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걸음마 떼며 안전교육… 행인만 봐도 車속도 줄이고 신호준수 [연중기획-안전이 생명이다]

강구열 2023. 12. 28.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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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 배우는 안전의식 〈끝〉
유아∼성인 체계적 교육
학교선 교통·생활 관련 교과 반영
복지시설선 고령 맞춤 프로그램도
하루 여러차례 강력한 단속도 효과
최근 자전거 헬멧 착용률 두배 상승
신속한 재해정보 제공
도로 곳곳에 피난 장소 안내판 설치
급수·의료 도움받을 곳 자세히 표시
한국어·영어로도 표기 “외국인 배려”
“우리나라도 철저한 대응 자세 필요”

지난 26일 오후 10시쯤 일본 도쿄 신주쿠(新宿)구 이치가야나카노초(市谷仲之町) 주택가. 이차선도로 횡단보도 앞에 택시 한 대가 보행신호가 녹색에서 적색으로 바뀌길 기다리며 서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은 물론 주변 인도에도 보행자가 없지만 정지선까지 ‘칼같이’ 지켰다. 신호를 무시하거나, 횡단보도 녹색등이 점멸할 때 차를 몰아 가던 길을 서둘러 봄직도 한데 신호가 바뀐 뒤에 천천히 움직였다.

일본인의 안전의식과 질서의식, 법규(룰) 준수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일본인의 의식과 행태는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지진, 쓰나미(지진해일),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 대국이면서 반복되던 각종 인재(人災)와 사고의 재발을 차단하기 위한 민관 노력의 결과다. 그 바탕에는 철저한 계도(啓導)와 강력한 단속, 치밀한 법규·매뉴얼의 작성과 시행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27일 오전 일본 도쿄 신주쿠구의 한 도로에서 차량이 횡단보도에서 3m나 떨어진 정지선을 지키며 보행자가 다 건너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강력한 교육·단속, 안전의식 일상화

강창일 전 주일대사는 “일본 국민은 안전의식이 몸에 배어있다”며 “국가가 안전을 중시하는 것은 물론 국민 차원에서 대비가 잘 되어 있다”고 말했다.

강 전 대사의 말처럼 체득화된 일본인의 안전의식 형성의 출발점은 교육, 즉 계도다. 유아부터 성인까지 심신의 발달 단계에 맞춘 체계적인 안전교육을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고령자에게 특히 주의를 기울인다. 고령자 인구가 계속 늘고 있고 사고를 피하는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감소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안전교육 관련 단체, 자원봉사단체, 복지시설 등에서 교육을 실시하지만 이런 기회가 부족한 고령자에 대해선 본인 집에서 개별 교육을 하기도 한다. 어린이, 청소년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교통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의 안전교육을 교과별 특성에 맞게 반영해 실시한다.
안전 확보를 위해 보다 유의해야 할 사안은 의무 사항으로 규정해 계도의 강도를 높인다. 신호등이 없는 주택가 이면도로 등에서 특히 강조되는 보행자 우선 원칙이 이런 예다. 일본 거주 2년째인 한국인 박주희씨는 “길을 건너려고만 해도 차가 멀리서부터 속도를 줄이는 게 보여서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 4월부터 개정 도로교통법에 따라 의무화된 자전거 운전자 헬멧 사용도 같은 맥락의 조치다. 헬멧 미착용에 대한 벌칙 규정은 없지만 의무화 조치 이후 적극적인 계도에 나서면서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2∼3월 도쿄도, 군마(群馬)·아키타(秋田)현 등 13개 도부현(都府縣)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헬멧 착용률은 4.0%에 불과했으나 7월 조사에서는 13.5%로 크게 늘었다.

강력한 단속은 교육, 계도의 효과를 높이는 최적의 수단이다.
일본 총리 직속의 내각부(內閣府)는 2023년판 교통안전백서에서 “운전자에 대해 (보행자) 바로 앞에서 정지가 가능한 속도로 운행하는 것과 보행자를 우선하는 의무를 강하게 주지시켜 왔다”고 밝혔다. ‘강하게 주지시켜 왔다’는 의미는 계도와 함께 강력한 단속을 했다는 의미다. 관청이 불법주차단속을 거의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하루에도 수차례 강력한 단속을 실시해 불법주차를 거의 근절하다시피 한 것도 강력한 법규 단속이 주는 효과로 볼 수 있다.

통학로 등에 이동식 속도위반 단속장비를 배치하는 것도 강력한 단속의 한 예다. 내각부는 이를 “교통사고 실태에 적확하게 대응하고, 효과적인 교통지도단속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운전자의 피로, 화물 과적 등으로 인한 사업자용 차량의 사고에 대해선 운전자는 물론 해당 사업자에게도 차량운행 금지명령 등을 내리는 이른바 ‘배후책임’을 묻기도 한다. 또 무면허 운전이나 음주운전이 적발될 경우 동승자가 책임이 있는지를 조사할 때가 있다.
일본 도쿄 신주쿠구에 설치된 피난장소 안내판(방재표지판). 안내판에는 재해 발생 시 피난 장소, 의료기관, 급수소 등이 표시되어 있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신속, 정확한 재해 정보 제공에 만전

일본은 자연재해나 사건·사고 발생 시 대응하는 매뉴얼로도 유명하다. 후쿠시마(福島) 원전 폭발사고와 같이 미처 상정하지 못했던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임기응변적 대응에는 취약하다는 면도 있으나 일단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치밀한 기록과 매뉴얼 작성을 통해 재발을 방지한다는 강점이 있다. 일본에서 ‘매뉴얼은 피로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일본 효고(兵庫)현 아카시(明石) 압사 참사 후 발간된 120쪽 분량의 안내서(매뉴얼)는 현재도 일본 전역에서 대규모 행사 시 경비업무의 가이드라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 이태원 압사 참사 발생 후 경찰의 이 매뉴얼이 한국에서도 조명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자연재해에 대비해 피난소 등과 관련한 정보도 곳곳에 게시되어 있다. 이치가야나카노초의 한 대형마트 앞에도 지진 등 자연재해가 발생할 경우 몸을 피하고 급수, 의료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장소, 기관 등을 표시한 피난장소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일본어 외에 한국어, 영어, 중국어로도 표기되어 있어 일본어가 서툴고, 일본 생활이 낯선 외국인도 배려하고 있다. 지도에 피난소로 빨갛게 표시된 우시고메나카노(牛?仲之) 초등학교 담장에는 “대규모 재해 발생 시 지역주민의 피난소로서 음식과 생활필수품이 배급됩니다”라는 내용의 노란색 표지판이 붙어 있다. 주민 요시다 슈헤이(吉田修平)는 “물이나 음식을 받을 수 있는 곳이나 의료기관 등의 위치까지는 몰라도 어디로 피난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자연재해 자체를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일본은 재해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 마련에 주의를 기울인다. 일상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피난장소 안내판처럼 곳곳에 설치된 방재표지판이다. 지방자치단체별 ‘방재기본계획’에 따라 설치되는데 충분한 현지조사를 기초로 재해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하고 피난소, 의료시설, 급수소 등을 표시한다. 긴급한 상황에서도 눈에 잘 띄도록 모양이나 색깔, 설치 장소 등을 정한다.

재해 관련 정보를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체계를 마련해 두고 있다. 무선을 통한 정보 전달의 경우엔 3단계로 이뤄진다. 일차적으로 국토교통성, 소방청, 경찰청, 최대 통신기업 NTT 등의 시스템을 활용하고 2·3단계는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지자체) 방재 관계기관 시스템, 시정촌(市町村·기초지자체) 행정망을 활용한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일본은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관련 교육을 철저히 해 대피 요령 등을 잘 알고 피난장소도 지역에 따라 정해져 있다”며 “우리나라도 요즘 관심이 높아졌지만 일본만큼 철저하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구윤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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