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넘긴 日 마이너스 금리 종료… 내년엔 ‘자금 대 이동’ 주목

최온정 기자 2023. 12. 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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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임금 오르는 일본,… 4월 금리 인상설 ‘고개’
日, 美국채 보유국 1위… 엔캐리 자금 117조 넘어
韓 시장 영향은 제한적… “미·유럽 영향이 더 커”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이 연말에도 금리를 동결하면서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 통화정책 방향 전환(피봇·pivot)을 기대하며 강세를 보이던 엔화는 일본은행(BOJ)의 결정으로 다시 약세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BOJ가 내년에는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본의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연 2%를 넘어서고 있고, 임금 상승 기조도 분명해지고 있어 정책 방향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 BOJ, 단기금리 -0.1% 동결… YCC 상한 1% 유지

일본은행은 지난 19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금리를 현행 -0.1%로 동결했다. 국채를 무제한으로 매입해 장기 국채 금리(10년 만기 국채금리) 목표치를 0% 부근, 상한을 1%로 유지하는 수익률곡선제어(YCC) 정책도 유지하기로 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가 19일 도쿄 BOJ 본부에서 금융정책결정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도쿄 로이터=연합뉴스

28일 시장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BOJ의 이런 결정은 마이너스 금리는 유지하더라도, YCC 정책은 다소 완화할 것이라고 본 시장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다. 지난 10월 열린 직전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BOJ는 10년물 국채 금리 변동 폭 상한 목표를 1%로 유지하되, 시장 상황에 따라 이를 초과해도 용인하기로 한 바 있다. 작년 12월(0.25%→0.5%)과 올해 7월(0.5%→1%)에 이어 장기 금리 상한을 또 올린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YCC 정책도 기존 방침을 유지했다.

BOJ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2%를 웃돌고 있지만, 임금 인상을 수반하는 안정적인 상승궤도에 오르지 않았다면서 마이너스 금리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는 기준금리 동결 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물가와 임금의 선순환이 강해지고 있는지 여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번 결정으로 일본은 2016년 1월 시작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8년째 유지하게 됐다. 같은 해 9월에 도입한 YCC 정책 종료도 해를 넘기게 됐다. 단기·장기 국고채 금리가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면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들의 이자 부담이 줄어들고, 민간에서도 마음 놓고 투자 활동을 벌일 수 있다.

일본이 통화 완화 정책을 유지하면서 강세를 보였던 엔화도 약세로 돌아섰다.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앞둔 지난 7일 한때 엔·달러 환율은 BOJ의 방향 전환 기대감에 전날 종가보다 4% 내린 141.7엔까지 떨어졌고, 회의 결과 발표 전날에는 달러당 142엔대에서 거래됐다. 그러나 발표 직후 143엔대 중반으로 올랐다. 지금은 142엔대 후반에서 거래되고 있다.

◇ 시장선 ‘4월 금리 인상론’ 솔솔… 물가·임금 상승 지속

시장에서는 BOJ가 내년 하반기까지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근원 소비자물가지수(신선식품 제외) 상승률이 올해 1월(4.2%)부터 8월(3.1%)까지 3%대를 넘어서는 등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일본 정부의 전기·가스요금 지원으로 9월 들어 물가 상승률이 2%대 중반으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목표치인 2%를 웃돌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위변조대응센터에 엔화가 전시되어 있다. /뉴스1 제공

임금상승률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올해 일본 국민 1인당 평균임금 인상률은 3.2%로 1년 전보다 1.3%포인트(p) 올랐다. 조사 방법이 바뀐 199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주요 기업들의 평균 임금 상승률은 3.58%에 달해 공급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BOJ가 내년 4월 회의에서 마이너스 금리를 종료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매년 초 일본 노동계와 재계가 공동으로 벌이는 임금 협상인 ‘춘투(春鬪)’가 3월 말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일본 최대 노동조합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는 내년 평균임금을 5% 이상 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우에다 총재도 내년 통화정책 정상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우에다 총재는 25일 게이단렌(경단련) 강연에서 “일본 경제가 저인플레이션 환경에서 벗어나 물가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임금과 물가의 선순환이 강해져 2% 물가 안정 목표를 지속적, 안정적으로 실현할 가능성이 커지면 금융정책의 변경을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 엔캐리 자금 일본 회귀 가능성… ‘韓 영향 제한적’ 주장도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를 종료하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 재무부가 집계하는 ‘국제자본 유출입 최근 동향’(TIC)을 보면 지난 10월 기준 미 국채 보유국 1위는 일본이다. 일본의 국고채 금리 인상 여파로 일본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팔면 가격이 떨어져 시장금리가 오르고, 국내 국고채 금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로 한은이 최근 발표한 ‘고빈도 실시간 데이터를 이용한 국고채 시장의 기능저하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2년간 발생한 주요 사건 중 국내 국고채 금리를 가장 많이 올린 사건은 YCC 조정 발표였다. 일본이 작년 12월 20일 10년 만기 국채 금리 상한을 기존 0.25%에서 0.5%로 올린 후 한국의 국채금리는 14bp(1bp=0.01%포인트) 올랐다. 브렉시트 국민투표(-10bp),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9bp), 김정일 사망(+9bp)보다도 금리에 미친 영향이 컸다.

국내 국고채 시장 주요 이벤트. /한국은행 제공

엔 캐리 트레이드(일본 엔화를 빌려 전 세계의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것)가 청산될 가능성도 주목된다. 엔 캐리 트레이드 지표로 쓰이는 일본 내 외국계 은행의 엔화 대출 잔액은 지난 4월 말 12조9000억엔(117조3926억원)이었다. 국제금융센터가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BOJ가 마이너스 금리를 종료하면 투자자들이 해외 채권을 매각하고 글로벌 포트폴리오 자금을 재분배해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질 수 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국내 시장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계 투자금이 보유한 국내 증권·채권 비중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다. 일본은 지난달 말 기준 14조2990억원어치의 한국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전체 외국인 보유액의 2.1%에 불과하다. 1위인 미국(41.7%)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며, 네덜란드(2.6%)나 호주(2.3%)보다도 낮다. 국내 채권시장에서 일본계 투자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1% 남짓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혜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를 종료하면 단기적으로는 일본계 투자금이 빠져나가면서 미국과 한국의 시장금리가 오를 수 있겠지만, 일본 투자자가 빠져나간 자리를 다른 외국인 투자자들이 채우면서 중장기적으로는 금리가 안정화될 것”이라고 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도 “주식·채권시장에서는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 일본 금리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오르지 않는다면 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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