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시간들’이 쌓인 학전…‘지하철 1호선’은 계속 달려야 한다

서정민 2023. 12. 2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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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렌트'(내년 2월25일까지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의 2막이 시작되자 모든 배우들이 도열해 가장 유명한 넘버 '시즌스 오브 러브'를 불렀다.

'렌트'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현대화한 작품으로, 미국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모여 사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꿈과 열정, 사랑과 우정, 삶에 대한 희망을 그렸다.

그날 밤 깊은 슬픔에 빠져있던 배우들은 라슨을 기리는 뜻에서 '시즌스 오브 러브' 등을 부르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열정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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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의 뮤직박스][서정민의 뮤직박스] 록 뮤지컬 ‘렌트’와 ‘지하철 1호선’을 보고
뮤지컬 ‘렌트’에서 배우들이 ‘시즌스 오브 러브’를 부르는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52만5600분의 귀한 시간들/ 어떻게 재요 1년의 시간/ 날짜로 계절로 매일 밤 마신 커피로/ 만남과 이별의 시간들로/ ​그 52만5600분의 귀한 시간들/ 어떻게 재요 인생의 시간/ 그것은 사랑~”

뮤지컬 ‘렌트’(내년 2월25일까지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의 2막이 시작되자 모든 배우들이 도열해 가장 유명한 넘버 ‘시즌스 오브 러브’를 불렀다. ‘렌트’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현대화한 작품으로, 미국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모여 사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꿈과 열정, 사랑과 우정, 삶에 대한 희망을 그렸다.

뮤지컬 ‘렌트’ 공연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극작가이자 작곡가 조나단 라슨은 실제로 이스트 빌리지에 살면서 겪은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7년간 작품을 준비했다. 사회적으로 금기시됐던 동성애, 에이즈, 마약 중독 등 소재를 수면 위로 드러내고 록, 알앤비(R&B), 탱고, 가스펠 등 다양한 음악들과 뒤섞어 기존에 없던 록 뮤지컬로 탄생시켰다.

1996년 1월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 150석 작은 공연장에서 첫 관객을 맞기 하루 전, 라슨은 대동맥박리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36살이었다. 그날 밤 깊은 슬픔에 빠져있던 배우들은 라슨을 기리는 뜻에서 ‘시즌스 오브 러브’ 등을 부르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열정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다음날 개막을 강행한 공연은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해 판을 뒤집었다. ‘렌트’는 토니상 작품상 등 4관왕에 올랐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사랑과 희망의 노래를 전파하고 있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올해 공연 장면. 학전 제공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 춥고 눈 오는 날씨에도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학전 앞 김광석 노래비 사진을 찍던 한 중년 여성은 “오래전 여기서 공연 본 적이 있는데, 문 닫는다는 소식 듣고 너무 슬펐다. 그래서 왔다”고 했다. 소극장 안은 만석이었다. 머리 희끗한 중장년 관객이 많았다. 오랜만에 뭉친 동창들로 보이는 무리도 있었다.

막이 오르고 ‘지하철 1호선’이 운행을 시작했다. 김민기 학전 대표가 독일 원작을 가져와 1994년 초연한 록 뮤지컬이다. 1990년대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노숙자, 재중동포, 성매매 여성, 건달 등 어두운 곳의 소외된 인간군상을 그려 한국 뮤지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배우 설경구, 김윤석,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 등이 이 무대를 거쳐 성장했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과거 공연 장면. 배우 황정민(앞)과 조승우(뒷줄 맨 오른쪽)가 보인다. 학전 제공

하지만 ‘지하철 1호선’은 오는 31일을 끝으로 운행을 멈춘다. 학전이 창립 33돌을 맞는 내년 3월15일 문을 닫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국 소극장 문화를 상징하는 학전은 지속적인 재정난에다 김 대표의 암 투병까지 겹치면서 힘든 결정을 내렸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며 ‘지하철 1호선’의 마지막 운행을 지켜보려 온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지상으로 계단을 오르는데, 모든 배우들과 연주자들이 도열해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속마음은 슬플지언정 다들 환하게 웃고 있었다. ‘52만5600분의 귀한 시간들’이 33번이나 쌓여온 이곳이 마지막을 향해 치달아도 사랑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안간힘 같았다. 그런 안간힘이 모이고 쌓이면 ‘지하철 1호선’은 다시 달릴 수 있을까. 학전의 귀한 시간들이 헛되이 되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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