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금융]④20대 기자 직접 '노인'이 돼 은행 방문했더니
은행 '고령특화점포 vs 일반지점' 차이 커
중노동 된 금융생활…"단순 예금도 40분 걸려"
"젊은 분들은 1~2분이면 끝나는 단순 업무도 어르신들은 40분 넘게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글을 아예 모르시는 분들이 예금 통장을 만들 때 사인을 해야 하는 경우 창구 직원이 이름을 크게 써드리면 이걸 따라서 글자를 그리시기도 하죠."
노인 밀집 지역인 서울 강서구 우리은행 화곡동 '시니어 플러스' 영업점 직원 A씨의 말입니다. 지난 11월 23일 이곳을 찾았습니다. 아침에 문을 열자마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은행 업무를 보려 하나둘씩 들어왔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이지만 노령층은 모바일 뱅킹에 익숙하지 않아서일 텝니다.
"노인들은 일반 고객들과 달라요"
왜 노인을 위한 특화 점포가 있어야 할까요? A씨는 "노인분들은 귀도 어둡고 눈도 어둡다 보니 업무처리가 오래 걸릴 수밖에 없어서"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일반 점포에서는 대기할 때 '왜 이렇게 기다리게 하냐?'라는 불만을 터뜨리는 분들이 많은데 여기는 서로 다 이해를 해주는 편"이라고 했습니다. 느림과 기다림이 '일상'인 특별한 은행인 셈입니다. .
80대 노인의 삶은 어떨까요. 눈앞이 침침하고 귀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움직임이 느리고 인지·이해능력도 떨어지죠. 일반 점포를 이용하는 '늙지 않은' 소비자들로서는 이런 입장이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노인의 심정을 느껴보기 위해 노인의 몸이 돼 보기로 했습니다.
20대인 기자가 직접 80대 노인의 몸으로 은행 업무를 경험해 봤습니다. 먼저 '시니어 플러스' 영업점 방문하기 전 화곡동에 위치한 일반 은행 점포를 방문했습니다.
우선 노인이 되기 위해 노인체험복을 착용했습니다. '등 억제대'를 메고 앞에 달린 밴드로 가슴을 감싸자, 어깨가 구부정해지고 허리가 45도 각도로 굽어졌습니다. '무릎 억제대'와 '팔 억제대'를 착용하자 팔다리 관절이 꽉 고정돼 마치 관절이 굳은 듯했죠. 팔목과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니 몸이 전체적으로 무거워졌습니다.
고글은 시야를 좁아지게 하고 백내장과 녹내장이 온 듯한 눈으로 만들어 줬습니다. 청각저하를 위해서 귀마개도 착용했습니다. 이렇게 20대에서 80대 할머니가 되기까지는 10분 남짓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노인의 몸으로 체험한 금융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예금 통장을 만들 때도 백내장과 녹내장이 온 눈은 깨알같이 적혀있는 약관을 읽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또 모래주머니와 '팔 억제대'를 찬 팔로는 손을 들어 올리는 건 물론이고, 펜을 들고 사인을 하는 것 역시 고됐습니다.
현금자동출납기(ATM)를 이용할 때도 그랬습니다. ATM에 큰 글씨로 보기 기능이 있었지만, 시야를 흐릿하게 만드는 고글을 착용하고는 이용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쉽던 ATM 송금하기가 이렇게 힘들었나?' 몸이 내 맘대로 따라주지 않자 서러운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노인의 몸이 되자 디지털 기기로 비대면 계좌 만들기도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무거운 팔과 보이지 않는 눈으로 뭘 눌러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기계는 "시간이 지연되어 거래를 종료합니다"는 멘트와 함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습니다.
뜻밖의 중노동 뒤, 같은 노인의 몸으로 고령층 특화 점포도 이용해 봤습니다. 일반 지점과의 차이는 점포 입구부터 보였습니다. 계단과 경사로에 튼튼한 손잡이가 있었던 것이죠. 뻣뻣한 관절로 경사로를 올라가기 위해서 손잡이가 필수이기 때문이죠.
고령층 특화 점포는 일반 점포와 달리 ATM도 달랐습니다. 글자 크기를 크게 키웠을 뿐만 아니라 '출금' 대신 '돈 찾기', '입금' 대신 '돈 넣기' 같은 쉬운 말이 눈에 띄었습니다. 각 기기에도 손잡이가 있었습니다. 이를 잡고 몸을 지탱해 업무를 볼 수 있게 한 겁니다. 배려가 가득한 시설이었습니다. 하지만 80대 노인의 불편한 눈과 몸으로는 은행 일을 본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기자가 착용한 노인 체험복을 살펴본 A씨는 "실제 노인분들은 귀가 더 안 들리고 시야도 더 불편하다"며 "눈이 흐려진 것은 물론 시야가 흔들려 단순히 글씨를 보는 것조차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고령층 특화점포?…그것마저 서울에 집중
체험 뒤 주변에 물었습니다. 인천 강화군에 거주하는 한명영 씨(83세)는 "노인들만 다니는 은행이 있다는 건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막상 방문하려고 하니 서울에만 있다고 하더라"며 "휴대전화는 화면도 작고 어떤 걸 눌러야 할지 몰라 은행 일을 보려면 영업점에 직접 갈 수밖에 없는데, 정작 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방에는 그런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은행들은 '시니어 영업점' 등 고령층 특화 점포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는 서울에서만 접근이 가능합니다. KB국민은행의 경우 노인복지센터를 방문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KB 시니어 라운지'를 운영 중인데, 이 역시 서울에서만 합니다. 우리은행의 고령층 특화 점포인 '시니어 플러스 영업점' 3곳, 신한은행의 고령층 특화 점포 6곳 모두 서울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령인구 비중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지역은 지난해 기준 전남(24.5%), 경북(22.8%), 전북(22.4%), 강원(22.1%), 부산(21.0%) 순으로 서울(17.2%)의 경우 17개 시 중 10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이 지방에 특화 점포를 개설할 수 있을까요?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특화 점포를 개설하는 경우는 기존 고객들의 불편 해소를 위한 것인데, 지방의 경우 상호금융(농협·수협 등)이 주가 되는 경우가 많다"며 "점포 개설에 인력이나 자원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상대적으로 이용 고객이 많은 서울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유진아 (gnyu4@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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