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약재로 ‘지식’ 얻고 체험으로 ‘쉼’을 얻다
[서울&]
유향·몰약·금박 등 처음 보는 약재들
예로부터 사용한 채취·약달임 도구들
기민들 위해 설치됐던 보제원 전통을
약령시 한복판에서 오늘에 전해주다
서울약령시 한복판에 있는 서울약령시한의약박물관으로 가는 길, 한약재 향기에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11세기에서 근대까지 살았던 누군가 환자의 병이 낫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잡았던 도구들, 약초 채취 도구부터 약을 달이는 도구들이 전시됐다. 한쪽 벽을 가득 메운 약재 중 처음 보는 게 많았다. 신기한 약재도 있었다. 전시관을 다 둘러보고 나와 보제원 체험을 하고 한방족욕솔트를 만들어 아내에게 선물했다.
보제원의 정신을 알리는 서울약령시한의약박물관
안암오거리 시내버스 정류장 옆에 놓인 푯돌 하나가 눈에 띈다. ‘보제원 터’를 알리는 푯돌이다.
‘지난겨울부터 보제원(普濟院)과 이태원(利泰院) 두 곳에 진제장(賑濟場)을 설치하고 사방에서 유이(流移)하여 오는 기민(飢民)들을 진제하니, 이를 받아먹는 자가 각각 천여 인이나 되었다. 매일 관가에서 한 사람마다 쌀 한 되 5홉을 주고 아울러 소금과 간장을 주니, 사방에서 부황이 나서 죽게된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살아났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에 기록된 보제원에 관한 이야기다.
보제원은 빈민구제, 의료 기관이었고 은퇴한 관료들과 원로들에게 잔치를 베풀어주던, 경로효친 사상을 구현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고종 때까지 그 이름이 나온다. 고려시대에도 이름은 다르지만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있었다.
가난한 백성에게 의술을 베풀고 먹을 것을 나눠주던 제도는 시대를 막론하고 이어지는 선한 전통이었다.
서울약령시한의약박물관은 보제원의 정신을 오늘에 알리고 있다. 박물관이 들어선 곳은 서울약령시 한복판이다. 서울약령시는 1950~1960년대 한약재 전문 시장으로 성장해 1970~1980년대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약재 집산지로 자리 잡게 됐다. 1995년 서울약령시로 지정됐다. 서울약령시한의약박물관은 2006년에 문을 열었다.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한의원, 한약방, 약재상 간판이 즐비하다. 거리에 퍼지는 한약재 냄새만 맡아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박물관 1층에 보제원을 재현한 축소 모형 전시물을 배치한 것은 서울약령시한의약박물관이 보제원의 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실 한쪽 벽에 가득한 약재들
박물관 2층으로 올라가서 전시실을 둘러본다. 한의학은 삼국시대 중국에서 유입돼 일본에 전파했고, 고려시대에는 ‘향약’이라는 고유의 개념을 확립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동의’라는 의학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설명을 읽고 본격적으로 전시실을 둘러본다.
백제는 400년대에 일본에 의사를 파견하고, 고구려는 500년대에 의학서적을 전해줬다. 신라시대에는 최초의 의학교육기관인 의학을 설치했다. 고려시대에도 평양에 의학교를 두었고, 과거에 의사 시험도 있었다. 이렇게 쌓인 우리의 한의학이 조선 개국 초기에 보제원을 세우고 가난한 백성을 돌보는 선정으로 이어졌다. 제생원 설치, 의녀 양성, <향약집성방> 편찬, <의방유취> <언해구급방> 그리고 1600년대 초반에 <동의보감>이 간행됐다. 1800년대에 이르러 이제마는 사상체질의학이라는 의학을 주창했다. 시대별로 한의학을 소개하면서 같은 시기 서양 의학계에서 일어난 중요한 일도 적어놓고 있다.
조선시대 정조 임금 때 간행된 <제중신편> 필사본이 전시됐다. <제중신편>은 청나라로 건너가 8원7책으로 발간됐다고 한다. <광제비급>은 정조 임금 때 함경도관찰사 이병모가 의료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지방 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겨 이경화에게 엮어 짓게 한 책이다. <주촌신방> <의방대요> <동의보감> <동의수세보원> 필사본도 전시됐다.
한의학 서적에 이어 발길이 닿은 곳은 전통의약기구가 전시된 곳이었다. 약재를 채취할 때 쓰이는 채약기구, 약재의 양을 알맞게 배합하기 위한 약도량형기, 약재를 가루로 만들던 기구, 약재를 가공하거나 약물을 제조하는 데 사용했던 제약기, 액체로 된 약을 담거나 따를 때 사용하는 약성주기, 약을 보관했던 약저장기가 한곳에 모여 있다. 전시품은 11세기부터 근대까지 당대에 실제로 누군가 사용했던 유물이다.
식물성, 동물성, 광물성 약재가 벽에 가득 전시됐다. 복분자, 결명자, 계피, 송이, 인삼 같은 흔히 보고 들었던 것들이 눈에 띈다. 진주, 백반, 유향, 몰약, 금박 같은 것도 오래 전부터 한약재로 쓰였다. 처음 보는 약재 이름이 훨씬 더 많았다.
침통에서 예술을 보고 체험으로 쉼을 얻다
‘침통, 소망을 담다’라는 제목의 전시에서는 원통형 혹은 각진 침통에 새겨진 무늬를 펼친그림으로 그린 그림과 침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펼친그림도 좋았지만, 작은 육각 은제 침통이나 원형 목재 침통에 새긴 선 하나하나에서 옛사람들의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
이어지는 전시물은 약초마을 이야기다. 약초 채취부터 약을 달이는 과정까지 축소 모형으로 만든 전시물이 재미있게 이해를 돕는다.
약초를 채취할 때는 뿌리, 줄기, 잎, 꽃 등 쓰이는 부분에 따라 그 약효가 가장 왕성할 때 채취해야 한단다. 약초를 가공할 때도 햇볕에 말려야 할 것, 그늘에 말려야 할 것, 건조 뒤 가위나 칼로 썰어야 할 것, 약연이나 맷돌로 갈아야 할 것 등이 있다. 이렇게 가공된 약재는 장터에서 거래되는데, 조선시대에는 대구, 전주, 원주 등에서 약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시장인 약령시가 열렸다고 한다. 한의원에서는 진료, 치료, 약의 조제, 약 판매를 했다. 이렇게 판매된 약재를 집에서 달여 약을 만들어 먹었다. 약을 달이는 약탕관은 곱돌이나 질그릇이 좋았다. 은은하게 데워지고 서서히 식기 때문이다. 상수도 시설이 없던 시절에는 약을 달이는 물도 중요했다. 좋은 물을 길어 와서 약을 달이는데, 약 무게의 5~8배의 물을 붓고 달여서 40~60%가 남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계절별 마시기 좋은 한방차도 소개하고 있다. 봄에는 쑥차, 결명자차, 벚꽃차, 여름에는 오디냉차, 현미차, 대추차, 가을에는 길경차, 황국차, 두충차, 겨울에는 모과차, 계피차, 오미자차가 좋다고 알려준다. 약전한약방이라는 간판이 걸린 한약방을 재현한 곳이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고 소개한다. 이제 마의 사상체질을 진단하는 기계 앞에서 대부분 사람이 멈춘다. 질문에 따라 ○×를 선택하며 진행하면 그 결과를 알려준다. 중년부부가 결과를 보고 뭐는 맞는데, 이건 틀리네 하며 소리 내서 웃는다.
전시실 관람이 끝나는 곳에서 체험이 시작된다. 팔각회향, 박하, 당귀를 넣은 향주머니를 만들어 가져갈 수 있다. 입욕제를 만들고 한방 족욕제도 만들어본다. 3층 보제원에서는 손 마사지와 발 마사지, 온열안마를 체험할 수 있다.(이상 유료) 보제원을 체험한 뒤 편해진 몸으로 다시 2층에 내려와 족욕제를 만들어 집으로 가져왔다. 아내에게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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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체험정보>
관람시간: 3~10월 오전 10시~오후 6시. 11~2월 오전 10시~오후 5시 휴관일: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이면 그다음 날을 휴관일로 함), 1월1일, 설날, 추석, 그 밖에 동대문구청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관람요금: 1천원 문의전화: 02-969-9241
약초족욕체험: 2024년 2월까지 쉼. 2024년 3월부터 운영. 6천원 보제원 체험: 손 팩, 발(종아리) 지압. 온열 안마매트 체험. 5천원 한약재 향주머니: 팔각회향, 박하, 당귀를 넣은 향주머니. 1개 3천원 인진쑥 입욕제 만들기: 3천원 한방 족욕 솔트 만들기: 3천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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