 올해 본예산보다 2.8% 늘어난 총지출 656조9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해 지난 9월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사업별 증·감액 규모를 합산하면 내년도 예산안의 총지출 규모는 정부 원안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가 합의한 감액 사업에는 ODA 사업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감액 규모는 2500억~3000억원으로 알려졌다. 당초 정부는 내년 ODA 예산을 전년보다 44% 늘린 6조5000억원으로 확대 편성했다. 한국이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3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국제 원조 수준이 빈약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야당을 중심으로 ODA 예산 확대는 과도한 ‘해외 퍼주기’라는 지적이 일었고, 여야는 ODA 예산 삭감분을 활용해 R&D 예산 일부를 복원하기로 했다.
박상용/황정환/양길성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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