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작전 뛰며 손실 떠넘겨…고삐 풀린 증권가 내부통제[무너진 자본시장]②
'돌려막기'로 고객손실 전가하기도…증권사·당국 '내부통제' 강화 나서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불신시대(不信時代)'
올해 여의도 증권가는 이 네 글자로 설명되는 한 해였다. 증권사 임직원들의 횡령, 작전, 부당이득 등 불법행위가 연이어 적발되면서 투자자들로부터 쌓아온 신뢰를 스스로 잃었다.
2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증권사의 연평균 금융사고건수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7.8건, 손실규모는 143억원이었지만 올해는 11월까지 14건, 688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 수준으로 늘었다.
증권사에서 적발된 사고에는 사금융 알선,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자금 횡령, 문서위조, 직무정보 이용 등이 포함됐다. 투자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비판받은 사건은 '주가조작'이었다. 지난 4월24일 '라덕연 사태'로 불리는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폭락 사건이 터졌는데, 키움증권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당시 장 개장 후 30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외국계 증권사인 SG증권을 통해 대성홀딩스·선광·세방·삼천리·서울가스·다우데이타·하림지주·다올투자증권 등 8개 종목에서 대량의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결국 이들 종목은 하한가를 기록했고, 나흘 만에 시가총액 8조원이 사라졌다.
사건의 배후에는 라덕연 호안투자컨설팅 대표가 지목돼 1심 재판 중이지만, 김익래 전 다우키움그룹 회장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키움증권에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 김 전 회장은 공교롭게도 다우데이타의 주가가 폭락하기 전 자신이 보유한 지분을 팔아치워 600억원대의 차익을 실현했다.
김 전 회장이 해당 의혹에 연루된 이후 5월 회장직 및 이사회 의장직을 사퇴하고 주식 매각대금을 사회환원하기로 했지만, 키움증권은 뒤이은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로 인한 대량 손실을 보면서 위기가 이어졌다.
상장사를 분석하는 애널리스트가 부당이득을 챙긴 일도 있었다. DB금융투자 등에서 일한 애널리스트 어모씨(42)가 업무상 취득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거래하면서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진 것이다.
어씨는 2013년부터 3개 증권사에서 10년간 애널리스트로 재직하며 '매수의견' 리포트 공표 전 주식을 매수하고 공표 후 매도하는 방식으로 22개 종목을 선행매매해 총 5억2000만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를 받는다.
또한 BNK경남은행 투자금융부장으로 근무하던 이모씨(51)가 2008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3000억원대 횡령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가운데 한국투자증권 직원 황모씨도 공범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황씨는 2016년 8월부터 지난해까지 이씨와 공모해 시행사 명의 출금전표 등을 11차례 위조, 경남은행 부동산PF 대출 자금 1387억원을 페이퍼컴퍼니 명의 계좌로 송금 받아 주식·선물·옵션 등에 투자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후 조사를 통해 황씨가 899억원 규모로 횡령한 사실을 추가 확인하고 공소장 변경에 나섰다.
증권사들이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잃은 행위는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증권사 사모 CB기획검사 중간결과'에 따르면 사모 전환사채(CB) 매매·중개 과정에서 메리츠증권의 불건전 영업행위가 다수 드러났다. 메리츠증권 투자은행(IB)본부 임직원들은 상장사 CB 발행 관련 투자자 주선 및 A증권사 고유자금 투자 업무상 지득한 직무정보를 이용해 직원 본인‧가족‧지인 등이 업무대상 CB를 2차례 투자하고 수십억원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메리츠증권은 이화전기 거래정지 직전 주식을 대거 매도하며 내부정보를 활용해 손실을 피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하이투자증권은 부동산 PF 차주인 시행사에 자사의 부실채권을 매수하는 조건으로 대출을 시행하며 일명 '꺾기' 영업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더불어 미래에셋증권은 자사 프라이빗뱅커(PB) A씨가 2011년부터 11년에 걸쳐 피해자들에게 수익률 10%가 보장되는 비과세 펀드라고 속여 가입을 유도하고 투자손실을 감추기 위해 허위 잔고 현황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총 734억원을 챙긴 혐의로 적발됐다.
최근에는 증권사들이 일임형 자산관리 상품인 채권형 랩어카운트(랩)와 특정금전신탁(신탁) 상품에서 '돌려막기'로 고객 손실을 대거 전가한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하나증권과 KB증권,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 교보증권, 유진투자증권, SK증권 등 9개사에 대해 영업관행 집중점검을 실시한 결과 모두 불법행위가 적발됐다. 불법 자전거래를 통한 손실전가금액은 증권사별로 수백억~수천억원 규모로 드러났다. 이외 계약조건을 위배하는 등 불법행위도 적발됐다.
증권사들은 이같이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건에 대해 '개인의 일탈'이라는 핑계로 책임을 미뤄왔지만, 이런 문제까지도 막을 수 있도록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어왔다.
결국 금융당국은 국회와 함께 금융기관의 내부통제 미흡으로 인한 사고 시 최종 책임자로 최고경영자(CEO)를 명시하는 '책무구조도' 도입에 나섰고, 관련 내용을 골자로 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법에 관한 법률 개정안(지배구조법 개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내년 6월 시행된다.
증권사들도 미흡했던 내부통제 및 리스크 관리를 개선하기 위해 CEO 세대교체에 나선 상황이다. 조직 개편과 함께 관리 체계 개편도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투자협회도 최근 업계 대표들과 함께 신뢰 회복을 위한 윤리경영 선포식을 열고 내부통제 역량 강화 등의 내용이 담긴 실행방안을 결의했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금융사고 방지를 위한 내부통제 역량 강화와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업계 스스로의 개선의지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라며 "우리 업계의 본분인 국민자산 증식과 모험자본 공급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역할하고, 공정금융·상생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lg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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