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에 푹 빠진 우크라이나 과학도… “그린 수소 생산에 미래 있어”

홍아름 기자 2023. 12. 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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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에 반하다]⑥ 아나스타샤 보로노바 KIST·UST 소속 박사과정생
화석연료 대체하기 위한 수소 생산 기술 연구
취미는 한국의 산 오르기… 졸업 후에도 한국 머물 것
”아직 우크라이나 상황 좋지 않아… 먼 훗날 돌아가야”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의대 쏠림 현상까지 겹치면서 이공계 분야의 인재 공급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인구절벽에 따른 연구인력 부족을 해결할 방법 중 하나가 해외 인재 유치다. 하지만 비영어권 국가인 한국은 여러모로 해외 우수 인재를 데려오기가 쉽지 않다. 해외 인재가 한국에 뿌리를 내리려면 연구 환경과 정주 여건을 개선하고,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선비즈는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바다를 건너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연구자를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다. 이들이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들어보고 해외 인재 유치 과정에서 마주할 수 밖에 없는 난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얻어본다. [편집자 주]

지난 12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는 ‘화석연료로부터 멀어지는 전환’을 약속하며 막을 내렸다. 당초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이 합의안에 담길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으나, 산유국들의 반대에 결국 화석연료 퇴출 대신 전환을 합의문에 실었다.

다만 재생에너지에 대한 논의가 확대됐다는 점에서 ‘역사적 진전’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중 수소 분야의 신규 파트너십이나 프로젝트, 투자 발표가 이어졌다. 그 결과 수소 생산 외에 탄소 포집 기술이나 수소 저장 기술 개발이 활발히 이뤄질 계획이다.

우크라이나에서 한국으로 건너 와 수소 에너지로의 전환을 이끄는 기술을 개발하는 학생이 있다. 아나스타샤 보로노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겸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소속 박사과정생이다. 지난 1일 KIST 본원에서 만난 보로노바 씨는 “수소 에너지는 화석 연료를 대체해 지구 온난화를 늦출 방법”이라며 “현재 저렴한 그린 수소를 생산하기 위한 소재를 개발하면서 평가 시스템도 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본원에서 만난 아나스타샤 보로노바 KIST 겸 UST 박사과정생./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 분야를 소개한다면.

“친환경 에너지다. 수소의 생산, 저장, 활용과 관련된 기술과 수소를 만들기 위한 수전해 장치의 소재를 개발한다. 수전해는 물 분자를 쪼개 수소와 산소로 분리하는 기술을 말한다. 이 방법을 활용하면 친환경적으로 수소를 만들어낼 수 있다.”

현재 수소 연료를 생산하는 방식의 96% 이상이 메탄을 사용한다. 따라서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메탄이 아닌 수전해를 통해 수소를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메탄을 이용한 방법이 수전해보다 3배 이상 가격이 저렴한 상황이다. 보로노바 연구원은 소재 개발과 동시에 수전해 시스템의 내구성 평가 프로토콜을 개발해 보다 저렴하고 효율적인 수소 생산 방식을 찾고 있다.

-최근 국제 학술지 ‘에너지&환경 과학(EES)’ 저널에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지난 9월 양성자 교환막 수전해(PEMWE)를 사용한 수소 생산과 관련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PEMWE를 사용한 수소 생산은 날씨나 지역에 따라 전력이 달라지는 재생 전력의 ‘부하 변동성’에 잘 대응해 재생전력을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에 적합한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대부분의 수전해 장치는 부하변동이 짧은 주기로 반복되면 전극이 손상되기 때문이다. PEMWE는 현재 성공적으로 상업화되고 규모도 커지고 있지만 시스템의 내구성을 진단할 표준 방법이 없었다.

이번 연구는 PEMWE 시스템의 내구성을 진단하고 보다 내구성 있는 재료를 설계하기 위해 적합한 테스트 방법을 구축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표준화된 평가 방법이 없었지만, 이번에 개발한 평가 시스템으로 신뢰도 높게 수명 예측을 할 수 있게 됐다.”

보로노바 씨의 지도교수인 서보라 KIST 선임연구원 겸 UST 에너지-환경융합 전공 교수는 “이번 연구는 초석 단계의 연구인만큼 시도 자체에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보로노바 씨는 우수한 연구논문 활동으로 학교와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여한 학생에게 수여하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연구논문상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연구 결과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나.

“수전해 시스템의 내구성을 높이는 데 사용할 수 있다.전지의 내구성이 높을수록 결국 수소가 저렴해지고, 화석 연료와 경쟁할 수 있게 된다.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국내 그린 수소 생산용 소재부품의 경쟁력을 높일 수도 있다.”

-화석 연료를 수소 에너지로 대체하는 데 관심이 큰 것 같다.

“석사 과정 때만 해도 수처리와 촉매 작용에 대해 공부했다. 그러다 화석 연료를 수소 에너지로 대체하는 데 관심이 있어 박사과정 때 수소 관련 연구를 택했다. 수소 에너지가 지구 온도 상승을 막아 기후 변화를 늦추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연구 계획은 무엇인가.

“다음 작업은 음이온 교환막(AEM) 수전해와 관련된 것이다. PEMWE는 성능도 높고 변동하는 부하에 대해 대응성이 높지만 산성 환경에서 작동하고 산화이리듐이나 백금과 같은 값비싼 재료가 필요하다. 반면 AEM 수전해 기술은 알칼리 매질을 써 저렴한 재료를 활용할 수 있다. AEM의 잠재력을 높이기 위해 적절한 내구성 시험 프로토콜을 연구할 계획이다. AEM 수전해가 저렴한 수소 생산을 위한 방법이 될 거라고 본다.”

아나스타샤 보로노바 KIST 박사과정생이 지난 9월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제74회 전기화학 국제학회에 참석해 발표하는 모습./아나스타샤 보로노바

◇삼악산·설악산 등산 즐겨요

-한국에는 언제 처음 왔나.

“2019년 7월이었다. 한국에서 산 지 4년 반 정도 됐다. 우선 KIST에서 인턴십을 한 뒤에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 당시 KIST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우크라이나 출신 동료가 KIST 이야기를 하며 박사 과정에 지원하라고 조언해 준 것이 한국에 온 계기다.”

-한국의 연구 환경은 어떤가.

“연구실이 화기애애하다. 실험 장비나 재정 지원도 좋지만 연구실 동료들과 지도교수인 서보라 교수님이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석사 과정을 밟을 때는 연구를 즐기긴 했지만 재정적 지원이나 장비가 충분하지 않았다.”

-연구 환경에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지금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종종 다른 유학생들로부터 과도한 업무 요구나 초과 근무와 관련해 문제나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교수님 중 몇몇은 너무 바빠 학생들과 소통할 시간이 부족하기도 한 것 같다.”

-한국 생활은 어떤가.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지내는 게 힘들지 않나.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지만 4~5년이 지난 지금은 이런 환경에 완전히 익숙해진 것 같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서 온 학생들도 있어서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항상 도움을 청할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에 살 곳을 마련해야 할 때 연구실 친구가 계약 관련해 많이 도와줬다.”

-한국어도 할 수 있다고 들었다.

“졸업 요건인 한국어 능력시험 토픽 레벨2 시험에 합격했다. 일상과 관련된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정도다. 합격 이후 연구에 집중하느라 한국어 공부를 많이 하진 못했지만 곧 다시 공부를 시작할 계획이다. 이곳의 학생이나 동료들은 영어 수준이 높아서 연구실에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어본 적은 없다.”

-우크라이나와 사뭇 다른 한국 문화에 적응은 잘 되는지 궁금하다.

“내가 한국에 입국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등산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이다. 나는 우크라이나에서도 등산을 즐길 정도로 관심이 많아 한국에서도 산에 갔었다. 그때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다. 교통수단도 매우 편리한 점도 마음에 든다.

그런데 4~5년이 지나도 ‘눈치’는 아직 적응하기 쉽지 않다. 직접적으로 의도를 전달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과 달리 한국에선 말을 돌려서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말 속에 무엇이 내포되어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워 아직 해외 학생들과 만나면 ‘눈치’의 개념이 혼란스럽다 말하곤 한다.”

아나스타샤 보로노바 KIST 박사과정생이 강원 춘천의 삼악산에 오른 모습. 1일 만난 보로노바 씨는 삼악산과 북한산, 설악산 등 한국의 산들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아나스타샤 보로노바

-해외 연구자를 유치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해외 학생들에게 진학 프로그램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이면서 동시에 연구생이기도 한 KIST-UST의 제도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교육비도 낼 수 있어 도움이 된다. 내가 알기로는 유럽에는 보통 이런 제도가 없다. 해외 학생들은 한국에서 학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해외 학생들과 자주 협력해 이런 기회를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졸업 후에도 한국에 머물 것… 우크라이나 상황은 여전히 혼란

-우크라이나가 아직 전쟁 중이다. 고향 상황은 어떤가.

“아직 우크라이나에 가족과 친구들이 머물고 있고, 상황은 녹록치 않다. 전쟁은 계속되고 러시아는 계속해서 목숨을 앗아가고 우크라이나를 파괴하고 있다. 한국이나 해외 언론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뉴스의 양이 줄었지만, 그렇다고 전쟁이 끝났거나 멈춘 것은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친척 중에선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공습 경보가 거의 매일 울려 가족이나 친척들은 지속적인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있다.”

-학교나 기관의 피해 상황은.

“전쟁 기간 동안 우크라이나 교육 기관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3798개의 교육 기관들이 폭격과 포격을 당했고 그 중 365개의 교육 기관들이 완전히 파괴됐다. 우크라이나 국립기술대학교 석사 과정 지도교수에게 폭격의 영향으로 유리창이 깨지고 장비가 고장났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공습경보가 울릴 때마다 학생들은 대피소로 가야 한다. 여동생이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과 같은 우크라이나의 시험을 보다가 공습경보가 두 번 울려서 시험을 멈추고 모두 지하 대피소로 가야 했다.”

-나중에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계획이 있나.

“언제쯤 상황이 정상화될지 모르기 때문에 앞으로 몇 년 동안 우크라이나에서 활동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일단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에 학업을 계속하면서 박사후연구원 자리를 찾아볼까 생각 중이다. 몇 년 동안 박사후연구원을 한 뒤에는 회사에 입사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 연구 커리어가 충분히 쌓인 뒤 우크라이나로 돌아가지 않을까싶다.”

-연구자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나는 그저 과학적이면서 유용한 것을 개발하고 싶다. 과학적 진보가 인류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기여하고 싶을 뿐이다.”

주요 연구성과

Energy & Environmental Science(2023), DOI: https://doi.org/10.1039/D3EE01959D

International Journal of Energy Research(2022), DOI: https://doi.org/10.1002/er.7953

Applied Nanoscience(2020), DOI: https://doi.org/10.1007/s13204-020-012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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