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무명 생활 끝에 월드 스타로 도약 중저음 목소리에 연기력 더해져 인기 ‘마약 스캔들’로 한 순간에 나락으로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올라가기까지 오래 걸렸다. 그러나 내려오는 건 한 순간이었다. 배우 이선균은 커리어 정점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배우 생활이 아닌 삶의 마침표였다.
28일 경찰과 영화계 등에 따르면, 이선균은 전날 오전 종로구 한 공원에 세워진 자신의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가족과 소속사 관계자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선균은 지난 10월부터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상 대마·향정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아왔다. 그는 혐의 사실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호소해오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선균은 오랜 무명 생활을 거쳐 세계적인 배우로 자리매김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인 이선균은 1999년 비쥬의 ‘괜찮아’ 뮤직비디오로 연예계에 입성했다. 2001년 MBC 시트콤 ‘연인들’을 통해 방송에도 데뷔했지만, 단역이나 조연을 주로 맡으며 상당 기간 무명 생활을 했다.
그러다 2007년 MBC 의학 드라마 ‘하얀 거탑’을 통해 연기 인생의 대전환을 맞았다. 그는 극중 올바른 직업 윤리를 가진 바른 의사 ‘최도영’ 역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고, 같은 해 연달아 출연한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음악가 최한성 역으로 존재감을 더욱 부각했다.
이선균은 두 작품으로 MBC 연기대상에서 미니시리즈부문 황금연기상을 받았다. 데뷔한 지 8년여 만에 처음으로 받은 연기상이었다.
이후 ‘파스타’(2010), ‘골든타임’(2012) 등으로 연기력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았다. 화를 내도 밉지 않은 그만의 연기 스타일 덕에 ‘버럭 선균’이라는 별칭까지 생길 정도였다.
그는 특히 아이유와 함께한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로 ‘참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며 여성 팬은 물론 두터운 남성 팬층까지 생겼다. ‘나의 아저씨’의 명대사인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있으면 버티는 거야”, “편안함에 이르렀니?” 등은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는 영화계에서도 ‘쩨쩨한 로맨스’(2010), ‘체포왕’(2011), ‘화차’(2012),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등에 출연하며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커리어는 끝이 없는 정점을 향해 나아갔다. 스릴러 영화 ‘끝까지 간다’(2014)로 칸영화제 감독 주간에 공식 초청된 데 이어 2019년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으로 또 다시 칸의 레드카펫을 밟았다. 각종 영화상을 휩쓴 ‘기생충’의 출연으로 그는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올랐다.
올해 들어선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와 ‘잠’이 동시에 칸영화제에 초청받으면서 이선균은 ‘칸의 남자’로 거듭났다.
그는 칸영화제에 그의 아내인 전혜진과 두 아들과 동행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그는 지난 9월 영화 '잠'의 개봉을 앞두고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가족들과 처음으로 같이 갔는데 너무 좋았다. 아이들에게 이런 경험을 하게 해준 것도 좋았다”며 가족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선균은 연기 생활에 대해서도 “연기라는 것 자체가 어떤 삶의 주체가 돼서 표현해야 하니 계속 고민하게 하고, 안주하지 않게 한다”며 “연기는 제 삶의 동력이고, 연기가 제 업이 돼서 감사하다”며 연기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지난 10월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의 수사 선상에 오르면서 한 순간에 월드 스타에서 범죄 혐의자로 몰락했다. 경찰 수사 여파로 그가 주연한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와 ‘행복의 나라’는 개봉이 보류됐고, 드라마 ‘노 웨이 아웃’은 조진웅으로 배우가 교체됐다.
영화계 안팎에선 이선균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추모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전날 입장문을 통해 “치열하고 다정했던 이선균을 기억하고 그가 연기했던 이 시대를 돌아보겠다”며 “삶을 연기할 줄 아는 세계적인 배우, 그가 획득한 이 화려한 칭호에도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그의 위로가 되지 못했다”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선균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도 동료들의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영화 ‘킹메이커’에서 호흡을 맞춘 설경구와 고인의 유작인 ‘행복의 나라’에 출연한 유재명은 물론 조정석, 정우성, 이정재, 류준열, 송영규, 유연석, 김상호, 김성철 등 그와 친분이 있었던 배우들이 장례식 첫날 빈소를 찾았다.
이원석 감독, 변영주 감독, 변성현 감독, 이창동 감독, 장원석 비에이엔터테인먼트 대표 등 영화계 관계자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발인은 29일 낮 12시이며 장지는 전북 부안군 선영에서 수원시연화장으로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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