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몸을 희화화하면서도, 이 사람들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먹찌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난 10월 말 시작한 SBS 주말 예능 <먹찌빠>는 꽤 색다른 접근이다. 2010년대 후반 이후 실패의 역사만 쌓아가는 리얼 버라이어티, 그것도 몸개그를 내세운 게임 위주의 야외 버라이어티를 주말 예능에 편성했다. 거기다가 정치적 올바름의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뚱뚱한 몸을 희화화하는 것이 기획의 시작이자 게임 구성의 핵심이요 웃음의 본질로 삼는다. 물론 뚱보라는 표현은 지양하고 덩치로 순화한다. 부제가 덩치서바이벌이고, 게임 명들이 '기상천외 덩치방앗간' '덩치 히말라야 정복기' '덩치봉오리' '덩치 낚시' 등인 이유다.
파일럿으로 시작해 정규로 안착한 <먹찌빠>는 박나래와 서장훈을 팀장으로 삼아 연예계에서 한 덩치 한다는 사람들이 모여 5대5로 팀을 나눠 먹을 것을 걸고 여러 가지 게임을 펼치고 당연히 중간 중간 먹방 시간을 갖는다. 승패는 촬영 초반 측정한 팀 전체의 몸무게와 모든 게임을 소화한 이후 측정한 몸무게의 차이가 적은 팀이 승리하는 단순한 룰이다. 오롯이 게임을 위해 설치한 거대한 세트, 몸을 쓰는 게임과 수다, 팀전이란 점에서 과거 20년 전의 KBS 예능의 전설적 코너 '공포의 쿵쿵따'나 <무한도전>의 전신인 <무모한 도전> 등이 연상된다.
즉, 효용과 진정성이 예능의 절대적 덕목이 된 지금 스토리텔링이나 당위성을 제하고, 오로지 웃음만을 채취하기 위한 인위적이며 단순한 설정을 가진 굉장히 올드스쿨한 시도다. 단체로 체육복을 입고 가을운동회나 혹한기 훈련 등의 콘셉트는 정확히 10년 전 전성기가 끝난 리얼 버라이어티의 방식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가장 안정지향적인 지상파 주말예능임에도 보여주고 있는 신선한 시도들이다.
우선 잘 먹는 사람들의 몸을 희화화하는 원초적 콘셉트를 그것도 게임예능으로 풀어갔다는 것은 가상한 용기다. 공개코미디에서도 무척 조심하는 개그의 소재로 외모를 활용하는 접근을 아예 기획의도로 삼았다. 많이 먹는 '먹방' 콘셉트로 덩치들이 소환된 적은 있으나, 아예 몸개그의 소재로 뚱뚱한 몸을 내세운 것은 멸종의 부활에 가깝다. 카메라는 불룩한 뱃살을 수차례 클로즈업하고, '물찌빠'라고 할 만큼 안 그래도 떨어지는 체력을 쉬이 고갈시키고 볼거리로 내세운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도록 각종 게임을 주로 '물'을 활용해서 한다. 먹방의 리얼 버라이어티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 뚱뚱하고 둔해서 만들어지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몸개그에 필연적인 다소 인위적인(살짝 가학적인) 게임으로 풀어간다.
그런데 분위기가 다르다. 게스트로 나온 탁재훈이 부활한 계기도 그가 대상화하는 게스트들의 당당한 태도 덕분이듯이, 10명의 출연자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희화화를 즐기는 주체성이 불편함을 상쇄한다. 자신의 몸을 인정하고 웃음의 소재가 되는데 오히려 당당하다는 점이, 이 프로그램의 웃음의 산뜻함을 보장한다.
유희한다는 점은 늘 불편의 장벽 위에 서 있어야 하는 코미디, 예능에 있어 굉장한 자산이다. 특히 스토리 대신 스케일 있는 게임 예능이라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에 몰입하게 하는 당위는 출연자들이 얼마나 유희를 즐기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비슷한 처지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먹방 팁을 주고받으며, 살이 쪘다는 것에 피차 큰 스트레스가 없다는 점이 단순한 몸개그 게임 예능의 피로도를 줄여준다.
여기서 더욱 신선한 점은 오랜만에 각 잡고 만든 스케일 있는 야외 버라이어티, 게임 예능인데 노련한 A급 MC가 없다는 점이다. 감초 역할을 하는 예능 선수도 없다. 물론 서장훈과 박나래라는 톱급 예능인이 포진하고 있으나 이 둘 모두 주 무대가 야외버라이어티가 아니다. 특히 서장훈은 게스트로 나온 이상민이 "이 프로그램에 투자했냐"고 반문할 정도로 그간의 필모그라피와는 맞지 않는 색의 예능이다. 더 나아가 출연진을 보면 신동과 이국주 정도를 제외하면 기존 예능선수들을 탈피한 나름의 혁신적인 멤버 구성이다.
야구선수 최준석, 웹예능에서 거친 입담으로 인기를 모았으나 지상파예능에서는 비교적 신예급인 신기루와 풍자, 조폭 담당 배우 이규호와 이규철, 마찬가지로 웹예능이 주 무대인 99대장 나선욱 등 기존 예능 무대에서 활약하는 사람들보다 다양한 무대에서 활약하는 인물들을 규합했다는 점이 무척 색다르고 중장년층이 주로 포진한 다소 보수적인 시간대에 편성했다는 점이 신선하다.
기존 예능선수들도 늘 하던 판과 다른 무대에 와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예능 자체가 낯선 출연자가 많지만 끊임없이 웃으면서 어색함이 없다. 잘 먹고 그런 만큼 덩치가 크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는 연대감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패밀리십을 만들면서도 기존 리얼 버라이어티의 관계망 형성 방식인 비난과 비방을 섞어서 웃음을 만드는 샌드백롤과 웃음 히터 등의 역할 설정 방식을 따르진 않는다.
서장훈은 한 인터뷰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이유에 대해 "이런 프로그램이 하나쯤은 꼭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먹찌빠>처럼 신선하고 새로운 웃음을 주는 프로그램이 계속 방송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나 게임 예능의 고질적인 문제인 장시간 게임을 지켜보게 만드는 힘이 얼마나 지속될지가 숙제겠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예능선수인 이상민과 탁재훈이 연신 놀라고 특히 탁재훈의 웃음 벨이 눌리는 것을 볼 만큼 <먹찌빠>는 트렌드에 반하는 오래된 형식의 예능에 새 사람을 들이고, 기존의 관습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정반합으로 빚어낸 최근 TV예능 중 다양성 차원에서 가장 신선한 콘텐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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