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축복하는 게 하나님의 사랑
미국 시카고에서 글쓰기 수업을 하려고 한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자, 어떤 40대 여성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시카고 다운타운의 오래된 미국 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하는 현혜원씨였다. 태어나 처음 보는 여자 목사님이었다. 어떻게 미국에 갔는지 묻자, 그는 한국에선 여자가 목사 될 수 없는 분위기라 도망치듯 나왔다고 했다.
“교회가 좋았어요. 사랑을 위해 힘쓰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곳이니까요. 저도 그곳의 일원이 되고 싶어 신학대학에 갔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 과정을 밟기 위해 인터뷰를 갔는데 첫 질문이 ‘여자가 왜 여기 왔냐?’였어요. ‘교회의 70%가 여자 성도인데 여자 목회자인 제가 그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지 않을까요’ 대답하자, 돌아온 말은 ‘그런데 여자들은 여자 목사 더 싫어해’였어요. 참고 2년을 버텼는데, 저랑 같이 공부한 남자들은 목사가 되고 저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런 취급 받고는 도저히 더 못하겠다 싶어, 유학 준비를 해서 이곳으로 왔어요.”
영어도 못하는 상태에서 금전적 지원 없이 고된 유학 생활이 시작됐다. 성차별에서 자유로워지니 이번엔 인종차별이 시작됐다. “뭐가 더 좋고 나쁜지 모르겠는 거예요. 하지만 차이는 명확했어요. 미국에서 겪은 인종차별은 제가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어요. ‘This is what you did. 네가 한 행동이고 그건 잘못됐어.’ 설교로도 할 수 있죠. 하지만 한국에서 ‘당신은 성차별주의자예요’라고 그 자리에서 말할 수 있나요? 여전히 못 그러잖아요.”
한국은 나이 차별도 심했다. “저는 결혼 안 한 40대 여자예요. 한국에 있었으면 안 팔리는 상품 취급을 받았겠죠. 그런데 이 똑같은 상품이 미국에 와서는 다른 거예요. 나이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니까. 이곳에선 사십이 넘었어도 여전히 데이트할 수 있고,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자연스러워요. 시카고 시내 한가운데 있는 큰 교회에서 흑인 남자 목사랑 아시안 여자 목사를 임명한 게 어쩌면 보여주기식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적어도 이곳은 다양성을 표방하고 싶어 하는 문화가 있으니까. 한국엔 그게 없어서 제가 설 곳이 없어요.”
시카고에선 매년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퀴어 퍼레이드가 열린다. 그의 교회도 피켓을 들고 나가 행진에 참여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성소수자를 위해 축복기도를 올렸다는 이유로 목사가 쫓겨나기도 한다. 대체 종교란 무엇일까?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은 대체로 기복적인 것 같아요. 가족이 평안하고, 내가 잘되길 바라고.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교회의 역할은 빛으로 세상을 인도하는 거예요. 왜 어두울 때 촛불 하나만 켜도 빛이 들어오잖아요. 세상이 어두울 때 어둠에 ‘이것은 옳지 않아,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돼야 해’ 이렇게 얘기해주는 게 교회의 역할이겠죠. 하나님이 모든 이를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교회가 그 사랑을 막는다? 그건 교회가 사랑을 실천하는 게 아니라 두려움과 공포를 조장하는 일 같아요. 성서적이지도 않고 말도 안 되죠.”
신을 믿진 않지만 가끔 친구 따라 교회에 갈 때면 그곳이 작은 천국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게 교회가 살피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사람들의 멋진 모습만 떨어져서 보다, 누군가 기도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때면 타인의 연약한 모습을 보는 듯해 마음이 아렸다. 종교는 이렇게 사람에게 기댈 곳이 돼주는구나. 그 사랑에 예외조항이 없다면 나는 좀더 마음 놓고 교회에 놀러 갈 수 있을 것 같다.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
현혜원 목사의 플레이리스트
❶ This American Life
https://www.thisamericanlife.org/786/its-a-game-show
미국 사회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팟캐스트. 대본이 제공돼 영어공부 하기에도 좋아요. 이번 화는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온 아시안 2세들의 내용인데, 자신의 억양을 부끄러워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지아양 팡은 다른 중국계 미국인이 말하는 것만 들어도 그가 미국으로 이민 갔을 때 몇 살이었는지 알 수 있다고 했어요. 나 역시 여전히 영어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시달렸는데 여기 나오는 어떤 친구가 ‘자기도 억양 때문에 차별받았고 미국인처럼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중국에서 보낸 시간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냐 물으니 아니’라고 했어요. 그 시간이 자신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자기 모습 그대로, 악센트 있는 영어를 쓰는 자신을 사랑하기로 노력했다고 이야기하는 게 참 멋지다, 감동받았죠.
❷ [오은영의 멘털 과외] “타인의 비판은 그 비판 감정의 주인에게 돌려주세요”
https://youtu.be/b5OFm0R5ELE?feature=shared
오은영 박사님이 말하길 자존감은 세상의 말들에 휘둘리지 않게 나 자신을 채우는 거래요. 저도 상담받으면서 나 자신을 조금 찾은 느낌이에요. 상황은 변하지 않지만 제 생각이 변화됨을 느껴요. 이제는 좀더 나를 위해 살아보고 싶은데… 외국에 온 것도 사실은 온전히 제 마음대로 했다기보단 남에게 멋져 보이는 길을 택했던 것 같아요. 그 외에 딸로, 언니로, 목사로 남들을 위해 많이 살았던 것 같은데 상담을 통해 안 그러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❸한국여신학자협의회
https://www.youtube.com/@user-oo4uh8hg2c
한국에도 여성 신학자와 목회자가 학문적으로 신앙과 믿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 있답니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성서 읽기 등 여러 흥미로운 주제를 다룹니다.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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