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 3개월짜리 정무직[우보세]

세종=김훈남 기자 2023. 12. 28.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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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결과가 '자진사퇴'더라도 정무직 공직자나 그 후보가 오롯이 거취를 결정하는 일은 사실상 없다.

산업부 장관 사례가 극적이어서 눈에 띄는 것일 뿐, 19개 부처 가운데 9개 부처 장관이 다음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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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3일 낮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포항제철소 관계자와 화상회의를 갖고, 금일 오전 포항제철소 화재 발생과 관련해 ‘고로와 일부 제품 생산라인 등 가동 중단이 발생했던 설비에 대한 피해 및 복구 상황과 생산 영향 가능성 등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취임 3개월만에 바뀐다. 짧은 재임 기간과 더불어 교체 사유가 독특하다. 내년 4월 총선, 그중에서 격전지로 꼽히는 수원지역 의석 탈환을 위해서란다.

국회의원하겠다고 옷벗는 장관이 없는 건 아니지만 방 장관은 본인의 출사표가 아니라 여당 요구에 의한 차출이다. 세종청사의 한 관료는 여기에 한마디 해설을 붙인다. "그 정도 위치에 올라가면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거취같은 건 없어요"라고.

중앙부처 장·차관이나 기관장 같은, 소위 정무직쯤 되면 진퇴의 자유가 없다고 한다. 대통령으로부터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는 더 그렇다.

인사청문회에서 숱한 결격사유가 나와도, 장관 교체설이 끝없이 나와도 후보자 스스로 물러나는 일은 드물다. 결과가 '자진사퇴'더라도 정무직 공직자나 그 후보가 오롯이 거취를 결정하는 일은 사실상 없다.

사전교감은 필수적이다. 정무직의 조율되지 않은 진퇴가 알려지면 상당한 파장을 부르곤 한다. 정무직의 임명뿐만 아니라 면직도 결정하는 탓에 대통령에겐 '임명권자'보다는 '임면(任免)권자'라는 표현을 붙이는 게 더 적합하다.

산업부 장관 사례가 극적이어서 눈에 띄는 것일 뿐, 19개 부처 가운데 9개 부처 장관이 다음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직에서 물러났다. 이 가운데 현직 21대 지역구 의원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박진 외교부 장관뿐이다.

나머지는 출마할 지역구를 찾아 공천을 받아야하는 처지다. 방 장관을 포함한 일부는 정치 신인이다. 여기에 출마의사를 내비친 차관급 인사도 다수다. 대통령실은 27일 김완섭 기획재정부 2차관과 박성훈 해양수산부 차관 등에 대한 후속인사를 하며, 차관급에 대한 총선용 인사도 단행했다. 마치 중앙부처가 '여의도 후보생'을 배출하는 학교가 돼버렸다.

임면권자와 자의든 타의든 장관들의 잇따른 총선행. 정부·여당의 총력전이다. 행정부의 모든 업무는 법에 근거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300석 중 174석의 거야(巨野) 정치 지형에서 시작한 윤석열정부와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에서 의미있는 의석을 확보해야 나머지 임기 국정과제를 추진할 동력을 얻는다. 정부·여당에겐 이번 총선엔 정권의 성패가 달려있는 셈이니 총력전이 이해된다.

그렇지만 총력전의 형태가 내각의 절반을 선거판에 내보는 것이어야 했는가엔 선뜻 동의가 어렵다. 부처수장이 없으면 굵직한 정책과 현안 대응은 뒤로 밀린다. 최상목 부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여부가 미뤄지면서 매년 연말 해오던 경제정책방향 발표가 내년으로 넘어간 게 좋은 사례다.

"장관직에서 일하는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하지만 후임자가 지명돼 곧 떠날 장관이 찾을 현장과 직접 챙길 정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 대부분 출마 장관들은 필요 최소한의 일정만 소화 중이다.

모든 정부는 그동안 새 장관 임명이 늦어질 때마다 국정 공백을 들어 국회를 설득하고 압박해오지 않았던가. 스스로 '뉴페이스'를 길러내지 못하고 내각에서 출마 후보를 찾는 여당과 그에 순응해 큰 구멍을 만드는 정부. 총선을 앞두고 현장에서의 경제 현안이 묻힐까 우려스럽다.

세종=김훈남 기자 hoo1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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