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우리도…” 태영건설 워크아웃에 건설업계는 ‘초긴장’

심윤지 기자 2023. 12. 2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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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황은 말 그대로 ‘최악’입니다. 소액이든 아니든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길 자체가 꽉 막혔어요. 태영까지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되면 상황이 훨씬 어려워질 거라고 봐요.” (A중견건설사 임원)

‘시공능력평가 16위’ 태영건설 워크아웃 소식이 알려진 28일 건설업계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동안에도 지방 중소건설사들의 폐업 소식이 이어지긴 했지만, 업계 순위 30위권 내의 1군 건설사의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는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이 부동산 개발 자금을 조달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전체 위기로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채권자들이 태영건설과 사정이 비슷한 다른 건설사의 PF 심사 요건을 강화하거나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나마 자금줄이 막힐 경우 건설사들의 연쇄 도산 사태로도 이어질 수 있다.

‘PF위기’로 워크아웃을 신청한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태영건설 사옥의 28일 모습. 한수빈 기자

28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금융권 합계 부동산PF 규모는 2023년 9월 기준 134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2020년 말 92조5000억원보다 45%가 증가했다. 같은 기간 연체율도 0.55%에서 2.42%로 급증했다. 특히 부동산 호황기에 사업성 낮은 사업장에도 부동산 PF 대출을 많이 내준 저축은행(2.43→5.56%), 상호금융(0.30%→4.18%) 연체율이 급증했다.

건설사들의 ‘우발채무’도 위험 수준에 달했다. 우발채무는 부동산 사업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시공사가 떠안게 되는 빚이다. 한국기업평가가 지난 9월 유효등급을 보유한 21개 건설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건설업계의 우발채무 규모는 23조원에 달했다.

특히 태영건설의 경우 PF우발채무를 포함한 부채비율이 72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업계 ‘레드라인’으로 알려진 300%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코오롱글로벌 등도 PF우발채무가 현금성자산보다 더 많은 회사들이다.

올해 9월 기준 건설사별 PF보증규모. 한국신용평가 제공

부동산PF는 특별한 담보 없이 앞으로의 기대 수익을 보고 일으키는 대출이다. 시행사는 금리를 낮추기 위해 건설사들의 ‘지급보증’을 통해 신용보강을 한다. 문제는 지금 같이 분양시장이 불황일때 발생한다. 시행사가 돈을 갚지 못할 경우 지급보증을 한 건설사가 빚을 떠안게 된다. 태영건설 워크아웃도 성수동 오피스 사업 시행사에 태영건설이 연대보증을 선 400억원대 대출 상환 실패가 발단이었다.

업계에선 부동산 호황기때 몸집을 불린 PF 시장이 태영건설 워크아웃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버티지 못하는 시공사가 나타나고 PF 안정성이 낮아지면서 대주들도 PF 연체율 관리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경자·김재우·백재승·정민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태영건설은 과중한 PF 보증으로 PF 리스크가 시공사로 전이되고 있음을 시사한 사례”라며 “금융당국이 시장 원리에 입각한 구조조정 필요성을 언급한것도 간과할 수 없다”고 했다.

B대형건설사 관계자는 “태영건설 위기론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올 가을부터 PF단의 실사가 깐깐해졌다”고 했다. A건설사 임원도 “이전에는 요구하지 않았던 각종 서류와 소명 자료까지 PF 대주단 측에서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자금 조달 능력이 취약한 중견급 건설사들의 위기 가능성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대기업 건설사는 인·허가가 끝난 본PF 단계에서 주로 지급보증을 선다. 반면 중소 건설사는 수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토지 매입 단계인 브릿지론 단계에서도 보증을 서는 경우가 많다. 또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보다 미분양 리스크가 큰 도급 사업 비중이 높은 것도 문제다.

분양시장 침체로 시공사들의 ‘선별수주’가 심해지는 상황이라 기보유 사업장을 매각하는 ‘자구노력’도 쉽지 않을 수 있다. C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분양시장이 워낙 불황인데 태영건설이 무너지면 분위기가 더 안좋아질까 걱정된다”면서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간대도 해당 사업장을 수백억씩 들여 사줄 건설사를 찾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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