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황희찬 'EPL 아시아 열풍'... 90년 전 개척자 프랭크 수 아시나요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지금까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아시아 선수들이 남미와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에 비해 큰 활약을 하지 못했던 점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다. 여기에 일본 출신 프리미어리거 가운데 이번 시즌 3골을 기록 중인 미토마 카오루(26·브라이턴&호브 앨비온)도 뛰어난 개인기를 바탕으로 팀의 주축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은퇴한 아시아 선수 중에 잉글랜드 무대에서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긴 선수는 박지성(42)이다. 2000년대 중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황금시대에 뛰었던 박지성은 당시 최고의 클럽에서 이타적인 플레이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의 활약 덕분에 잉글랜드 프로축구가 아시아 선수를 낮게 평가했던 고정관념도 깨졌다.
잉글랜드에서 뛴 아시아 선수를 아시아 혈통으로 확장하면 놀라운 기록을 가진 선수가 존재한다. 90년 전인 1930~1940년대에 큰 활약을 했던 프랭크 수(1914~1991)가 주인공이다.
중국인 선원이었던 아버지와 영국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프랭크 수는 특별한 존재였다. 1911년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당시 잉글랜드와 웨일스 인구 3500만 명 가운데 중국 이민자의 숫자는 1319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다른 중국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했던 프랭크 수의 아버지는 영국인들의 중국인에 대한 차별 때문에 어려움을 겪다가 1920년 즈음에 리버풀에 정착했다.
그에게 유일한 자랑거리는 유년시절부터 축구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아들이었다. 프랭크 수는 1933년 스토크 시티에 입단한 후 기량이 만개했다. 1부리그에 승격한 스토크 시티는 1934년 평균관중 2만3000명을 끌어 모으는 리그 정상급 팀으로 급성장했다.
171cm의 작은 키이었지만 뛰어난 패스 감각을 지녔던 미드필더 프랭크 수는 1938년 팀의 주장으로 뽑혔다. 이처럼 그는 올해 8월 토트넘의 주장이 된 손흥민과 2012~2013시즌 퀸스파크 레인저스에서 주장으로 활약했던 박지성처럼 잉글랜드 프로축구에서 개척자가 됐다.
하지만 중국 혈통이었던 프랭크 수는 자주 인종차별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이겨내야 했다. 이는 지난 5월 크리스털 팰리스 팬이 손흥민에게 동양인을 눈이 작다고 조롱하는 인종차별적 행위를 했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1938년 영국 여성 베릴 런트와 결혼해 뉴스의 초점이 됐지만 불운했다. 그가 25세의 나이로 전성기를 맞았던 1939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전시체제 속에서도 잉글랜드 프로축구는 지속됐지만 나치의 잦은 공습으로 정상적인 운영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즈음에 프랭크 수는 영국 공군에 입대해 축구 선수로 뛰었고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됐다. 그는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9경기에 나섰고 1944년에는 13만 명이 넘게 운집한 경기장에서 스코틀랜드와 경기를 치렀다. 2차대전 중에 펼쳐졌던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는 주로 영국인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마련됐다. 프랭크 수는 2차 대전이 끝난 1946년 잉글랜드 국가 대표팀에 다시 소집됐지만 발목 부상으로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프랭크 수는 아시아 혈통으로는 최초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선수였다. 하지만 2차 대전 중에 펼쳐진 A매치를 잉글랜드 축구협회(FA)가 인정하지 않아 공식기록으로 대접받지는 못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폭넓은 팬층을 확보하며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로 발전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아시아의 위상은 몰라 보게 달라졌다. 그 시작점이 중국계 영국인 프랭크 수였다면 현재는 손흥민과 황희찬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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