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해부용 시신 없어 쩔쩔…정원 늘리면 '부실 의대' 나온다"

이창섭 기자 2023. 12. 2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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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후년 의대 증원 추진…희망 증원 3000명
"지금도 강의실 자리 부족…해부학 실습 구색 갖추기로 한다"
기초의학 가르칠 교수도 부족, 5년 새 147명 감소
의대 증원 전에 교수·인프라 등 준비 갖춰야…"정부의 재정 지원 필요"

대책 없이 의과대학(의대) 정원을 늘리면 이른바 '부실 의대'가 탄생한다는 경고가 나왔다. 현재도 일부 의대는 양질의 의학 교육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상황에서 충분한 대비 없이 학생 수가 늘어나면 교육의 질적 수준이 떨어진다는 논리다.

강기범 전(前) 대한의과대학·의전원학생협회 비대위원장은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차 의대정원 확대 연속토론회에서 "지금도 유급자가 많은 학년은 강의실에서 자리를 못 잡고, 운 좋은 소수의 학생만이 간이 의자와 책상을 강의실에 구겨 넣고 수업을 들을 수 있다"며 "해부학 실습에선 카데바(해부용 시신) 수급이 되지 않아 구색 갖추기 실습으로 간신히 학사 일정을 소화하는 의대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육 병원의 인프라는 그대로인데 대학 재단의 금전적 이익을 위해 의대 증원만을 목소리 높이는 행태 자체가 부실 의대를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도나도 두 배씩 가능하다고 외쳐 3000명 의대 증원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학교들은 학생들에게 얘기한 예산 부족이 그저 핑계일 뿐이냐"고 덧붙였다.

강기범 전(前) 대한의과대학·의전원학생협회 비대위원장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제4차 의대정원 확대 연속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제공=이창섭 기자

앞서 보건복지부가 진행한 수요조사에 따르면 전국 의대들이 2025학년도에 희망한 입학 정원 확대 수요는 최소 2151명에서 최대 2847명이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40개 의대가 있다. 국립대 10개, 사립대 30개이며 총정원은 3056명이다. 전북대 의대가 142명으로 입학 정원이 가장 많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지금도 지방의 사립 의대에선 기초과학 교육이 상당히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다"며 "충남의 A 의대는 실질적으로 정원이 110명인데 수요조사에서 희망 인원 400명을 신청했고, B 사립 의대에선 40명 정원인데 160명 증원을 희망했다"고 말했다.

의대 증원에 앞서 교수진 확보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김인겸 대한기초의학협의회 회장은 "의대에는 8개 기초의학 교술이 있는데 분야별로 반드시 전임 교수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전원협회 정책연구소장에 따르면 2018년 전국에서 1424명이었던 기초의학 교원 수는 지난해 1277명을 기록했다. 5년 새 147명 감소했다. 1개 의대 당 평균 3.7명이 줄었다.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제4차 의대정원 확대 연속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에서 세 번째는 신 의원, 네 번째는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이다./사진=이창섭 기자

2018년 부실 논란으로 폐교된 '서남 의대' 사례도 소개됐다. 당시 서남 의대 학생들은 근처의 전북대와 원광대로 나눠서 편입됐다. 전북대는 서남 의대 학생들을 받으면서 정원이 급작스럽게 32명 늘었다.

권근상 전북의대 교무부학장은 "당시 32명이 늘어나서 인프라가 부족했다. 110명이 쓰던 공간을 142명이 사용하게 됐다"며 "6명씩 한조로 실습하던 학생들이 갑자기 8명~9명으로 늘었고 그만큼 (실습)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설명했다.

편입 이후 교수 부족 현상도 심화했다. 2017년 전북대 의대의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3.8명이었다. 올해는 1인당 5.5명이다. 비슷한 규모의 거점 국립 의대(4.2명)와 비교하면 많은 편이다. 현재 전북대 의대 교수 수는 148명이다. 재학생 821명을 고려하면 적정 교수 인원은 195.5명이다. 적정 수준보다 47.5명 부족한 상황이라는 게 권 학장의 설명이다.

권 학장은 "전국에서 의대 정원이 3000명 증가한다고 계산하면, 당시 전북대 의대 정원이 32명 늘었던 그만큼의 효과가 다른 학교에서도 나타난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내후년 의대 증원에 준비되지 않은 대학에선 우리가 겪은 아픔을 다시 반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재정적으로 전국의 의대를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우리나라 의대들은 전체 예산의 약 25%를 차지하는 연구비나 시설 관리·운영비를 학생 등록금에서 감당한다. 미국의 공립·사립 의대들이 등록금의 3% 정도만 활용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소장은 "정부가 의대 예산의 10%만 지원하면 40개 대학에 약 130억원이 소요된다"며 "일본에서도 정부가 1개 의대에 약 176억원을 지원하는데 한국은 과연 대학을 위해 얼마큼 지원하는지 묻고 싶다. 의학 교육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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