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말 결산①] 허물어진 속편 전성시대의 벽?

정한별 2023. 12. 2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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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편 향한 여전한 관심, '노량'이 증명했다
더 중요한 것은 '입소문'
'서울의 봄'은 2023년의 극장가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서울의 봄' 스틸컷

속편 전성시대의 벽이 낮아졌다. 지난해에 속편 영화들의 인기가 두드려졌다면 2023년의 극장가에서는 후속작 아닌 작품들의 존재감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26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023 연도별 박스오피스 순위에서 '서울의 봄'이 정상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범죄도시3'와 '엘리멘탈'이 각각 2, 3위를 차지했다. 4, 5위는 각각 '스즈메의 문단속'과 '밀수'였다. 지난해의 상황과는 사뭇 다르다. 2022 연도별 박스오피스의 경우 '범죄도시2'가 정상의 자리에 올랐고 '탑건: 매버릭' '아바타: 물의 길' '한산: 용의 출현' '공조2: 인터내셔날'이 순서대로 2~5위를 차지했다.

자연스레 지난해 극장가는 '속편 전성시대'라는 말을 듣곤 했다. 영화 티켓값이 인상되고 OTT에도 볼 만한 작품들이 가득한 가운데 관객들은 안전한 선택을 선호했다. 캐릭터, 설정, 스토리와 관련해 재미가 보장돼 있는 시리즈 영화들을 고른 것이다. 2023년에는 '범죄도시' 시리즈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보여줬으나 속편 아닌 많은 작품들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물론 2023년 역시 유명 영화의 속편들이 극장가를 찾긴 했다. 그러나 거둔 성적은 기대에 비해 아쉬웠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볼륨3'가 7위를,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이 8위를 차지하며 그나마 선전했으나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은 모두 15위 밖으로 밀려났다. '가문의 영광: 리턴즈'는 50위 안에도 들지 못하면서 씁쓸함을 맛봤다.


시리즈 향한 신뢰보다 무서운 건 '입소문'

'밀수'는 배우들의 연기력, 탄탄한 이야기 구성, 뛰어난 연출 등으로 관객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밀수' 스틸컷

그러나 실패 없는 선택을 하려는 대중의 욕구가 사라졌다고 보긴 어렵다. CJ CGV 측은 지난 8월 '2023 CGV 영화산업 미디어 포럼'을 열고 영화 소비 트렌드의 변화에 대해 밝혔다. 이에 따르면 관객들의 평균 관람 시점이 전보다 늦어졌다. 2019년에는 개봉 후 10.8일이었으나 최근 1년간은 15.1일로 나타났다. 관객들이 확실한 재미가 보장된 작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2023년에는 지난해에 비해 속편의 존재감이 약했지만 관객들의 성향 자체가 변했다고 보긴 어렵다. 한 영화 관계자는 '서울의 봄' '밀수' 등이 시리즈 영화들을 제치고 좋은 성과를 거둔 것과 관련해 본지에 "해당 콘텐츠들이 지닌 힘인 듯하다"고 말했다. '서울의 봄'도, '밀수'도 배우들의 연기력과 탄탄한 이야기 구성, 뛰어난 연출 등으로 관객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는 곧 입소문으로 이어졌고 두 작품은 큰 인기를 누리게 됐다. 좋은 전작을 둔 속편이 가지는 이점은 존재하지만 입소문의 영향력이 더 크다.

'노량: 죽음의 바다'가 개봉 일주일 전 사전 예매량 10만 장을 가뿐히 뛰어넘었다는 사실은 대중이 여전히 속편에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노량: 죽음의 바다'와 함께 이순신 3부작을 채우는 '명량'은 1761만 관객을, '한산: 용의 출현'은 726만 관객을 동원한 바 있다. 앞서 공개됐던 두 작품이 관심을 모아주는 데 성공했다면 '노량: 죽음의 바다'가 계속 인기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는 이 작품 자체의 몫이다. 좋은 전작보다 큰 힘을 갖는 것은 입소문이다.

인기 시리즈라도 입소문을 타는 데 실패한다면 결국 씁쓸한 뒷맛을 느끼게 된다. '가문의 영광: 리턴즈'는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받으며 개봉을 알렸으나 혹평 속에서 겨우 16만 관객을 넘어섰다. 이 작품 외에도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내지 못한 시리즈 영화는 관객들의 시들한 반응을 지켜봐야 했다. 속편의 힘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2023년의 극장가에서는 입소문이 갖는 영향력이 더욱 강력했다. 일찍 본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은 작품들은 속편 전성시대의 벽을 가뿐하게 넘어섰다.

정한별 기자 onestar10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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