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은 번식장, 개 식용 종식... 시민이 뽑은 2023 동물뉴스 1위는
1위는 동물학대 드러난 반려견 번식장 실태
전문가 "동물에 대한 제도화된 폭력 인식 커져"
올해는 동물학대가 자행된 허가 번식장, 신종펫숍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많은 이에게 충격을 안겼다. 개 식용 목적의 사육, 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은 지지부진한 상황을 이어오다 이달 20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를 통과한 데 이어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 최남단 섬 마라도 고양이의 본섬 강제 이주, 얼룩말 세로와 사자 사순이 등 동물원 동물의 탈출, 콜럼버스곰으로 불리던 반달가슴곰 KM-53(오삼이)의 죽음 등 동물들의 수난도 계속됐다.
한국일보 애니로그는 2023년을 돌아보고 내년에는 동물이 더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시민들과 올해의 동물뉴스를 선정했다. 이를 위해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와 사전에 뽑은 7개 뉴스 가운데 누리꾼을 대상으로 '올해의 동물뉴스'를 선정하도록 하고, 그 이유를 물었다. 이달 15일부터 22일까지 한국일보 홈페이지와 동물자유연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진행된 설문에는 총 184명이 참여했다.
1위, 동물학대 드러난 반려견 번식장 실태
올해 동물 뉴스 1위는 28.8%가 선택한 '동물학대 드러난 반려견 번식장 실태'다. 지난 9월 경기 화성시의 허가 번식장에서 엄마개의 배를 갈라 새끼를 꺼내고, 죽은 개는 냉동실에 방치하는 등 동물학대가 이뤄진 게 드러나 공분을 샀다. 이곳에서 길러지던 개 1,400여 마리는 경기도와 동물보호단체 등 총 20여 곳으로 옮겨져 보호받고 있다.
한 응답자는 선정 이유로 "번식장과 펫숍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충격적인 뉴스였다"며 "이번 기회로 이들을 찾는 수요가 사라지면 좋겠다"고 했다. 이 외에 "번식장의 실태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길 바란다", "합법 번식장마저 저런 실정이라는 게 정말 가슴 아팠다", "이보다 음지에 있는 수많은 번식장의 현실은 얼마나 열악할지 짐작하게 하는 슬픈 소식이었다" 등의 의견이 있었다.
2위, 한 걸음 더 다가선 개 식용 종식
응답자 19.0%가 선택한 뉴스는 법제화를 앞두고 있는 개 식용 종식이다. 개 식용 종식을 위한 특별법은 이달 20일 농해수위 전체회의를 통과하고 법사위와 본회의를 앞두고 있다. 개를 식용 목적으로 사육·도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농장주, 도축업자 등 관련 종사자들의 폐업∙전업을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 식용 문제는 올해 정치권에서 활발히 논의됐다. 지난 8월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개 식용 종식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는가 하면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 5건이 발의됐고 여야 모두 개 식용 종식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응답자들은 "이제 정말 끝낼 때가 됐다", "개 식용 종식은 꽉 묶여있는 실타래를 풀어 동물학대의 근절 및 동물복지로 나아가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등을 선정 이유로 답했다.
공동 3위, 보호소의 탈을 쓴 신종펫숍
3위는 보호소의 탈을 쓴 신종펫숍(비영리 보호소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펫숍 영업에 주력하거나 영리를 목적으로 하면서 보호소를 표방하는 업체)과 동물학대인 소싸움 폐지 촉구가 각각 16.8%의 선택을 받아 공동으로 뽑혔다.
동물보호단체 라이프는 올해 5월 신종펫숍 업체들이 보호자가 소유권을 포기한 파양동물 100여 마리를 동물처리업자에게 넘겨 죽음에 이르게 한 정황을 포착했다. 신종펫숍 대표 등 10명은 지난달 사기 및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한 응답자는 "동물을 상품으로 생각하면서 보호소의 이미지를 챙기려는 이중적인 신종펫숍의 행보에 충격을 받았다"고 답했다. 이 외에 "돈을 주고 버리니 양심의 가책을 덜 느낀 사람들이나 보호소라는 이름으로 본인의 이득을 위해 동물의 생명을 죽인 사람들이나 모두 충격이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공동 3위, 동물학대 논란 불거진 소싸움 폐지 촉구
전국 11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열리는 소싸움 대회를 놓고 폐지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정읍녹색당과 동물단체들은 소싸움 대회는 온순한 초식동물인 소를 서로 싸우게 만들어 소가 죽거나 큰 부상을 입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비판해 왔다.
이런 분위기 속 정읍시는 내년도 소싸움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결정을 내려 시민단체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소싸움 대회를 개최하려던 다른 지자체들의 경우 '럼피스킨'(괴상피부병) 확산으로 대회를 취소해야 했다.
응답 가운데는 "국민 세금으로 동물학대를 공공연하게 벌이는 것은 당연히 폐지돼야 한다", "전통이라고 하지만 소의 커다란 눈망울을 보면 안쓰럽다", "동물학대와 폭력을 즐거워하며 이득을 취하는 인간에게 아무 죄 없는 동물이 이용당하고 괴로워하는 걸 지켜만 볼 수는 없다" 등의 의견이 있었다.
5위, 준비 없이 쫓겨난 마라도 고양이
올해 3월 천연기념물 뿔쇠오리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일괄 반출된 마라도 고양이 뉴스를 꼽은 비율은 8.7%였다. 문화재청은 전문가와 동물단체, 지역주민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고도 이들과 논의 없이 고양이를 포획하는 등 '답정너' 식으로 반출을 밀어붙였다. 구체적 대안 없이 반출된 고양이 45마리는 결국 제주 세계유산본부 보호시설로 이송됐고 입양된 고양이 5마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임시보호가정과 보호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한 응답자는 "준비 없이 방류된 돌고래 비봉이는 생사를 알 수가 없다"며 "정부는 또 한 번 대책 없이 마라도 고양이를 내쫓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그저 열심히 살고 있던 고양이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사지로 몰았다. 환경파괴의 주범이 인간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등의 의견도 있었다.
6위, 얼룩말 세로·사자 사순이 등 동물원 동물의 비극
올해는 동물원 동물의 탈출 사고(7.1%)가 끊이지 않았다. 얼룩말 '세로'는 탈출 이후 포획돼 동물원으로 돌아갔지만 사육사를 밀치고 우리 밖으로 나갔던 침팬지 '루디'는 마취총을 맞고 회복하던 중 기도가 막혀 숨졌고, 사육장 문이 열린 틈을 이용해 빠져나간 사자 '사순이'도 탈출 한 시간 만에 사살됐다. 모두 인간의 실수와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사건이 반복되자 야생동물 사육 허가와 기준을 강화하고 열악한 시설의 야생동물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 응답자는 "약 1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평생 경험해 본 적 없는 환경과 자유를 느끼고 결국 사람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사순이의 삶이 너무 안타깝고 슬퍼서 눈물이 많이 났다"고 선정 이유를 적었다. "(특히 세로의 경우) 사람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개그로 소비하는 것 같다" 등의 의견도 있었다.
7위, '모험가' 반달가슴곰 오삼이의 죽음
마지막 뉴스는 지리산을 거쳐 수도산, 덕유산, 가야산을 옮겨 다녀 이른바 '콜럼버스 곰', '오삼이'로 불렸던 반달가슴곰 KM-53의 죽음(2.7%)이다. KM-53은 민가에 접근해 인명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 아래 마취를 시도했지만 마취총에 맞은 곰이 이동하다 계곡에 빠져 익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환경단체는 예견된 사고였다며 정부에 종합적인 반달곰 서식지 관리와 보호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한 응답자는 "오삼이의 탄생부터 사망까지를 바라보며 자연 복원과 그 준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며 "우리의 종 복원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근원적 의문까지 던질 수 있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7개 뉴스 이외에 시민들은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경주마, 은퇴경주마 실태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과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 시행 △동네고양이 학대 △방음벽에 부딪혀 죽는 새들 등을 주요 뉴스로 제안했다.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장은 "번식장, 신종펫숍 등의 실태가 드러나면서 상업적으로 동물을 이용하는 실태에 많은 시민이 분노한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소싸움이 3위로 올라온 것은 사람들의 관심이 반려동물에서 농장동물로 확장된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수의인문학자인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개인의 일탈과 잔인함으로 인한 동물학대뿐 아니라 그동안 가려졌던 동물에 대한 제도화된 폭력을 인식하고 변화시키려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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