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경로당 설치하니 어르신들이 더 좋아해요
어르신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경로당이 있다. 어르신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거나 TV를 시청하고 게임을 하는 공간이다. 어르신들의 사랑방이자 놀이터와 같은 경로당도 디지털로 전환하고 있다. 이른바 스마트경로당이다.
여느 경로당관 달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다양한 디지털 기기 및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다. 스마트건강측정기, 화상플랫폼 스튜디오, 스마트테이블, 스마트워킹 등이 있다. 서울 시내 곳곳에 스마트경로당이 구축되어 어르신들이 이용하고 있다. 그중 서울 양천구에 조성한 스마트경로당 한 곳을 방문했다.
지난 10월 31일 양천구립신원어울림센터(이하 신원경로당)가 스마트경로당으로 리모델링한 뒤 개소했다. 신원경로당에 도착하자 입구에 얼굴인식 출입시스템이 있었다. 얼굴이 확인되면 통과한다.
신원경로당 안에 입장하자 어르신들로 가득했다. 오후 1시부터 양천구 관내 10개의 스마트경로당에서 동시에 웃음치료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다. 한 명의 강사가 10개의 경로당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동일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스마트경로당에 화상플랫폼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웃음치료 강사가 어르신들에게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다 보니 행복해지더라”라는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어르신들에게 박장대소할 것을 주문했다. 박수를 치는 손동작을 여럿 알려준다. 나도 어르신들 틈에서 잠깐 강사의 말을 경청했다.
강사가 치매 예방 차원에서 필요한 동작이라고 말하니 어르신들의 몸이 스마트TV 앞으로 기울어진다. 강사가 소리 내어 웃으면서 좌우 손가락 끝을 맞댄 채 콕콕콕 찌르는 시범을 보여줬다. 어르신들도 강사를 따라서 똑같이 해본다.
강사가 마지막에 ‘넌 늙어봤냐 난 젊어봤단다’라고 적힌 글을 보여줬다. 그리고 노래에 맞춰 춤동작을 선보이자 어르신들도 서툴지만, 강사를 보면서 곧잘 따라 한다.
시력이 낮아 스마트TV를 보고 따라하기 힘든 어르신들을 위해서 스마트경로당동행단(이하 동행단)이 나섰다. 두 명의 동행단이 어르신들 사이를 오가면서 동작을 크게 보여주니까 경로당 내 어르신들 모두가 어우러져 노래와 춤을 따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덩달아 신났다.
웃음치료 프로그램이 끝나자 곧장 어르신들 네 분이 스마트테이블로 향했다. 스마트테이블에 둘러앉은 네 분의 어르신들이 ‘풍선 터뜨리기’ 게임을 선택했다. 어르신들이 손가락 끝으로 풍선을 찌르자 풍선이 마구마구 터진다. 제한된 시간 내 많은 풍선을 터뜨려야 한다. 게임에 열중하는 어르신은 “경로당에 올 때마다 여기서 게임을 해요. 두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이니까 이게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고 집중력도 길러주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어르신들이 게임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마치 어린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것처럼 신나고 즐거워 보였다. 마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 활력이 넘쳐 보였다. 게임을 끝낸 뒤 한 어르신이 내게 “내가 이 나이에 어디에 가서 이런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겠어요. 이게 다 스마트경로당 덕분이지요”라며 활짝 웃는다.
최대요(81) 어르신이 키오스크 앞에 서 있다.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키오스크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이때 동행단이 어르신 옆에 다가가서 키오스크 사용법을 알려준다. 어르신은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주문하고 카드로 결제하는 것을 체험해 봤다.
최 어르신은 “바깥에 나가니 키오스크가 많아요. 심지어 병원에 갔는데 거기에도 키오스크가 설치되어 있었어요. 이젠 나도 키오스크 사용법을 익혀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직접 해보니 쉽지 않네요. 경로당에 올 때마다 수시로 연습해야겠어요”라고 말한다. 과거 최 어르신은 카페에서 키오스크로 주문하려다가 어르신 뒤에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을 보고 여러 번 그냥 나오곤 했단다.
황덕배(91) 어르신은 신원경로당에서 최연장자에 속한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건강해 보였다. 비결을 여쭤봤더니 서슴지 않고 입구에 놓인 스마트워킹을 가리켰다. 경로당에 올 때마다 꼬박 10분씩 스마트워킹에서 걷고 있다. 처음엔 5분을 걷다가 지금은 10분으로 시간을 늘렸단다.
“설마 이게 운동이 될까 싶었는데 꾸준히 걷다 보니 장딴지에 단단하게 알통이 생겼어요. 바깥에서 걷는 게 좋겠지만, 지금처럼 기온이 내려간 겨울철에 빙판길을 만나기라도 하면 미끄러질까 겁부터 나요. 실내에서도 걸을 수 있으니 정말 좋아요”라고 말한다. 스마트워킹은 정면에 자연 풍경을 선택하고, 자신의 아바타를 등장시켜 마치 야외에서 걷는 듯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스마트팜에서 재배하는 식물을 쳐다보는 것도 어르신들의 즐거움이다. 경로당에 올 때마다 파릇한 잎이 얼마나 자랐는지를 쳐다보면서 신기해한다. 이렇게 실내에서 재배하는 농작물을 구경한 것은 처음이란다. “세상이 정말 좋아졌어요. 경로당 안에서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게 되었으니깐요. 씩씩하게 잘 자라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한다.
회장 전경하(85) 어르신은 부쩍 건강에 관심이 많다. 과거 병을 앓아서 수술했던 적이 있단다. 전경하 어르신이 아침 일찍 경로당에 도착해서 어르신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그 날의 기온에 맞춰서 냉난방 시스템을 가동한다. 그리고 잊지 않고 스마트측정기로 가서 혈압, 체질량 등을 체크한다. 전경하 어르신은 “우리 경로당을 스마트경로당으로 구축한 뒤 이곳을 방문하는 어르신들이 더 좋아해요. 예전보다 꾸준히 방문하는 어르신들 숫자도 더 늘어났어요”라고 말한다.
동행단은 어르신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김소영 씨는 “저희는 어르신이 스마트경로당을 자유롭게 활용하시도록 돕고 있어요. 예를 들면 중앙센터에서 웃음치료, 실버체조, 노래교실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지금 스마트TV를 통해 10개 경로당에 동시에 송출하고 있거든요. 어르신들이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실 수 있도록 옆에서 알려드리고 있어요. 스마트TV에서 강사가 하는 체조를 따라할 수 있게 시범을 보여주는 것도 저희가 하는 일이죠. 또한 스마트경로당 내 설치된 디지털 기기를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설명해 드립니다”라고 말한다.
스마트경로당을 개소한 초기엔 경로당에 와서 TV만 시청하다 가는 어르신들도 여럿 있었다. 그분들에게 다가가서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보실 것을 권하고 찬찬히 설명해주는 것도 동행단의 역할이다. 조금 전에 키오스크 앞에서 머뭇거리던 최대요 어르신을 보고 키오스크 앞으로 다가온 것도 동행단이었다. 동행단 덕분에 신원경로당을 방문하는 어르신들은 스마트경로당의 매력에 푹 빠져 들었다.
스마트경로당이라고 하니 아날로그에 익숙한 어르신들에겐 낯설어서 다가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내가 방문한 신원경로당의 어르신들은 익숙하게 디지털 기기를 즐기고 있었다. 이번에 확실히 인지했다. 어르신들이라고 디지털 기기를 회피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배우고 익힐 기회가 없었다는 걸. 실제 내가 신원경로당에서 만나 본 어르신들은 이구동성 “스마트경로당으로 바뀐 뒤 경로당에 출석하는 시간이 기다려져요”라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에서 지원하는 ‘스마트경로당’은 대표적인 노인 여가·복지시설인 경로당에 화상회의 인프라 등을 설치하여 교육·여가·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어르신들의 여가·복지 외에 건강 및 돌봄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 경로당에 ICT 화상플랫폼, 헬스케어 기기 및 스마트팜 등을 구축해서 어르신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2021년 대전 유성구, 경기 부천시를 시작으로 대구 달서구, 강원 태백시, 충남 공주시, 경북 성주시, 제주 서귀포시 등이 정부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스마트경로당 조성에 나섰다. 현재까지 총 13개 지자체에 스마트경로당 889개소를 구축하였다. 과기정통부는 어르신들이 디지털 혜택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지자체와 협력하여 스마트경로당을 확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내년에는 전국적으로 더 많은 스마트경로당이 구축되어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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