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포커스] “통신사는 왜 빠지나”… 보이스피싱 책임 떠안은 은행 ‘속앓이’

김유진 기자 2023. 12. 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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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보이스피싱 피해 최대 50% 배상
은행 피해 배상 추정치 400억~500억원
은행 “비대면 금융사고 최종 책임은 과도”
일러스트=정다운

은행이 내년부터 보이스피싱 등 비대면 금융사고 피해에 대한 배상까지 하게 되면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보이스피싱 사고가 발생하면 은행은 자체 조사를 벌여 배상비율을 결정해 고객이 입은 피해금액의 최대 50%까지 배상해야 한다. 은행권은 ‘수사권’이 없어 금융사고 피해자의 과실이나 고의성 등을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은행의 피해 배상을 노린 새로운 유형의 범죄도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번 제도 시행으로 은행은 내부적으로 약 500억원가량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28일 은행권에 따르면 시중은행은 내년도 보이스피싱 등 비대면 금융사고에 대한 피해 배상에 따라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비용 추산에 나섰다. 은행권은 내부적으로 약 500억원 수준의 비용이 추가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금액 가운데 환급금액은 379억원으로, 은행권은 내년부터 피해 배상 규모가 커지면서 환급금액도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한 은행 고위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등을 배상하기 시작하는 내년부터 매해 최소 5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내부 추산했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400억~500억원 정도의 비용이 추가적으로 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라며 “대부분 은행이 비슷한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10월 비대면 금융사고로 이용자가 금전적 손해를 입은 경우 은행의 사고 예방 노력과 이용자의 과실 정도를 종합 고려해 배상액을 결정하는 ‘비대면 금융사고 책임분담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기준에 따라 은행은 보이스피싱 범죄와 같이 제3자가 이용자 동의 없이 권한 없는 전자금융거래를 실행해 이용자에게 금전적 손해가 발생한 비대면 금융사고에 대해 책임분담기준에 따라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배상 절차는 보이스피싱 등 피해를 입은 고객이 본인계좌 은행에 배상을 신청하면, 해당 은행은 피해사실 및 피해환급금액 확인 등 사고조사를 거쳐 책임분담기준에 따른 배상비율 결정, 배상금액을 지급하게 된다. 배상금액은 피해금액의 최대 50%까지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픽=손민균

은행권은 금융 당국의 주도로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피해 배상까지 나섰지만, 불만이 적지 않다. 비대면 금융사고 피해 예방 조치를 강화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은 공감하나, 범죄 피해까지 은행이 책임지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을 위한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 고도화 등 은행의 사전 조치가 강화돼야 하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라면서도 “다만, 은행은 보이스피싱 범죄로 인한 돈이 인출되는 계좌에 대한 책임만 있는데, 전체 범죄에 대한 책임을 은행에 지우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전 단계에 있는 통신사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피해 배상의 책임은 없고 은행만 콕 집어 배상하는 건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은행 고위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관련 피해 배상을 위해 책임이행보험을 가입하고 있는데, 피해 배상 범위가 급격히 확대되면서 보험 가입에 대한 부담도 커질 것 같다”라고 전했다.

특히 은행권에서는 은행의 피해 배상을 노린 새로운 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보이스피싱 범죄를 수사할 수 있는 수사권이 없다”라며 “배상 비율을 결정하기 위해 자체 조사를 벌인다고 해도 제대로 조사하지 못하고 배상만 진행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개인이 아닌 은행이 배상해준다고 하면 이를 노린 범죄도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부연했다.

금융 당국은 은행의 우려를 고려해 이용자가 개인정보를 휴대전화에 저장하거나 사기범에게 제공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사고발생에 기여했다면 피해배상을 제한적으로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금융소비자가 휴대전화에 개인정보를 저장하지 않고, 타인에게 이체 비밀번호를 제공하지 않는 등 금융범죄를 예방할 수 있도록 교육을 강화할 방침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금융소비자도 금융범죄를 예방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라며 “은행의 우려도 알고 있고 이를 고려해 제도를 시행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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