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김의성 “진짜 열 받는 건 참모차장, 저는 귀엽던데요?” [SS인터뷰]
[스포츠서울 | 함상범기자]‘국내 최고의 친일파 배우’ 혹은 ‘악역의 아이콘’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배우 김의성과 친한 사람들은 “악역 연기는 최고”라며 칭찬인지 조롱인지 애매한 톤으로 놀리기 일쑤다.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등을 비롯해 한국 영화계의 신성으로 불렸던 김의성은 한동안 외국 생활을 하다 한재림 감독의 영화 ‘관상’(2013)의 한명회 역으로 복귀했다. 이후 ‘부산행’(2016) 등 다양한 작품에서 악역 연기를 도맡았다. 스스로 ‘악역 장인’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개봉 33일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에서도 김의성의 장기가 빛난다. 김의성이 맡은 국방장관 역은 한남동 인근에서 총소리가 난 뒤 계속해서 도망치는 인물이다. 심지어 진압군이 벙커를 포기하는 순간에도 홀로 어딘가에 숨어 있다 반란군에게 붙잡혔다. 이후 의기양양하게 반란군에게 합세해 후임인 전두광(황정민 분)의 지휘를 받는다.
김의성은 지난 21일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성수 감독을 안지 30년이 넘었는데 한 작품도 못 했다. 오래전부터 감독님과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존경하는 연출가였다. 개인적으론 악역이 욕망도 많고 연기하기 재밌다. 그런데 국방장관은 악역까진 아닌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서울의 봄’은 명분없이 권력을 찬탈한 군인들을 다룬다. 전두광을 비롯한 반란군 일당이 계엄사령관 정상호(이성민 분)를 납치하는 동시에 대통령으로부터 계엄사령관 취조 재가를 받는 게 핵심 계획이다.
국방장관만 정신이 똑바로 있었다면 이 반란 계획은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국방장관은 책임감 없이 숨어 다니기 바빴다. 결국 지금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된다. 그 사건에 일조한 국방장관은 분노가 치미는 배역이다. 그런데 김의성이 연기하면서 분노와 웃음이 교묘하게 공존한다.
“저는 국방장관이 악해보이진 않았어요. 욕망이 강한 사람이고 겁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꼭 국방장관이 아니더라도 욕망이 도덕을 이기는 순간이 많잖아요. 그런 개념으로 겁이 도덕을 이긴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저만 보면 진짜 화를 내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많이들 웃으세요. 귀여운가 봐요.”
“극장가의 봄을 불렀다”고 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지만, 애초 이 영화는 손익분기점 400만이라도 넘기기만 원했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지만, 대중적으로 워낙 첨예한 정치를 소재로 하기 때문이다.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서울의 봄’은 수많은 위기를 넘기고 영화사에 남을 흥행을 기록했다.
“‘부산행’, ‘암살’, ‘극한직업’까지 네 번째예요. 저한테는 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상 큰 감흥은 없었어요. 정우성 배우가 기쁘겠죠. 1000만 관객은 저보다는 요즘처럼 한국 영화계가 힘들 때 꼭 필요한 숫자 같아요. ‘노량: 죽음의 바다’가 바통을 잘 이어 받아서, ‘외계+인’ 2부까지 흥행 기운이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이 영화의 특별한 매력 중 하나는 배우 68명의 앙상블이다. 특히 반란군에 있는 배우들의 마치 연극을 연상시키는 연기는 엄청난 몰입을 이끈다.
“현장 가니까 다 뻔한 사람들이더라고요. 뭐만 하면 만나는 사람들이었어요. 군복 입고 있으니까 계급처럼 행동해요. 저는 국방장관이라 대접 많이 받았어요. 현장에 갔는데 이미 자기들끼리 많이 찍고 진압군이랑 반란군이랑 나뉘어있더라고요. 은근히 기 싸움도 하고 있고. 저는 다른 것보다 참모차장(유성주 분)이 진짜 꼴보고 싫었어요. 걔가 진짜 나빠요. 저는 그래도 봐줄 만한데데, 걔는 열받더라고요. 하하.”
올해 김의성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매니지먼트사 대표가 돼서 후배 배우들을 키우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기획사 이름은 안컴퍼니다. 최근 업계는 불황 중의 불황이다. 드라마나 영화 모두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 주연은 물론 조연, 스태프들도 일자리가 없다. 그런 시기에 매니지먼트사를 설립한 것이다.
“정말 최악 중의 최악에 시작했죠. 전부터 좋은 배우들이랑 일하고 싶었어요. 신인 성장하는 일도 하고 싶고요. 멋진 배우하고 기획도 해보고 싶었어요. 대형 매니지먼트사에서 지원을 받다 보니까, 저의 야수성이 사라지는 것 같더라고요. 편하긴 한데 너무 수동적이었어요. 야성을 깨우고 싶어서 저를 정글로 보냈죠. 잘해보고 싶어요.”
좋은 배우를 좋은 작품에 추천하기도 하고, 직접 좋은 배우를 만들고 싶은 욕구도 강하다. 자신이 오랫동안 쌓아온 연기적인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김의성이 생각하는 좋은 배우란 어떤 의미일까.
“연기 잘하는 배우죠. 거기에 잘생기고 예쁘면 더 좋겠죠. 저는 성격도 좋았으면 해요. 연기는 사실 팀플레이거든요. 배우는 꼭 좋은 팀 플레이어가 아니어도 돼요. 그래도 저랑 같이 일하는 사람은 배려심이 있었으면 해요. 예전에 저도 아등바등 다 싸워서 이기려고 했어요. 어리석었죠. 이제는 지는 게 편해요. 그래야 사람들이 좋아해요. 제 목표는 ‘같이 일하고 싶은 배우’가 되는 거예요. 동료나 스태프들에게요. 스크린 밖에 있는 진짜 중요한 것들를 전달하고 싶어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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