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연의 여의도 돋보기] 이차전지 광풍.주가조작... 2023 증시는 `다사다난`
<글쓴이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했나요. 어렵고 딱딱한 증시·시황 얘기는 잠시 접어두고 '그래서 왜?'하고 궁금했던 부분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하나씩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국내 증시의 증권·파생상품의 마지막 거래일입니다. 시원섭섭한 마음을 뒤로 하고 올 한 해 한국 주식시장을 돌아보니 유난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연초 2230선에서 출발한 코스피지수는 이차전지 테마라는 거대한 흐름을 타고 2660선(8월1일 종가 2667.07)까지 오르기도 했고, 코스닥 역시 연초 671.51에서 939.96(7월25일 종가)포인트로 상승하기도 했습니다.
'광풍'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던 이차전지 투자는 사실상 개인 투자자들이 이끌었죠. 코스닥시장의 이차전지 대장주였던 에코프로 주가는 연초 11만원에서 하루가 다르게 올라 100만원(최고 129만3000원)을 넘어서면서 16년 만에 코스닥 '황제주'에 오르기도 했고요.
몇몇 종목이 지나치게 과열되면서 증권가에서는 급등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거나 밸류에이션(가치평가) 산정을 포기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혹자는 이차전지의 상승을 두고 '개인 투자자들의 꿈과 희망을 먹고 성장한 종목'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이차전지 종목들이 미래 성장성이 있는 건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기업 가치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도 투자자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니까요.
또 올해는 각종 주가조작 사건으로 증시가 얼룩진 해이기도 합니다.
지난 4월에는 외국계 증권사 소시에테제너럴(SG)증권 발 무더기 하한가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다올투자증권·다우데이타·대성홀딩스·삼천리·서울가스·선광·세방·하림지주 등 8개 종목이 연일 하한가를 기록하며 시장 변동성을 키웠는데, 알고 보니 이는 배후에서 라덕연 전 H투자자문대표가 차액결제거래(CFD)를 악용한 통정거래 방식으로 수년간 주가조작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리다 반대매매가 발생하면서 표면화된 사건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했고, 증권사들은 CFD 서비스를 일시중단하기도 했죠. 현재 라덕연과 그 일당은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2개월 뒤인 6월에는 주식투자 카페 '바른투자 연구소' 운영자와 일부 회원들이 통정매매를 통해 부당이득을 취하는 과정에서 동일산업·대한방직·만호제강·방림·동일금속 등 5개 종목이 하한가를 기록한 일도 발생했고요.
10월에도 영풍제지와 최대주주인 대양금속이 나란히 하한가를 썼습니다. 올해만 최대 730% 상승한 영풍제지에도 역시 주가조작 세력이 붙어있었죠. 개인투자자가 많이 이용하는 키움증권은 미수금 4333억원을 떠안게 되기도 했습니다.
솜방망이 처벌이 주가조작과 같은 불공정거래, 즉 금융범죄를 부추기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몇 년 (형을) 살다 나오면 되는데 뭐.'라는 인식이 파다한 상황이니까요.
주요 증권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이 무더기로 교체된 것 역시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입니다.
미래에셋그룹 창립 멤버이자 7년간 증권부문을 이끌어온 최현만 회장이 회장에 오른 지 2년 만에 용퇴했고, 장수 CEO로 꼽혔던 최희문 메리츠증권 부회장(4연임),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5연임)이 물러났습니다.
삼성증권에서도 6년간 자리를 지킨 장석훈 사장이, 키움증권에서는 미수금 사태의 책임을 안고 황현순 사장이 각각 자리를 떠났고요.
제도 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 사건은 공매도 전면금지와 대주주 양도세 완화입니다. 당국은 지난달 6일부터 국내 증시 상장종목의 공매도를 전면금지했죠.
금지 기간인 내년 6월30일까지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하고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대규모 무차입 공매도 등 불법공매도를 근절하기 위한 공매도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는 게 당국의 설명입니다.
공매도 금지 발표 직후 며칠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효과가 없는 것 같으니 내년에 얼만큼 합리적으로 제도를 손질하는지가 관건이 되겠습니다.
한편 지난 26일 국무회의에서는 상장주식 양도세 과세대상 기준을 10억원 이상에서 50억원 이상으로 조정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됐죠. 매년 연말마다 세금 회피를 위해 쏟아졌던 매물 폭탄이 당장 덜 나오는 분위깁니다.
이제 주식시장은 올해 마지막 주말과 신정을 쉰 후 2024년 1월 2일 다시 열립니다. 내년엔 더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투자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당국이 깊은 고민을 해주길, 그리고 투자자들 역시 합리적인 판단으로 합리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시장이 되길 바라봅니다.
신하연기자 summer@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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