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시세] "똑닥이 뭐여?"… 손녀 아픈데 무한대기하는 할머니

윤지영 기자 2023. 12. 2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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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편집자주]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각이 남다른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머니S는 Z세대 기자들이 직접 발로 뛰며 그들의 시각으로 취재한 기사로 꾸미는 코너 'Z세대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Z시세)을 마련했습니다.

최근 인플루엔자(독감)와 겨울철 식중독 노로바이러스 환자의 증가로 '소아과 진료 대란'이 심화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9일 서울의 한 소아과가 진료 대기를 앞둔 환자들로 붐비는 모습. /사진=뉴스1
"1시52분에 도착한 애는 '똑닥' 미이용이라 아직 대기 중인데 3시5분 도착한 애는 똑닥 써서 먼저 들어가고. 아픈 애들 데리고 뭐 하는 짓이냐."

지난 3일 한 엑스(X·옛 트위터) 이용자가 소아과에 방문한 뒤 남긴 게시글이다. 이 게시글은 1만8000여회의 재게시를 기록하며 누리꾼들 사이 논란이 됐다.

애플리케이션(앱) '똑닥'은 원격으로 병원 대기 접수·예약이 가능한 서비스다. 똑닥 이용자들은 앱으로 병원별 실시간 대기 현황을 확인할 수 있으며 원격으로 진료를 접수한 뒤 시간에 맞춰 병원에 방문하면 된다.

사진은 한 누리꾼이 소아과에 방문한 후 올린 게시글. 똑닥 이용자에 밀려 현장 접수자의 대기 시간이 늘어나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진=엑스(X·옛 트위터) 캡쳐
똑닥은 지난 2017년 무료 서비스로 시작했으나 지난 9월5일부터 월 1000원 혹은 연간 1만원을 지불하고 멤버십을 구독해야만 접수·예약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에 공공 의료 서비스의 유료화를 놓고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노인 등 디지털 소외 계층은 똑닥을 이용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컸다.

한 누리꾼은 "지금은 똑닥이 1000원이라지만 사용자가 늘어나면 어느 순간부터 구독료가 오르겠지. 그러면 정작 아파서 진료받아야 하는 사람은 병원에 못 가고 외국처럼 최소 2~3주는 기다려야 예약을 잡을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누리꾼은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나이 많은 어르신이나 앱 접근성이 낮은 사람은 의료 사각지대에 빠지게 된다"고 우려했고 또 다른 누리꾼은 "시간을 돈으로 사는 것이 적어도 건강과 직결된 곳에 쓰이면 안 되지 않나"라고 비판했다.

똑닥을 통해 원격으로 진료를 접수·예약하려면 멤버십을 구독해야 한다. 현재 멤버십 가격은 1개월에 1000원, 12개월에 1만원이다. 사진은 똑닥 메인 화면(왼쪽)과 똑닥 멤버십 구독 신청 화면(오른쪽). /사진=똑닥 캡쳐
반면 똑닥이 유용하다며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누리꾼들은 "예약자가 우선인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진짜 문제는 소아과가 부족한 거지 똑닥 문제가 아니다" "우리 동네 소아과는 새벽 6시부터 줄을 선다. 그래서 다들 제발 똑딱을 이용하면 좋겠다고 한다" 등 똑닥이 생겨서 편리하다고 주장했다.

똑닥이 야기한 문제는 최근 의료 인력 부족으로 '오픈런'을 해야 하는 소아과에서 더 심각하다. 맞벌이가 일상적인 만큼 조부모가 육아를 담당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대기 인원도 많은데 똑닥을 통해 접수하는 환자가 많아지면서 현장 접수를 통해 진료받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실제로 일부 병원이 똑닥으로만 접수받고 현장 접수를 받지 않아 '진료 거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병원 오픈 전 '똑닥' 접수했는데도… '70명 대기 중'


오전 8시48분 똑닥을 통해 서울 강북구 한 소아과에 71번째로 진료를 접수했다. 3시간이 지난 오전 11시58분 차례가 됐다는 알림을 받을 수 있었다. 사진은 똑닥 진료 접수 화면(왼쪽)과 대기 인원을 안내하는 알림(오른쪽). /사진=윤지영 기자
'소아과 오픈런'은 어느 정도일까. 체감해 보기 위해 기자가 지난 20일 직접 똑닥 서비스로 원격 접수를 해 봤다. 오전 9시부터 진료를 시작하는 서울 강북구 한 소아과에 오전 8시48분 진료를 접수했다. 병원 문을 열기도 전이지만 이미 70명이 앞 순번으로 대기 중이었다. 전날 밤부터 아이가 아파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고 가정해 보니 매우 아찔했다.

이 병원의 점심시간은 낮 12시30분부터 오후 2시까지다. 똑닥을 통해 '오픈런'을 해도 점심시간 전에 진료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인 상황이다. 기자의 경우 접수한 지 3시간이 흐른 낮 12시쯤이 돼서야 진료 차례가 다가오고 있다는 알림이 왔다.

사진은 똑닥 앱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서울 성동구 한 소아과의 접수 관련 공지사항. /사진=똑닥 캡쳐
똑닥을 통해 주변 소아과들을 검색해 봤다. 서울 성동구에 있는 한 소아과에서는 현장 접수 인원을 매일 오전·오후 각 25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공지마저 똑닥 앱에 올려놓아 이를 모른 채 현장에서 접수하려 한다면 헛걸음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해당 병원 공지에는 '가능하면 똑닥 접수 부탁드립니다' '현장 접수는 모바일 똑닥 사용이 어려운 분들만 부탁드립니다' 등 똑닥 접수를 우선시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오후 접수가 시작되고 30분 정도 지난 오후 2시30분쯤 이 소아과에 전화를 걸어 혹시 지금 방문하면 현장 접수가 가능할지 묻자 "오시는 데 얼마나 걸리냐. 오래 걸리면 마감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접수 마감 시간을 문의하자 보통 오후 3시 전후에 마감된다고 설명했다.



똑닥 접수 없이 방문해 보니… 오후 4시에도 대기 30명


사진은 서울 동대문구 한 소아과의 오후 4시 대기 현황. 기자 앞으로 30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윤지영 기자
똑닥을 통해 접수해도 차례가 돌아오기까지 2~3시간은 걸리는 상황. '소아과 진료대란'이 피부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똑닥 접수 없이 방문하면 꼼짝없이 병원에서 그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오후 4시쯤 똑닥 접수 없이 서울 동대문구 한 소아과를 방문해 봤다. 병원에 들어서니 보이는 커다란 모니터에 진료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이름이 끝도 없이 적혀 있었다. 접수대로 가 지금 현장 접수를 하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묻자 "앞에 30명이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저희도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모니터 내 대기 인원은 30명이었지만 소아과 내부에는 5팀 정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은 서울 동대문구 한 소아과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보호자의 모습. /사진=윤지영 기자
모니터 내 대기 인원은 30명이었지만 넓지 않은 소아과 내부에는 5팀 정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 똑닥으로 접수하고 차례에 맞춰 방문하는 듯했다.

5세 아이가 독한 감기에 걸려 소아과를 방문했다는 김모씨(여·30대)는 "똑닥으로 예약하고 앞에 7명이 남았다는 알림이 왔을 때 집에서 나왔다"며 "무작정 병원에서 기다리기도 힘들고 괜히 다른 증상까지 옮을 수 있으니 똑닥으로 예약하고 방문한다"고 밝혔다.

부모님(아이의 조부모)께 아이의 소아과 진료를 맡긴 적이 있는지 묻자 김씨는 "부모님이 똑닥 사용을 어려워하셔서 웬만하면 (제가) 직접 병원에 데리고 오는 편"이라며 "불가피할 때는 부모님 대신 제가 똑닥으로 접수한 후 차례가 오면 연락을 드린다"고 답했다. 그는 "노인이 아니더라도 스마트폰 기본 기능 외에는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세대는 똑닥 사용을 어려워한다"며 "아침 일찍 아픈 손녀를 데리고 와 병원 로비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할머니를 뵌 적이 있는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밝혔다.

똑닥은 이미 의료계에 아주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사진은 동대문구 한 소아과 벽에 '똑닥 접수 에티켓' 전단이 부착된 모습. /사진=윤지영 기자
병원 로비 벽에는 '똑닥 접수 에티켓'이라는 제목의 전단이 붙어 있었다. 똑닥은 이미 의료계에 아주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표면적으로는 병원과 환자 모두 편리해지는 좋은 서비스이지만 그 이면에는 어쩔 수 없이 소외된 이들이 있어 마음이 씁쓸했다.


복지부 "진료 거부 안돼"… 아동병원협회 "소아의료체계 복구 먼저"


지난 20일 보건복지부가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10일까지 복지부에 '병원 진료 거부' 민원 신고가 30건 접수됐다. 서울 강남·서대문·은평·중구, 경기도 수원시 등지의 병원들이 똑닥으로만 진료 접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이를 진료 거부에 해당한다고 보고 지난 8일 각 지자체에 "일부 의료기관에서 특정 앱 또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만 진료 접수나 예약을 받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외의 진료 접수를 받지 않고 진료 요청을 거부한다면 이는 의료법 제15조 제1항에서 금지하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진료 거부에 해당하니 환자의 진료 접근성이 특정 접수 방법으로 제한되지 않도록 지도 감독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이에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진료 현장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과도한 조치'라고 반발했다. 1명의 의사가 진료 시간 내 진료할 수 있는 환자 수는 제한적인데 진료 예약 앱과 현장 진료 접수 환자까지 모두 진료하라는 것은 강요이고 갑질이라는 것.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장은 "아동병원을 비롯한 소아청소년과 의료기관은 소아의료체계의 붕괴로 힘든 진료를 하고 있다"며 "모바일 앱 진료 예약 개선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행정 명령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똑닥은 서비스 유료화 관련 우려가 제기되자 저소득 취약계층·65세 이상 이용자 무상 지원 대책을 내놨다. 사진은 똑닥 공지사항 게시판에 올라온 저소득층·65세 이용자 지원 공지. /사진=똑닥 캡쳐
똑닥은 서비스 유료화와 관련 우려가 제기되자 저소득 취약계층·65세 이상 이용자에 대한 무상 지원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용료 1000원이 문제가 아니다"며 "모두에게 평등하게 제공돼야 하는 의료 서비스가 이용료를 지불하면 더 편리해지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65세 이상 이용자의 경우 이용료 문제보다는 똑닥 이용 자체의 어려움이 더 크기 때문에 이용료 지원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

똑닥은 당초 환자가 '병원을 쉽고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마련한 서비스다. 이용자들은 똑닥을 통해 긴 대기 시간을 보다 편하게, 원하는 장소에서 보낼 수 있게 됐다. 병원도 보다 효율적으로 환자를 관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더 편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없는지 분명히 살펴봐야 한다. 디지털 소외가 공공 의료 서비스에도 그늘이 드리우지 않도록 정부와 여러 분야에서 고민해야 한다.

윤지영 기자 y2ung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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