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한동훈 위원장님, 헌법부터 읽으시지요
국민의힘이 다시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당헌으로 뽑은 대표를 벌써 두 명이나 중도에 하차시킨 결과다. 전권을 행사할 비대위원장으로 한동훈 법무장관을 불러들였다. 장관 시절부터 국정보다는 기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헌법 원칙마저 거스르는 정파적 언술로 보수진영의 ‘스타장관’이 된,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후배다. 가뜩이나 정치보다는 통치에만 의존하는 대통령의 국회출장소처럼 전락한 탓에 총선용 비상체제를 출범시키면서도 벼락처럼 정권을 잡은 검사 출신 대통령의 분신을 또 내세운 집권당의 처지가 처연하기만 하다. 나라 곳곳에 검사 출신을 중용하는 것도 모자라 입법부의 핵심축인 여당의 대표로 내려보낸 것을 수용하는 모양새다. 한 위원장을 추인하는 당내 절차는 왕정시대의 세자책봉식을 연상시킨다. 민주주의는 아랑곳없이 아예 대를 이어 검사정권을 창출하겠다는 꼴이다. 시대착오적인 권력놀음을 위해 대표들을 내치고 비상체제를 출범시킨 것인가.
국민통합은 아랑곳없이 핵심지지층의 기대만은 저버리지 않으려는 듯 정치인 한동훈의 첫 발언은 확실히 ‘검사스러운’ 윤 대통령의 복사판이다. 어슬픈 이념과잉과 남탓이 난무하는 독백만이 넘친다. 집권당의 비대위원장이 왜 비상체제를 꾸리는지에 대한 설명이나 성찰은 없다. 국정에 대한 비전은 뜬구름 잡는 보조적 수사에 그쳤다. 그 자리를 협치의 대상인 야당 대표에 대한 혐오와 실체 없는 ‘운동권 특권세력’에 대한 선전포고로 채웠다.
집권 2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까지 거대야당 대표와의 대화를 거부해온 윤 대통령의 불통노선을 그대로 따라한다. 아무리 마땅찮더라도 입법부의 다수당은 물론 민주적으로 선출된 야당 대표를 부정하고 어떻게 집권당 대표의 책무를 다할 것인지 암담하다. 대통령이 못한다면 여당 대표라도 소통에 나서야 할 텐데 아무리 선거정국이라고 하더라도 아예 상종할 수 없는 타도대상으로 삼고서야 국정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겠는가.
민주공화국은 정견을 달리하더라도 머리를 맞대고 필요한 현안을 입법부가 법률로 의결하고 행정부가 집행하는 국가형태다. 여당과 야당은 모두 국민과 그 대표들의 결사다. 야당의 존재를 부정하면 그게 바로 독재다. 야당이 여당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 또한 민주공화정신에 반한다. 결국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복수정당제를 핵심적 정치제도로 확인한 헌법의 기본정신이다. 야당과 그 대표를 부정하는 것을 정치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스스로 헌법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뜬금없는 불출마 선언은 또 뭔가. 집권당의 얼굴로 나서면서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할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걸 대단한 희생인 양 내세우는 게 어처구니가 없다. 도대체 복수정당제에 기반한 민주적 기본질서의 기초를 제대로 이해는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우리 민주공화제는 정당을 헌법으로 보장하는 특색이 있다. 주권자 국민의 대표기관이 국회와 대통령이라면 정당은 그 토대를 이루는 결사이므로 정당을 통한 대의민주주의를 민주적 기본질서의 필수요소로 확인한 것이다.
선거는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과 그 대표를 평가하는 주권자의 공간이다. 총선용 비대위를 꾸리면서 그 위원장이 불출마한다면 국민은 누굴 보고 집권당을 평가해야 하나. 민주주의가 책임정치를 핵심으로 하는 것이라면 선거의 간판이 출마하지 않을 때 그 당의 공약을 누가 책임지나? 선거 후 의총에서 뽑을 1년짜리 원내대표가 책임지나?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의 분신이니 대통령을 보고 투표하라는 건가?
혹여나 불출마 선언이 혐오대상으로 낙인찍은 이재명 대표와의 차별성을 노린 것이라면 장고 끝에 악수를 둔 것이다. 사심 없이 희생하는 한 위원장을 보고 투표해달라면서 정작 당사자는 선거 끝나고 원외에서 이미지 관리나 하면서 용꿈이나 꾸겠다는 격이다. 아니면 국민의힘의 지역기반인 영남권 물갈이로 용산발 친위부대를 공천하기 위한 극약처방인가? 어느 경우든 정치의 목적이 국민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동네 주먹싸움처럼 여기고 선거를 통해 국민이 국가권력을 위임하고 책임을 묻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근본 규범을 소홀히 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헌법학도의 물정 모르는 탁상공론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한 위원장은 정치의 기본부터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정치의 근본 규범인 헌법부터 차근히 읽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부터 잘 가리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리라. 낙하산이건 스타장관의 후광이건 정치인으로 나섰으니 하루 일정을 헌법 한 조문씩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길 삼가 권한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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