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문', 잭 스나이더와 손잡은 갓 쓴 배두나

아이즈 ize 이설(칼럼니스트) 2023. 12. 2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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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이설(칼럼니스트)

베두나, 사진=넷플릭스

영화를 선택하는 데 있어 포스터의 힘은 여전히 대단하다. 때론 포스터 한 장에 담긴 인물 사진, 카피 하나가 영화 선택의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2007년 개봉 전 공개된 이안 감독의 '색, 계' 포스터가 그런 경우다. 한눈에 봐도 너무나 강렬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 뒤에서 끌어안은 채로 서로 얼굴을 마주한 량차오웨이(梁朝偉)와 탕웨이(湯唯). 클로즈업된 두 사람의 표정에서 불안하게 끓어오르는 욕망을 느낄 수 있다. 줄거리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영화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톤 앤드 매너(Tone & Manner)'는 잘 드러난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레벨 문(Rebel Moon)-파트1: 불의 아이' 포스터에서 '색, 계' 이후 오랜만에 '끌림'을 느꼈다. 캐릭터별 포스터 중 검객 네메시스 역의 배두나 버전에서다. 글로벌 판타지 SF물에 낯익은 한국 배우가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호기심이 가는데 심지어 조선 시대의 갓을 쓰고 있다. 단번에 눈을 사로잡는다. 

이에 대해 잭 스나이더 감독은 홍보 영상을 통해 설명했다. 그는 '갓'의 시작에 대해 "'킹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킹덤'을 본 이후 역사 공부를 하고 추가 디자인을 했다. 한국인으로서 배두나가 가지고 있는 뿌리를 표현할 수 있도록 존중하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사진=넷플릭스

'레벨 문'은 우주의 지배 세력인 '마더 월드'의 약탈과 횡포가 심해지자, 변방 행성에서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던 코라(소피아 부텔라)가 저항 세력을 끌어모아 은하계의 운명을 걸고 대결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배두나는 코발트 채굴 행성 다구스에 은신하고 있던 검(劍)의 고수 네메시스로 나온다. 배두나는 "갓은 과거 신분 높은 남자들과 문인들이 쓰던 것 아닌가. 그런 갓을 여자 무사가 쓰니까 신이 났다"고 밝혔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스나이더 감독은 한국적인 갓을 통해 영화에서 두 가지 정도의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한국 배우와 문화에 대한 존중에 따른 호감도의 상승, 다른 하나는 우주와 갓이라는 상호 이질적 소재가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부조화의 조화'다.

일단 호감도는 급상승한 것 같다. 네메시스가 처음 등장하는 신은 영화가 거의 절반이 지나갔을 무렵이긴 해도, 첫인상만큼은 뚜렷하다.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불쑥 화면에 들어오는 갓의 매력이 대단하다. 한국 관객이라면 반가움에 다시 보게 될 터이고, 외국 관객들은 낯선 패션에 돌아보게 될 것이다.

사진=넷플릭스

갓 쓴 네메시스는 자신을 만나러 온 코라 일행을 뒤로 한 채 우선 거미 괴물에게 납치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 거미 괴물과 일촉즉발의 대결을 벌이기 전, 먼저 갓을 벗어서 사뿐히 내려놓는다. 아무래도 갓은 스타일은 좋은데 액션에는 방해가 됐으리라. 그러자 머리 두건에 일본 닌자처럼 입은 검은색 복장이 눈에 들어온다. 쌍칼을 들고 빼어난 검술로 거미 괴물을 제압하는 제스처가 언뜻 일본의 사무라이 같은 느낌도 풍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일부 팬은 배두나의 갓 패션을 '무늬만 한국적'인 것으로 꼬집지만 꼭 그렇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갓의 이미지 전달에 신경 쓴 모습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액션뿐 아니라 네메시스의 캐릭터 또한 한국적이다. 네메시스는 비록 거미 괴물을 죽였지만 매우 괴로워한다. 무사의 칼을 고작 이런 일에 쓰는 데 대해 고수로서 자괴감을 드러낸다. 이는 명예와 의리를 중요시하는 한국의 선비 정신과 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넷플릭스

시·공간과 성별을 초월하는 데에도 갓의 효과가 두드러진다. '레벨 문'의 시간적 배경은 먼 미래, 공간적 배경은 우주의 머나먼 도시다. 적어도 15∼17세기 조선의 갓이 있을 곳은 아니다. 더구나 갓은 배두나의 말처럼 조선 시대 글을 읽는 양반의 상징이었다. 스나이더 감독은 이를 정반대의 지점에 버무렸다. 바로 여성이면서 무사. 알고 그랬는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반전이 '부조화의 조화'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갓 쓴 배두나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레벨 문'의 재미와 작품성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파트2를 미리 염두에 둔 파트1이라서 그런지 본격적인 드라마가 시작되기도 전에 끝나버리는 느낌이다. 코라가 네메시스를 포함해 6명의 '은둔 고수'를 찾아 팀을 이루는 데에만 러닝타임의 절반 이상을 소비한다. 그러니 최고의 빌런인 노블 제독(에드 스크레인)과의 막판 대결이 상대적으로 짧고 싱거워 보인다. 

하지만 코라, 네메시스, 밀리어스(E. 더피) 등 여성 캐릭터들이 전면에 서고, 특히 코라가 중심이 되어 극을 끌어간다는 점에서 스나이더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는 차이가 느껴진다. '300'(2007) '왓치맨'(2009) 등에서 남성적인 캐릭터를 유난히 부각했던 스나이더 감독은 여성들이 주인공이 되는 전복적 서사를 통해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를 구현하고 싶은 것 같다. '레벨 문' 파트2는 내년 4월에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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