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근 칼럼] 가족이 사치인 시대

김재근 선임기자 2023. 12. 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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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 발굴 현장이 하나 있다.

한 해가 저무는 이즈음 가족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견뎌내고, 산업화와 정보화시대를 빠르게 달려왔다.

21세기 풍요의 시대, 1인가구가 넘쳐나는 것은 위험한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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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화재 30대 아빠 사망
가족의 소중·위대함 일깨워
'1인가구' 급증세 안타까워
김재근 선임기자

고고학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 발굴 현장이 하나 있다. 중국 청해성의 민화현 나가촌이란 유적이다.

2000년 중국 고고학발굴대는 황하와 인접한 나가촌을 발굴하던 중 비극적인 현장을 목격한다.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끌어안고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허리를 꽉 보듬은 모자의 유골이 발견됐다. 이 집터의 가운데에서는 천장을 떠받치는 자세로 숨진 어른 2명의 유골도 나왔다. 바로 옆의 집터에서도 어머니가 아이를 끌어안은 채 숨진 모자의 유골이 확인됐다.

4000년 전 이들 가족이 사는 황하 인근 반지하 움막에 강물이 범람하여 들이닥쳤다. 남자 두 사람은 천장이 무너지는 것을 막다가, 여성은 아이들이 토사에 묻히는 것을 막기 위해 몸부림치다 함께 숨진 것이다.

엊그제 서울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성탄절 새벽 도봉구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났고, 생후 7개월 된 딸을 품에 안고 뛰어내린 30대 아버지가 숨진 것이다. 두 살배기 딸과 아내를 먼저 피신시키고 딸과 함께 4층에서 뛰어내렸다가 머리를 부딪쳤다고 한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인간 관계나 종교적 이유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가족이 아니라면, 부모와 자식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한 해가 저무는 이즈음 가족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견뎌내고, 산업화와 정보화시대를 빠르게 달려왔다. 세계 어느 국민보다 열심히 일하고 뛴 덕분에 10대 경제강국에 올라섰다.

2023년 현재 과연 우리는 수천년 전 선사시대보다 더 행복한가? 행복의 기본인 가족이라는 게 온전하게 생겨나고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는가?

수치 상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핵가족 시대를 지나 가족부재, 가족해체, 가족실종 시대에 진입했다. 지난해 전체 가구 중 1인가구가 34.5%에 이른다. 3가구 중 1가구가 혼자 사는 1인가구인 셈이다. 원인은 청년층의 결혼 기피, 이혼과 독신주의자의 증가, 고령화로 인한 배우자 사별 등이 지목된다.

1인가구 급증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암울하다.

특히 청년들의 결혼 감소는 국가적 위기로 직결된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률은 0.778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1년 동안 태어난 신생아가 24만9000명에 불과했다. 연간 100만명 출생은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가 됐다. 농촌이 소멸위기에 처하고 대학은 정원을 못 채워 문을 닫고 있다. 병력이 없어 군부대를 줄이는 등 국방에도 위기가 닥쳤다.

20대 고용률은 60.4%이고 그나마 정규직이 59.7%에 불과하다. 수익도 어른들에 비해 훨씬 적고, 대부분 비좁은 전월세에 거주한다. 일자리나 수입, 주거 등이 결혼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노인 1인가구 형편은 더 열악하다. 노후를 준비하지 못하거나 자식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독거노인들이 많아졌고, 이들의 연평균 시장소득은 436만원에 불과하다.

21세기 풍요의 시대, 1인가구가 넘쳐나는 것은 위험한 신호다.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중산층이 두터워졌지만 자동화와 정보화 시대가 열리면서 젊은이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 우리 사회가 일자리와 주택 등의 문제를 땜빵 식으로 다룰 때가 아닌 것이다.

요즘 청년들은 가족을 '사치'로 여긴다. 결혼하여 아기를 낳고 기르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올 한해 아기용 유모차보다 반려동물(개)을 싣고 다니는 '개모차' 판매량이 더 많다고 한다.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연말연시 가족이 없어, 가족이란 울타리 없어 편의점에서 홀로 앉아 4000-5000원 짜리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청년들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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