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無知지옥] ‘저승사자의 귀’ 금융민원센터… 금감원 직원 직접 만나는 창구
ELS 불완전판매·불법 리딩방 피해 단골 접수
곗돈과 은행 적금이 전부였던 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스마트폰을 활용한 주식, 가상화폐 매매 등 투자처가 다양해졌다. 그만큼 금융 소비자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하지만,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정신이 바뀌지 않았다. 돈을 다루는 장사를 가장 천한 직업으로 여기는 탓에 그간 우리 사회에서 돈에 대한 얘기는 금기시됐고 금융 교육이 전무했다. 그 결과 3대 사모펀드(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및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논란, 라덕연 사태가 터졌다. 반복되는 금융 사고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짚어봤다. [편집자주]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금융감독원. 금융사와 금융 소비자 간 분쟁을 책임지는 역할 때문에 금감원 입구엔 온갖 불만 가득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금감원의 중재에도 금융사와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소비자가 내건 것이다. 소비자 측은 현수막을 통해 “불법 은폐한 금감원”, “금감원 해체”라는 비판을 하기도 하고 “금융사를 특별 감사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금감원이 금융 소비자로부터 돌만 맞는 것은 아니다. 업무 특성상 부각되지 않을 뿐, 중재를 잘 처리할 때도 많다. 시장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본원 1층에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장소도 마련돼 있다. 바로 금융민원센터다. 이곳은 금융 분야와 관련한 피해와 불만을 금감원 직원이 직접 상담해 주는 장소로, 민원인의 문제 해결이 시작되는 공간이다.
“쌔빠지게 벌어서 써보지도 못하고 날릴 판이잖아요 지금.”
거주지인 서울 동대문구에서 대중교통을 타고 1시간 넘게 달려 온 김순자(가명·67)씨는 4일 금융민원센터의 금융투자 창구에서 이같이 호소했다. 금융민원센터는 은행이 예금과 대출 창구를 나눠놓은 것처럼 권역별로 창구를 나눠 민원을 접수받는다. 센터엔 순자씨가 찾은 금융투자 창구 외에도 ▲은행 ▲손해보험 ▲카드 ▲대부업 창구가 있다.
순자씨는 2021년 2월 홍콩H지수를 기초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했다. 당시 1만~1만2000선이던 홍콩H지수는 현재 반토막이 나 원금 손실의 가능성이 큰 상태다. 순자씨는 “예금 만기가 다 돼 은행을 찾았다가 은행 아가씨가 절대 손실이 없다고 해서 가입한 상품”이라며 “초등학교도 간신히 졸업하고 60살이 넘었는데 상품 구조를 내가 알았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최근 홍콩H지수 ELS 손실 가능성이 커졌다는 기사를 본 후, 곧장 상품을 가입한 은행 지점에 가 항의했으나 담당 직원이 지점을 옮겨 상담이 어렵다는 답을 받았다. 순자씨는 “2억원을 투자했는데 지금 9000만원이 됐다”며 “답답해서 물어물어 금감원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날 순자씨는 금감원에 ELS 불완전판매 피해 민원을 접수했다. 불완전판매란 금융사가 금융 상품을 판매하면서 투자자에게 상품의 구조나 손실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불완전판매뿐만 아니라 불법 리딩방, 비상장주식 투자 사기 등도 금융 민원 단골 손님이다. 금융민원센터는 이같은 민원을 수리하면 담당자를 지정해 사실관계를 조사한 후 민원인에게 결과를 처리 결과를 통보한다. 이 과정은 약 4~5주 소요된다.
사실관계 조사 결과 민원인과 피민원인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엔 사안은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로 넘어간다. 분조위는 당사자의 책임을 따져 배상 비율 등을 조정한다. 형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거나, 사안이 사법기관으로 넘어가면 각하 판단을 내린다.
홍콩H지수 ELS 투자자가 모인 인터넷 카페의 가입자는 1000명을 돌파했지만, 금감원 금융민원센터는 한산했다. 이날 오전엔 2~3명의 민원인만 센터를 찾았다. 오후에도 센터의 출입문은 뜨문뜨문 열릴 뿐이었다. 순자씨럼 금융민원센터를 찾는 이들은 주로 고령층이었다.
인터넷으로 하는 전자 민원 신청이 활성화돼 직접 금융민원센터를 찾는 민원인의 수가 줄었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전자 민원이 익숙지 않은 이들을 위해 오늘도 금융민원센터의 문은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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