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선균, 추모 속 "사회적 죽음" 들끓는 비판

아이즈 ize 김나라 기자 2023. 12. 28.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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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김나라 기자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배우 故(고) 이선균이 향년 48세로 짧은 생을 마감하며 추모 물결이 뜨겁게 일고 있다.

이선균은 27일 오전 10시 30분쯤 서울 종로구 와룡공원 인근에 주차된 자신의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오전 10시 12분께 '남편이 유서 같은 메모를 작성하고 집을 나섰다'라는 112 신고가 접수됐고, 이에 출동한 경찰이 확인했을 땐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강남 회원제 룸살롱 여실장 A(29) 씨와 얽힌 마약 스캔들이 세상에 알려진 지 69일 만에 벌어진 비극이다. 이선균은 A 씨 자택에서 대마초·케타민 등 여러 종류의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그간 세 차례에 걸쳐 경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그는 간이 시약 검사를 비롯해 정밀감정 검사에서 모두 음성 판정이 나왔고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했던 바. 

그럼에도 경찰은 A 씨의 진술에만 의존한 채 이선균에 대한 고강도 수사를 강행, 비난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이선균 측의 비공개 요청을 거절하고 계속된 공개 소환에, 숨지기 나흘 전인 23일 진행된 3차 소환 조사는 19시간 동안 이어지며 '무리한 수사'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더불어, 사망 전날 유튜브 채널 '가로세널연구소' 측은 이선균이 A 씨와 나눈 통화 녹취록을 공개, 사생활에 대한 과도한 보도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에 이선균의 사생활 스캔들과 별개로 '사회적 죽음'이라는 책임론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야도 "마약 사건과 직접 관련 없는 사적인 대화가 보도되었는데 이게 뉴스 가치가 있는 것인가"라며 한목소리로 질타, 정치권에서도 애도를 표했다.

MBC 이선영 아나운서는 이선균과 A 씨 간 녹취록을 단독 보도한 KBS를 공개 저격했다. 그는 27일 본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나는 KBS의 그 단독 보도를 짚고 싶다. 유흥업소 실장이라는 모 씨와의 통화에서 오고 간 은밀한 대화. 고인의 행동을 개별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 보도가 어떤 사람의 인생을 난도하는 것 외에 어떤 보도 가치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리포트라는 이름으로 쓰인 그 칼은 고 이선균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선량한 피해자인 그의 아내와 아이들도 찔러 생채기를 냈을 것이며 디지털 시대에 영구적으로 박제되어 영영 낫기 힘들게 할 것이다"라고 쓴소리를 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김이나 작사가 또한 "어디서 흘러나온 지도 모르는 녹취록을, 누가 그런 나를 볼세라 이어폰을 꽂고 몰래 들으며 어머 어머 하고, 관련 영상으로 뜨는 비슷한 가십성 콘텐츠도 클릭해 보고, 자극적인 기사 타이틀을 보면 슥 훑어보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그 기사 봤어?'라고 얘깃거리 삼고. '실패한 수사로 보이지 않으려 너무 자극적 사생활 이슈를 흘리는 거 같다'라는 남편의 얘기를 듣고서야 짐짓 '그래 맞아 너무한 거 같네'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 후로도 똑같이 뭐가 나오면 들여다보고, 마지막에 '너무 사람 망신주기하네, 심하다'라는 말로 스스로 면죄를 하던 내 모습이 선명해서 차마 감히 추모도 못 하겠는 마음. 차라리 악플러이거나 아예 그런 기사에 관심을 끄는 사람이 아닌, 그 가운데 어디쯤에 있는 어쩜 제일 비겁한 부류에 있는 게 나네"라고 씁쓸해했다.

황석희 번역가는 "한국에서 가장 큰 죄는 괘씸죄이다. 세상 누군가의 가식, 위선, 기만 등 냄새를 포착하는 순간 그 대상은 죽는 게 나을 정도의 조롱과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수사기관은 '관계자 말에 따르면'이란 같잖은 면죄부 뒤에 숨어 개인의 존엄을 팔아대고 언론은 그 소스를 가공해 개인의 수치를 생중계하며 비극적인 결말을 강요하듯 절벽 끝으로 몰아세운다. 결국 절벽 밑으로 떠밀리면 입 모아 손가락질하던 세상은 그제야 손가락질을 거두고 합장하며 추모한다. 대중이 영웅의 비상보다 사랑하는 단 한 가지는 영웅의 추락이다. 잘못만큼의 죗값만을 치르는 것이 상식이자 사회적 합의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상주의자의 망상일까"라고 꼬집었다.

27일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엔 동료들의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박명훈, '화차' 변영주 감독, '킹메이커' 변성현 감독·설경구·김종수, '킬링 로맨스' 이원석 감독, '끝가지 간다' 조진웅, 'PMC: 더 벙커' 하정우, 드라마 '파스타' '골든 타임' 등의 이성민, 고인의 유작이 된 '행복의 나라'의 조정석, 유재명 등 생전 함께 작품을 찍었던 이들이 조문했다. 여기에 이창동 감독, '범죄도시' 제작사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장원석 대표, 정우성, 이정재, 전도연, 김남길, 류준열, 임시완, 송영규, 유연석, 고경표, 김상호, 김성철, 문성근, 문근영, 김도현, 배성우, 배유람, 민진웅 신동엽, 장성규 등도 빈소를 방문해 애도했다. 뿐만 아니라, 이선균이 마약 의혹이 불거지며 하차한 새 드라마 '노 웨이 아웃'의 출연진인 대만 배우 허광한도 빈소를 찾았다.

이선균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을 비롯해 올해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PROJECT SILENCE)'(감독 김태곤), '잠'(감독 유재선)으로 칸 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은 만큼 외신도 고인의 죽음을 조명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통신사 AP뉴스, 미국의 CNN, BBC, 영국 BBC, 인도의 NDTV, 일본의 더 재팬 타임즈 등 주요 외신이 이선균의 사망 비보를 긴급하게 타전했다.

/사진=tvN '나의 아저씨' 스틸

또한 이선균은 생전 '기생충'과 더불어 드라마 '파스타' '골든 타임' '나의 아저씨' 등 굵직한 인생작들을 다수 남긴 바, 고인의 뜨거웠던 연기 열정도 재조명되고 있다.

이선균은 앞서 10월 7일(현지시각)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제17회 아시안팝업시네마 영화제(APUC)에 '킬링 로맨스'가 폐막작으로 선정되며 이원석 감독과 참석했었다. 이와 함께 그는 '최우수 성취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당시 현지에서 수상 기념으로 뉴스 매거진 시카고와 진행한 인터뷰가 안타깝게도 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되었다. 이는 10월 11일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개됐고, 얼마 지나지 않은 10월 19일 마약 투약 혐의가 보도되며 모든 활동이 올 스톱된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해당 인터뷰에서 이선균은 "욕심이 있다면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는 것이었다. 근데 이 트로피가 제 배우 일지에 대한 상 같아서 더 뜻깊고 의미 있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열심히 한 것에 대한 상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떠한가"라는 질문엔 "정말 용됐다"라며 감격에 젖은 이선균. 그는 "너무 잘 됐다.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데뷔 당시를 생각하면 이거는 뭐,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을 경험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가서 ('기생충'으로) 작품상을 받고, 그 많은 할리우드 셀럽들한테 박수를 받고. 정말 꿈꾸는 거 같았다. 꿈에서 좋은 패키지여행을 ('기생충' 팀과) 같이 다닌 그런 느낌이었다. 앞으로도 또 다른 일기를 써나가야죠. 어떤 걸 하고 싶다, 굳이 욕심 내는 게 아니고 한 작품 한 작품 헛되이 하지 않고 감사히 여기며 만들어가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선균은 "배우들의 장점이나 단점이 텍스트 속 인물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며 날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거다. 간접 경험을 고민하며 '나라면 어떻게 할까?' 가정하고. 이런 과정이 소중하고 재밌다"라면서 "이전엔 연기란 저한테 계속 주어진 숙제라고 생각했다. 제가 계획적인 인간이 아니라 예습, 복습은 안 하지만 숙제만큼은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숙제만 잘해도 풍성해지고 커지지 않나. 연기가 절 그렇게 만들어준 거 같다. 제게 동력을 준 게 연기였는데 지금 시점으로 말하자면 연기는 '일기' 같다. 앞으로도 또 다른 일기를 잘 써나가고 싶다"라고 배우로서 열의를 드러냈다. 

더불어 이선균은 8월 진행된 아이즈(IZE)와의 인터뷰에서도 "연기에 대한 갈증도 있고 모자란 부분도 있고 채우고 싶은 게 많다"라고 22년째 변함없는 열정을 과시했었다. 그는 "내가 하는 표현이 고여 있으면 안 될 텐데, 정체되지 않고 흘러가야 하는 것, 이런 게 배우로서 제일 큰 고민이다. 어떤 큰 변화를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관객들과 같이 호흡하고 맞아떨어졌으면,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앞으로도 어떤 걸 하고 싶다는 욕심보다 지금처럼 주어진 숙제를 하나씩 해내며 잘 가고 싶다"라"라는 소망을 전했으나, 끝내 세상을 등지며 이루지 못하게 됐다. 

.이선균의 발인은 29일 오후 12시, 장지는 수원 연화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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