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세형 “오디션 탈락에 화장실 청소하며 버텨… 바람잡이로 먼저 떴다” [실패연대기]

김지은 2023. 12. 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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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의 ‘삶도’ 시즌2 : 실패연대기] <24>코미디언 양세형①
고2때 ‘코미디 극단’ 찾아가 오디션
다들 꺼리는 ‘바람잡이’로 주목받아
일기는 금고에 보관... 그 이유는
코미디언이자 방송인 양세형씨를 2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그는 그간 써온 시를 엮어 시집 ‘별의 길’(이야기장수)을 최근 출간했다. 최주연 기자

그의 아버지는 서울대 나온 도배사였다. 그 시절 빚보증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가족의 살림을 말아먹은 걸까. 잘나가는 사업가였던 아버지는 남의 빚에 보증을 섰다가 재산을 다 날렸다. 먼저 도배 일을 시작한 건 어머니였다. 나중엔 마지못해 아버지도 나섰다. 저녁이 되면 ‘노동주’에 취해 들어와 겨우 쓰러져 눈을 붙였다가 새벽이면 다시 일터로 나가는 부모가 그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의 시작은 부모와는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고등학교 2학년,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하면 좋았던 일, 칭찬받았던 일, 재미있었던 일, 잘했던 일…. 기억이 있는 다섯 살부터, 열일곱 살까지 인생을 훑었다. 보름간 학교에서 그것만 했다. 그 모든 교집합은 딱 한 가지였다. 남을 웃기는 일. 그는 마음먹었다. ‘개그맨이 되자.’

박승대씨가 대표인 극단 ‘스마일 매니아’로 찾아가 오디션을 봤다. “학교는 졸업하고 와라.” 그의 연기를 중간에 끊고 대표는 말했다. 어쨌든 탈락이었다. 포기는 그의 사전에 없었다. 매일 극단으로 ‘출근도장’을 찍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청소부터 했다. 재래식 화장실을 만져도 될 만큼 깨끗하게 닦고 닦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오는’ 드라마를 상상했는데, 가만히 있어선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남들이 하길 꺼리는 공연 전 ‘바람잡이’로 무대를 휘어잡았다. 그렇게 눈에 띄기 시작했고 자기 코너로 무대에 섰다.

그 이후엔 승승장구, 지금 우리가 다 아는 양세형(38)이 됐다,는 스토리라면 드라마가 아니다. 일이 없어 라면 하나를 부숴 몇 끼를 해결하던 시절도 있었다. 어차피 돈이 없어 집 밖엔 나가지도 못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이토록 불행하다면 계속 잠을 자자고. 오피스텔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려다 팔이 긁혀 상처를 입지 않았더라면 어찌 됐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때부터다. 인생이 달라졌다. “무서운 게 없어졌”으니까. 죽으려고 했던 곳에 찾아가면 그는 “마치 과거의 나에게 제사를 지내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되뇐다, ‘잊지 말자’고. 그때의 마음, 그때 당했던 일들을.

그가 낸 시집 ‘별의 길’(이야기장수)에 왜 철학이 담겼나 했더니, 그런 그의 삶이 녹아 있어서였다. 그의 시엔 인생의 양면성(밝은 태양은/나를 검게 만든다//어둠 속 작은 빛이/그림자를 더 크게 만든다ㆍ시 ‘그림자’ 중), 사랑의 설렘(너 생각하면서/자려고 했는데//너 생각하다가/못 잤어ㆍ시 ‘불면증’ 중),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낙관(울어라, 지옥은 죽어서만 가는 게 아니다//웃어라, 천국도 죽어서만 가는 게 아니다, 시 ‘선택’ 중), 생전의 아버지를 너무 몰랐던 자식의 애통함(당신은 저에게 무엇이었을까요?ㆍ시 ‘아빠2’ 중)이 고스란하다.

어둠을 지워내고 찾은 ‘별의 길’로, 그가 인도한다.


[실패①] ‘바람잡이’부터 시작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무작정 코미디 극단을 찾아가 오디션을 봤고 탈락했다. 떨어졌지만 시키지도 않은 화장실 청소에 갖은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후일을 도모했다. 스스로 빛을 만들어 걸어온 길이었다. 최주연 기자

-오디션에서 떨어졌는데도 청소를 한 이유는 뭔가요.

“극단에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면 ‘와, 얘 진짜 끈기가 대단하네. 이리 와. 함께 해보자’ 이런 드라마 속 얘기 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죠. 하하. 게다가 그때 저한테는 개그맨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

-한동안 바람잡이도 했다고 들었어요.

“아무리 청소를 해도 아이디어 회의에 껴주거나 연기를 시켜주진 않을 것 같더라고요. 궁리를 하다가 개그맨들이 바람 잡는 걸 부담스러워한다는 걸 알았어요. 공연 전에 바람잡이가 먼저 무대에 서거든요. 어떤 형들은 그날 공연에서 객석 분위기가 안 좋으면 ‘야, 오늘 바람 누가 잡았어’라면서 바람잡이 탓을 하곤 했고요. 그러니까 다들 하길 꺼려요. 그 바람잡이를 내가 해보면 어떨까 생각한 거죠.”

-어떻게 했어요.

“평일은 무료 공연, 주말은 유료 공연이었거든요. 바람잡이도 전체 랭킹 3등 안에 드는 사람들이 주말에 서요. 저는 바람잡이로 유명한 세 사람의 대사와 스타일을 기록해서 다 외웠어요. 실제 바람 잡을 때 이 사람 것도 해보고, 저 사람 것도 해보고 그랬죠. 그랬더니 실제 관객이 웃더라고요. 나중에는 입에도, 몸에도 익어서 응용도 했죠. 그러다 보니 제 스타일이 생기더라고요. 평일에 시작했다가 주말로 옮겨서 나중에는 저도 대학로에서 3위 안에 드는 바람잡이가 됐어요.”

-코미디언으로서 자질을 인정받는 말을 들었을 법도 한데요.

“다들 지망생이니까 경쟁이 치열해요. 남에게 그다지 신경을 쓰지도 않죠. 저도 처음엔 고생스러운 일을 도맡아 하면 형들이 아이디어 회의에도 껴주고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바람잡이를 한 거죠.”

-3위 안에 드는 바람잡이가 되니 반응이 어땠나요.

“평일에서 주말 공연 바람잡이로 옮겨 가니까 ‘아니, 고등학생이 바람을 잡아?’ ‘능력 있네, 대체 누구야’라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다른 극장에서도 저를 아는 사람들이 생기고요. 그래도 개그맨은 자기가 짠 코미디로 무대에 서야 하거든요. 아무리 제가 바람을 잘 잡아도 처음엔 껴주지 않았죠. 그래서 내가 내 코너를 짜서 무대에 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코너 짜는 법도 몰랐을 텐데 어떻게 했어요.

“바람 잡을 때처럼 모든 코너를 다 외웠어요. 통째로요. 그거 말고는 방법을 모르겠더라고요. 외우고 나니깐 틀이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아이디어를 짜기 시작했어요.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연기를 기본 틀로 해서요. 저처럼 극단에서 제대로 코너를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모았어요. ‘형, 이거 제가 한번 짜봤는데 함께 하실래요’라면서.”


[실패②] 웃음소리 대신 환풍기 소리만 들렸다

‘뻔뻔 개그쇼’ 시절의 양세형. 연속 5회 우승을 하면서 공중파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열아홉 살 때다. 양세형 제공

-직접 짠 첫 코너는 뭐였나요.

“형제 둘이 무대에 있다가 이런 대화를 나눠요. ‘라면을 먹자’ ‘그래, 라면은 준비됐고 냄비도 있다’ ‘어, 그런데 물이 없네’ 하면서 ‘빠빠빠빰~’(‘운명’ 교향곡) 해요. 그런 말도 안 되는 걸 했죠. 하하하. 그럼 환풍기 돌아가는 소릴 듣는 거예요.”

-아, 웃음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네, 객석은 조용하고 무대에 있는 환풍기 소리가 들리는 거죠. 그 코너에서 진짜 아무도 안 웃었거든요. 그렇다고 중간에 그만둘 수 없잖아요. 식은땀이 줄줄 흐르면서 5분이 한 5년처럼 느껴지더라고요.”

-환풍기 소리만 듣고 내려왔을 때의 심정이 기억나나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인가.’ 그래도 그만둘 수 없었어요. 처음에 제가 친구랑 함께 오디션을 봤거든요. 그 친구는 ‘왜 이렇게 계속 청소만 하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도중에 그만뒀어요. 사실 초반에 그 친구가 원동력이기도 했어요.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남아서 그 친구가 중간에 그만둔 걸 후회하게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환풍기 소리 들었다고 관두면 친구가 진작 그만둔 게 더 현명한 선택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더 도전했죠.”

-그러면서 실력도 늘어갔겠죠.

“그런 시행착오를 겪다가 평일 공연 중 제일 인기 시간대에 코너를 하게 됐어요. 그러다 주말 공연으로 옮겨갔고 나중엔 인기 코너에만 주는 마지막 무대에 서게 되더라고요.”

-주말 무대는 어땠나요.

“돈을 내고 공연을 보러 온 분들이라서 그런지 웃음에도 갑옷이 하나 더 있는 느낌이었어요. 이미 자리를 잡은 코너들이 있기도 했고요. 주말 공연에서 또 환풍기 소리를 들었죠. 그걸 안 들으려고 코너에서 (웃음이) 안 터졌던 부분을 보완하고 발전시키기를 반복했죠. 방학 때는 월요일만 쉬는 날이고 화, 수, 목, 금, 토, 일 다 공연하고 회의를 하며 보냈어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청소를 마치면 공연 준비하고, 회의하고, 전단지 돌리고, 공연하고, 마치면 오후 9시. 그때부터 새벽 5, 6시까지는 무조건 회의를 했고요. 그런 일상이었어요.”

-그때도 여전히 고등학생이었고요.

“그랬죠. 담임 선생님이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개그를 하는 게 맞다’면서 많이 배려해 주셨어요. 수업 도중에 극단에 갈 수 있도록 학교장 허락도 받아 주셨죠.”

-왜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나요.

“어릴 때부터 친구들이 ‘너는 나중에 훌륭한 개그맨이 될 거야’라고 해도 신경도 안 썼거든요. ‘내가 어떻게 개그맨이 돼’ 싶었던 거죠. 그런데 고2 때 ‘스무 살이 되면 내가 돈을 벌어야 할 텐데 뭘 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교실에 앉아서 노트에 그간 살면서 내가 잘했던 일, 하면 좋았던 일, 칭찬받았던 일을 다 적었어요. 그러고 나서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우선순위에서 떨어지는 일들을 지웠죠. 그랬더니 마지막으로 남은 게 개그맨이었어요.”

-보름간 적었으니 양도 꽤 됐을 것 같은데, 개그맨 하나가 남은 건가요.

“초반에는 막 적어 나가요. 그런데 쓰다 보면 한 시간 생각해야 한 개 정도 떠오르죠. 그러니 양은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생각만 오래 한 거지.”

-그 결심이 대단했네요. 오디션에 떨어졌는데도 포기를 안 했으니.

“그 노트에서 스타트할 때, 개그맨을 제외한 나머지는 진짜 (인생에서) 다 지웠거든요. ‘이 하나만 내 평생(의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2안이 없었어요. 이것만 해야 했어요.”


[실패③] 겨우 공중파 진출했지만 ‘산 넘어 산’

그가 자기 전에 반드시 하는 일이 있다. 책을 보는 거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한 수면을 위해서”다. 침대에선 스마트폰을 만지지 않는 것도 그의 일상 수칙 중 하나다. 최주연 기자

-주말 공연에서 인기 시간대를 차지했으니 그 뒤로 환풍기 소리는 듣지 않았겠죠.

“하하. 아니에요. 분명히 산을 잘 넘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더 높은 산이 있더라고요. 어차피 돌아가진 못하잖아요. ‘그렇다면 다시 여기서 일등을 해보자’고 마음먹고 다시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그것의 연속이었어요. 공중파에 처음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는 엠넷(Mnet)이 2004년 신설한 개그맨 오디션 프로그램 ‘뻔뻔개그쇼’에서 5회 연속 우승을 해 드디어 공중파 채널로 자리를 옮겼다. SBS ‘웃찾사’의 ‘화상고’는 지금의 양세형을 있게 한 코너다. 처음부터 빛을 본 건 아니었다.

-공중파에 진출해서도 실패가 잇달았던 거네요.

“그렇죠. ‘웃찾사’에 가서도 첫 코너는 ‘목숨 걸고 과외하기’였어요. 한 번인가 방송에 나가고 잘렸죠.”

-실패할 때마다 어떻게 했나요.

“코미디언으로서가 아니라 그 코너가 실패한 거라고 생각했죠. 얼마 전 ‘북 콘서트’를 했을 때 독자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했어요. ‘확신이 없어질 때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제가 그랬죠. ‘제 말이 정답은 아니지만, 흔들리면 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요. 그 코너가 실패했다면 그걸 날리고 새 코너를 짜면 돼요.”


[실패④] 마음의 실패는 일기에 ‘박제’

그의 시집엔 삶의 단상, 그가 느껴온 감정의 고갱이가 담겨 있다. 그의 다양한 표정을 콜라주로 이어 붙였다. 최주연 기자

-일기는 언제부터 썼나요.

“(지금은 없어진) TV 예능 ‘집사부일체’에서 (2018년) 김수미 선생님을 뵌 적이 있어요. 선생님이 그때 ‘일기에 내 마음을 옮겨 담은 뒤 그걸 보면서 마주하고 인정하면 참 좋다’는 얘기를 하시면서 공책을 한 권씩 선물로 주셨죠. 거기에 쓰기 시작했어요.”

-일기를 매일 쓴 건가요.

“그때 바로 쓰지는 않았어요. ‘뭔가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써야지’ 마음만 먹었죠. 정말 정말 아주 힘들 때 일기를 써요. 진짜 고통스럽거나 눈물이 날 정도로 화가 날 때, 너무 열 받을 때, 어떤 사람 때문에 폭발할 것 같을 때. 그러니까 일기에 눈물 자국이 많아요. 울면서 쓴 적이 많아서.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고 누가 봐서도 안 되니까 금고에 넣어놔요. 일기를 자주 쓰진 않아요. 다 합쳐서 서른 번 정도 되려나. 대신 한번 쓰면 길게 쓰게 되더라고요.”

-마지막 일기를 쓴 게 언젠가요.

“엄청 오래됐어요. 음, 1년은 넘은 것 같은데요.”

-일기를 쓰고 나면 어떤가요.

“마음이 괜찮아지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짧은 글은 늘 써왔거든요. 그러니 글을 쓰면 마음이 풀린다는 건 알고 있었죠.”

-일기를 다시 읽어보기도 하나요.

“거의 안 봐요. 벌써 털어버린 거니까.”

-금고에 넣어뒀다는 게 재미있어요.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에요. 두세 번쯤 썼을 때 제가 보기에도 너무 심한 내용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내 속 얘기니까요. 그래서 그때부터 금고에 넣어놨어요.”

-짧은 글을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나요.

“초등학생 때부터일 거예요. 신문지에도 적고, 공책에도 적고, 책에도 적고. 쓸 곳이 보이는 대로 적었어요.”

-이유가 있었나요.

“아름다운 걸 보고 아름다운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면 그 감정이 만 배가 되더라고요. 슬픈 감정이 들어서 슬픔을 글로 쓰면은 내가 나를 위로하고 토닥토닥해 주는 느낌이 들고요.”

굳이 묻지 않아도 그가 지금 행복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일기장을 꺼낸 게 언젠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이런 평온을 찾기까지, 그에게도 삶의 파고는 있었다. 자신을 집어삼킬 만큼 커다란. 그때의 자신을 떠올리면 그는 “제사 아닌 제사를 지내는 듯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실패연대기] 양세형②로 이어집니다. 기사는 29일 금요일 오전 11시에 공개됩니다.

 

■ 회차순으로 읽어보세요

  1. ① 화장실 청소하며 지킨 개그맨 꿈…첫 무대는 ‘바람잡이’였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22614370001119)
  2. ② “희망 없어 죽을 시도도… 물 들어올 때 노 젓다가 노 부러진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22615360005065)

 

김지은 버티컬콘텐츠팀장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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